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 있던 두명의 환자가 일반병실로 나왔다.
두명 다 투석까지 했다.
4기 암환자가 중환자실에서 투석까지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지만 잘 회복되어 일반병실로 나오면 나는 안타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무사히 잘 퇴원하고 이후 예정된 치료를 하게 되면 나는 홈런이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2타수 2안타인셈이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 홈런을 노리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 마자 EMR을 열면 이들의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는지를 확인하였다.
아침 피검사에서 신장 수치를 확인하고
환자 침대 옆에 쭈구리고 앉아 소변줄로 소변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백혈구 혈소판 수치를 보면서 회복의 가능성을 기원하였다.
응급으로 유방을 수술한 환자.
유방의 상처가 낫지 않고 거기서 시작된 염증 때문에 패혈성 쇼크에 빠질 지경이 되었다. 혈소판 수치가 수술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에 떨어졌다. 곁에 계시는 남편, 지방에 있는 자식에게 전화로 설명하였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수술하는게 좋겠습니다. 수술 후 지혈이 안될 위험성, 그리고 사망의 위험성까지를 감안하고 수술하기로 하였다. 예정에 없던 스케줄을 만들어서 외과에서 도와주었다.
투석을 10회 정도 하였다. 수술을 하고 나니 이번에는 폐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폐렴이 동반되어 거기서 열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여기 저기 몸에 관도 많아서 거기서 열이 날 수도 있다. 콩팥도 않좋은데 항생제 쓰는 일도 쉽지 않았다. 수술 후 의식도 맑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소변줄에서 맑은 소변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는 걸 보는 기쁨, 그건 의사가 아니고는 모를 것이다. 그 소변의 소중함을... 환자는 이제 투석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졌다. 환자는 오늘 병동 산책을 시작하였고 이번주에 퇴원할 예정이다.
소변이 나오자 의식도 맑아지기 시작한 환자. 환자는 약 1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고도 치료받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가까운 친지들 중에 암으로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많이 봐 왔던 환자는 치료를 거부하고 지내다가 유방 통증이 심해져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병원에 왔고 이번에 이렇게 심하게 고생을 하였다. 의식이 맑지 않던 무렵, 나 이제 그만 치료해 달라고,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는 말도 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자기 힘으로 병동을 산책하고 소변줄도 무사히 제거하고 자기 힘으로 소변을 보면서 기운을 회복하고 있다. 수술 후 당장의 항암치료는 어렵고 일단 방사선 치료부터 할 예정이다. 방사선 치료 후에 항암치료를 하기를 바란다. 다른 환자의 치료 코스가 다르다. 나는 그녀의 완치를 위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폐로 전이된 유방암, 그렇지만 1년 이상 병이 나빠지지 않고 표적치료제만 쓰면서 병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환자.
요로 감염으로 열 나고 패혈성 쇼크에 빠져서 응급실로 입원하였다. 지방에서 혼자 지내는 환자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도 혼자 끙끙 앓으며 견디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 아들이 어머니 목소리가 이상하여 직장에 휴가를 내고 지방에 계신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고열로 의식이 혼탁할 정도. 앰뷸런스를 타고 우리병원에 오자마자 다행히 중환자실에 자리가 있어 곧바로 입원하였다. 소변이 한방울도 나오지 않아 투석부터 시작했다. 아직 열이 잡히지 않지만 피검사 수치들이 회복의 방향으로 돌아섰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삼일째, 나는 아들을 불러 최선을 다하겠지만, 위험한 일이 생길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내 마음으로는 절대 좋아지게 해야지 굳게 다짐한다. 아직 투석을 하고 있는 환자. 그렇지만 조금씩 소변량이 늘고 있다. 회진을 가면 소변줄 부터 들여다 본다. 좋아질 것 같다. 2월 안에 이 환자도 퇴원시켜야지. 다시 당신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게 해야지.
이들의 회복에 내가 기여한 것은?
별로 없다.
투석은 신장내과에서, 호흡기 관리는 호흡기내과에서, 항생제는 감염내과에서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저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 마음이 통한 걸까?
나는 환자의 생명력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의사의 노력과 능력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환자의 생명력. 의사는 그 생명력에 해를 입히지 않는 선택을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Do no harm!
잊지말자. 내가 뭘 해 줘서 좋아진다는 교만한 생각보다는 환자의 생명력과 자정능력을 잘 지켜주는게 더 중요하다는 겸손한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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