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부부

슬기엄마 2012. 1. 25. 22:21


환자는 3년전 유방암 0기를 진단받았다.
유방암 0기는 이론적으로 재발되거나 전이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그런 경우가 있다. 아주 드물게.
이 드문 일이 이 환자에게 발생했다.

환자는 우리 엄마 또래시다.
당뇨 고혈압 심장혈관질환 병력이 있고 뇌경색으로 인해 왼쪽 팔다리를 잘 못 쓴다.
골다공증이 심한 환자는 지난 여름 집에서 넘어지면서 다리 뼈가 부러졌다.
부러진 다리에 대해 정형외과적인 수술을 하려고 입원했다가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폐 엑스레이에 이상소견이 관찰되었다. 일단 다리 쪽 수술을 하고 나서 폐에 대해서도 수술적으로 검사를 했다. (다리 수술 할 때 같이 했으면 좋았으련만 나에게는 수술 후 협진이 의뢰되었다) 이론적으로 폐로 전이되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이 유방암 전이인지, 폐암인지를 감별해야 했기 때문에 수술적으로라도 조직검사를 하는 것이 필요했다. 폐암과 유방암 폐전이 약은 180도 다르니까.

그래서 진단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환자와 보호자는 폐 조직검사를 위해 수술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생각해도 폐 검사를 위해 전신마취를 다시 하는 것에 부담이 있는 컨디션이었다. 말씀도 똑 부러지게 못하시고, 폐 기능 저하로 숨도 차고 부러진 다리 때문에 움직임도 부자연스럽고... 이 환자를 보고 있으면 한숨 푹푹 나오는 갑갑한 상황이었다.

환자는 말도 어눌하고 부러진 다리 때문에 거동이 매우 불편하다. 환자 옆에는 비슷하게 말이 어눌한 할아버지가 항상 계신다. 할아버지는 진단 초기, 협진 때문에 환자를 방문한 나에게 와서 할머니한테 암이란 하지말란 말만 하셨다. 할아버지는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뭔가 할머니에게 않좋은 일이 생긴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말을 할머니에게 하면 심약한 할머니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하여 그냥 아무말 말고 치료나 하라고 했다.
도저히 수술을 진행하고 치료계획을 세울 수 없어 한명 있는 직계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은 밤에 일하고 낮에 자며 공사장에서 일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낮에 전화하면 자고 있고 밤에 전화하면 작업 중이라 전화를 잘 못받으셨다. 몇번 문자를 남겨 전화해 달라고 해서 간신히 통화를 해야 했다.
전화로 설명을 하니, 아들은 이해가 안된다고 하였다. 0기는 전이되지 않는다면서 왜 어머니에게는 전이가 된거냐고... 아... 전화로 설명하기 어려웠고, 실재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DCIS의 의미는 뭐고 병리학적으로 DCIS지만 invasive portion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얘기를 어떻게 전화로 안면도 없는 보호자에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난 그 아들을 3번째 항암치료를 마치고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이는 난 전화하고 메시지 남기고 그냥 내가 결정해서 일을 진행했다.

환자는 약간 두려운 마음이 있으신 것 같았지만 내가 유방암 재발이니까 열심히 치료하자는 말에 내가 시키는 대로 꾹 참고 잘 따라왔다.
항암치료를 하니까 부러진 다리도 잘 아물지 않는지 남들보다 휠체어를 오래 타고 몸을 잘 못가누신다. 탁솔을 쓰니까 손발이 저리기 쉽다. 당뇨에 한쪽 마비인 환자에게 탁솔을 별로 좋은 선택지가 아니지만 우리 나라 보험에서 허셉틴과 같이 쓰는 것이 인정된 항암제는 탁솔 밖에 없다. 다행히 부작용이 심하지는 않다.
그렇게 9번 치료를 마쳤다. 내일 외래에 오신다.

그동안 할아버지는 다리가 부러진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요양병원과 우리병원을 오갔고 내분비내과 정형외과 종양내과 (건물도 복잡한 우리병원)의 외래 시간에 맞추어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다. 할머니 몸놀림이 불편하기 때문에 소대변 관리도 다 할아버지가 해주신다고 했다.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이라 CT도 최소한으로 찍고 엑스레이로 대신하였다. 놀랍게 좋아졌다. 할머니도 점점 얼굴이 고와지고 있다. 지난 번 외래 오실 때는 조금씩 걷기 연습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얼굴이 아주 흐뭇해 보인다. 이들은 그렇게 화목한 부부가 아니다. 말씀도 영 투박하다. 그리고 정겨운 대화를 하지도 않는다. 서로 귀도 잘 안들리고 병원 의료 시스템도 잘 모르고 의사나 간호사가 신경을 조금만 안 쓰면 엄한 곳에서 고생하고 계신다. 영락없는 시골 노부부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큰 소리 떵떵 치며 우리 좀 잘 봐달라고 주장하신다. 절대 기가 안 죽는다.

엊그제 오셔서 CT를 찍고 가셨나 보다. 내일 외래를 준비하느라 미리 사진 화면을 열어보는 순간, 와, 많이 좋아졌다. 이제 탁솔 그만하고 허셉틴만 해도 되겠다 싶다. 갑자기 그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얼굴이 떠오른다. 숨 차서 말씀하시기도 힘든데 내가 묻는 독성에 대해 일일히 열심히 대답하던 할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당분간은 힘든 항암제 안쓰고 편하게 치료할 수 있겠다.

그 CT를 보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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