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결국 운명 아닌가요?

슬기엄마 2012. 1. 28. 00:07

그녀와의 인연은 1년이 채 안되었다.
전이성 유방으로 진단받고 첫번째 약제 탁솔로 항암치료를 하는 중에 나를 만났다.
그녀는 만화도 그리고 시각 디자인을 하는데
탁솔을 쓰는데도 손발저림증을 이겨내며 작업을 계속 하고 있었다.

처음 쓴 탁솔을 잘 견디길래
조금만 더  쓰다가 호르몬제로 바꿀까 생각하던 차에
병이 나빠져 버렸다.
그래서 아드리아마이신을 포함한 약제로 변경하여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병이 좋아지기만 하는게 아니라 나빠지기도 한다는 걸 처음 경험하고서는
나에게 전이성 유방암의 예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한다.

전 언제까지 항암치료 하는 건가요?
병이 나빠질 때까지요.
끝이 없네요.
엄밀히 말하면 그래요. 그래도 호르몬제로 바꾸면 항암효과, 치료적 효과는 있지만 독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쉬는 기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저는 예후가 어떨까요? 전 4기 유방암 생존기간이 2년이라고 해서 진단받을 때 정리할 거 정리다 하고 했는데 2년 넘게 살고 있는데...
자기 일 다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치료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년수는 헤아리기 어려워요. 평균 2년이지만 그런 데이터는 예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 결과라서, 실재로는 생존기간이 더 연장되었다고 봅니다.
이 약을 쓰다가 나빠지면 쓸 만한 다른 약이 있나요?
네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라 호르몬제도 쓸 수 있고 쓸 수 있는 항암제 종류도 많아요.
제가 재발을 막기위해 환자로서 노력해야 하는 건 뭔가요?
지금처럼 적당히 자기 일 하고, 돈도 벌고, 열심히 사세요. 특별히 뭘 먹는다고 예방되거나 치료적 원칙은 없습니다. 좋은 음식 먹고 좋은 곳으로 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지내도록 최선을 다하는 거.
저에게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일 다 정리하고 멋지게 여행을 가던지, 뭐 그렇게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럭저럭 살만하고 하니까 앞으로 내 미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 지 감이 안와요. 저는 연금도 안 넣고 있거든요. 그 연금 혜택을 제가 볼 수나 있겠어요? 저에게는 의미없는 행위잖아요. 어떤 결정, 어떤 삶을 사는게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 저랑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저에게 질문하셨지만 답은 환자 본인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잖아요. 지금 하신 질문, 즉 예정되지 않은 삶, 제한된 시간 내에 살아야 하는 삶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살 것인가 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도 또 한번 해결해야 할 관문이 아닐까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내가 그녀를 만났던 초반,
그녀는 나에게 매우 공격적이었고 패기만만했으며, 내 말도 잘 안듣고 혼자 용기백배, 용감씩씩 지냈다. 우리가 정한 원칙에 대해 반칙도 많이 했다. 공격적인 질문도 많았고 내 대답에 조금만 헛점이 있으면 집요하게 따지고 들었다. 솔직히 좀 성가셨다.

1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자신의 병에 대해 점점 더 잘 알아가고 있고 내 설명도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와 병원에 대한 불만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녀 자체도 많이 유해진것 같고 우리 둘의 관계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그러나
난 그녀가 이 모든게 운명이군요 라고 말하는게 싫다.
나는 나에게 공격적이고 내 말 잘 안듣고 말도 안되는 질문하며 따지는 괄괄하고 용감씩씩한 그녀가 더 좋다. 외래 시간 지연시키면서 자기 얘기 다 하고 고집 부리고 말도 안되는 얘기 하면서 나에게 따지고 드는 그녀가 더 좋다. 지금 그녀의 말투도 인상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예전처럼 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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