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환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슬기엄마 2011. 11. 17. 23:22


항호르몬 치료제에 신약을 더한 임상연구에 참여했던 70대 할머니.
내가 보기에 할머니는 신약을 병용요법으로 투여하여 톡톡히 도움을 받으셨다고 생각된다.
항암치료를 하기에는 초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연세도 꽤 많으시다.
그러나 항호르몬제 단독으로 치료하기에 재발된 초반의 병변은 다소 험악하였다.
그렇게 험악했던 재발부위가 이제 거의 흔적만 남아있다.
치료 후반부로 올수록 병합한 신약의 독성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그
약은 중단하고 항호르몬제만 유지하고 계신다.
임상연구로 치료한지 2년이 지났다.
국제적 규모의 임상연구라 항호르몬제도 계속 지원이 되고 있다. 2달에 한번 찍는 CT도 비용이 제공되고 있다. 임상약을 빼고 투여하더라도 치료적 지원이 계속 되도록 본사와 여러 차례 나의 의견을 문서로 전달하여 관철되었다. 나는 내심 뿌듯했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판단했다. 

그런제 정작 환자는 꼭 CT를 2달에 한번 찍어야 하냐고 불만 가득이다. 물론 CT를 반복적으로 찍는 것은 좋지 않다. 임상연구가 아니라면, 전이성 유방암에서 일반적인 호르몬 치료를 할 경우 3달에 한번 정도 CT를 찍는다. 그런데 임상연구에서는 초기 규정된 평가 원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2달에 한번 CT를 찍게 되는 거라고 설명드렸다.
CT를 반복적으로 찍는 것이 부담되신다면 임상연구를 종료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것도 싫으신가 보다. 갑자기 짜증을 내면서 치료를 그만 두고 싶다고 하신다. 난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안정적으로 병이 조절되고 숨찼던 증상도 좋아지고, 치료를 시작하기 전보다 훨씬 컨디션이 좋아졌는데, 왜 갑자기 마음에 변덕이 생겼을까?
난 임상연구 그만해도 된다고,
그래도 치료는 계속 하시는 게 좋다고,
지금 먹는 약 안 힘들고 좋지 않냐고,
임상연구가 아니더라도 CT를 아예 안 찍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 모든 것을 설명드려도 듣고 싶지 않으신가 보다. 


할머니 바로 앞에 진료를 본 환자는
약을 바꾼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금방 약제저항성이 생겨
CT를 찍기도 전에 병이 나빠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약을 바꿔도 효과가 별로 오래가지 않는다.
난감하다. 병이 나빠질 때마다 환자는 그에 상응하는 증상을 호소한다. 환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무섭다. 환자가 말한 곳이 또 나빠졌을까봐... 나도 환자도 CT 찍기가 무서울 정도다.
그런 환자에 비해
호르몬 수용체 양상 환자들의 질병 진행 코스는 얌전하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환자에게 치료적 옵션도 많다.
그러나 환자의 생각은 다르다.



2004년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는데
3년이 채 되지 않아 간과 뼈로 전이되었다.
당시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처음 시작된 아바스틴 임상연구에 참여하여 항암치료를 받았다. 2년이 넘게 같은 약제를 유지하는 동안 CT 상으로는 전이된 병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병리학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영상학적으로는 완전 관해에 가까왔다. 아주 좋은 성적.

그러나 2년이 지난후 복장뼈 근처의 뼈로 부분 전이가 나타났다. 전이된 부분에 방사선치료를 하고 이후로 호르몬 치료를 유지하며 치료하고 계셨다. 환자는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몸안에 있는 암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좋은 컨디션으로 지내고 있었다. 항호르몬제를 복용한지 1년반이 지났는데, 이번에 정기적으로 찍은 흉부 CT에서 폐에 좁쌀만큼 작은 몇개의 덩어리가 보인다. 여전히 증상은 전혀 없다.
재발 후 5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녀는 전혀 증상이 없었다.

그동안
몇번을 절망하고 다시 일어났건만
이번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보다. 
남편과 다정히 진료를 보러 왔다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 그녀.
폐로 전이가 된 것 같다는 나의 설명은 더이상 그녀의 귀로 들어가지 않았다.
전이성 유방암은 평균 2년 정도의 생존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전이 후 5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전히 증상없이 일상생활을 잘 꾸려가고 계신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며 멋진 청바지를 입고 오셨다. 누가 그녀를 환자라고 생각하겠는가.
이미 평균보다 오래 살았다. 앞으로도 이 정도로 사실 수 있게 하는게 내 치료의 목표라는 말에 그녀는 참았던 분통을 터뜨린다. 그동안 완치되었다고 믿었던 그녀. 도대체 자신의 치료는 언제까지 지지부진, 완치된 줄 알았는데 또 재발하고, 또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치료를 계속 해야 하냐고...


환자 입장에서
재발은 재발이고
궁극적으로 완치가 안되는 것이라면 
치료적 옵션도 부질없게 느껴지나 보다.
완치를 향한 마음, 용기, 희망은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런 마음이 너무 강했는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니 견기기가 힘든가 보다.

난 최선을 다해 설명했지만
그런 나의 마음이 그녀들의 마음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했다.
설명하는 나도 힘들었다.
그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일구어서 다음번 외래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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