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다른 가족 면담을 하였다.
그들도 애타는 마음으로 지금 환자의 상태를 궁금해 하고 앞으로 치료계획이 어떤지 알아야 하니까.
가족들이 다 모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치료를 다 했는데도 왜 재발했는지.
왜 잘 유지되고 있다고 했는데 느닷없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었는지.
세상에 좋은 항암제가 많이 개발되고 있다고들 하는데 우리 환자에서는 효과적인 항암제가 없다고 하는지.
환자와 가족들은 그저 나의 어려운 설명을 들을 수 밖에 없다. 나의 제안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주치의이기 때문에 뭔가 치료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과학적 근거와 퍼센트, 가능한 시나리오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치료가 많지는 않다.
그런 치료가 많다면 암으로 죽는 환자가 없겠지.
그것이 아직까지 항암치료의 한계이다.
수술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성격이 변한 것 같다고, 치매가 온 게 아닌가 하여 정신과에 입원했다가 뇌막 전이가 진단된 환자.
표준치료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대로 치료했지만 한번도 좋아지지 않고 나빠지기만 하는 환자.
장기는 멀쩡한데 피부로만 피부로만 전이가 진행되어 옷을 제대로 입기도 어려운 환자.
이렇게 나빠지는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들을 볼 때,
이들을 위한 표적치료제가 절실하고, 좋은 치료방법을 개발하고, 새로운 신약으로 임상연구를 하여 치료적 이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외래 정리를 하면서 내일은 몇명의 환자가 나빠졌는지 몇명의 환자가 좋아졌는지 알게 된다.
그들을 머리에 떠 올리며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한다.
그 상황에 직면하는 환자도 힘들지만
의사도 힘들다.
치료 효과는 마음으로만, 위로로만, 친절한 설명으로만 가능하지 않다.
공부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마음이 무겁지만
나의 이런 존재적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연구를 기획하고
환자와 함께 희망을 갖고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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