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한 암학회를 갔다. 토요일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왔다.
Next generation sequencing을 주제로 한 워크샵. 사실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고차원적인 테크놀로지. 잘 만들어진 파워포인트도 보여주고 한국말로 강의하는데도 아주 생경하다.
CT 한번도 과잉해서 찍지 말고
환자를 자세히 문진하고
시청타촉 각종 신체검사를 잘 해야 하고
무조건적으로 기계와 검사에 의존하기 보다는 의사의 진료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시대가 변한걸까?
캐주얼한 복장으로 강의하는 발표자들, 병원에서 늘 보는 의사들의 모습과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임상의사가 아닌 자연과학 분야의 박사, 연구자들이다.
최소한 암 분야에서는
이제 그들이 진단과 치료의 주역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유전자 연구, 이런 분야의 연구는
머리와 개인의 능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기술과 경제적 파워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역이다.
에고 난 어떡하라고, 이런 첨단의학의 시대, 난 과연 뭘 할 수 있는걸까
다소 낙심하여 강의를 듣고 있는데
레지던트에게 전화가 온다.
갑자기 환자 상태가 나빠졌다고, 금방 심정지가 올 것 같은데 심폐소생술을 해야할 건지, 연명치료포기를 설명해야 하는지 묻는다.
환자의 상태는
수술 후 1년만에 재발하여 한번도 좋아져 본 적 없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
눈으로 보아도 피부병변이 악화되고 있고
폐에 물도 차고
어제는 골수 전이를 의심하여 골수검사까지 했다.
골수검사에서 전이가 진단되면 더 이상 치료를 안하려고 했다.
어떤 항암제에도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한 치료가 환자를 더 해롭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회진을 돌면서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보험이 안되는 아바스틴도 썼다. 그때 딱 한번 좋아졌었다.
그렇지만 치료 효과는 3달이 유지되지 못하고 다시 나빠졌다.
남편은 얼마전 나와 환자 상태에 대해 이런 저런 논의를 하면서
돈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첨단 유전자 검사를 해볼 수는 없겠냐고 문의했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에 따른 치료를 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그 고비용을 지불하면서 현실적으로 실행하기에 아직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첨단 유전자 검사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학회장에서 그 환자의 상태 악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점점 쇠약해지는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간병하는 남편.
치료 효과가 없이 나빠지기만 해도 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환자.
나는 강의를 듣다 말고 중간에 나왔다.
병동에 도착해보니 이미 기관삽관 상태, 맥박도 약하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나빠진 환자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심폐소생술을 하여 응급조치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단 당장의 사망은 막은 셈이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했다. 남편과 어머니는 한마디 말씀도 못하고 내 말을 따랐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환자가 돌아가시지 않았다.
나는 그 4시간 동안
점심 먹은게 다 체해서 어지럽고 울렁거려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그녀가 편안하게 임종하실 수 있게 하지 못해서 죄책감이 든다.
환자는 나빠지고 있었고
결국 치료 효과가 없을 거라는 걸 알았고
조만간 돌아가실 걸 알았고
이번 입원 후 퇴원하시기 어려울 거라는 걸 알았고
나는 남편과 이러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얘기해 왔는데
심폐소생술을 해 버린 것이 너무 속상하다.
DNR...
얼마나 준비해서 미리 받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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