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유방암 수술 후 3년만에 폐로 전이가 되었다.
폐로 전이된 병변을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했었는데 그때는 폐 병변이 작았다.
그런데 그 때 무슨 연유에서 였는지 치료를 받지 않고 퇴원하였다. 그 뒤로 우리 병원에 안 오셨다.
그 후 1년이 넘게 시간이 지났는데
자꾸 기침하는 증상이 생겨서 다시 병원에 오셨다.
그리고 다시 찍은 CT에서 폐전이가 진행된 것이 명확하여 추가적인 조직검사 없이 나에게 협진 의뢰가 되었다.
환자에게 아주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하는 임상연구가 있어서 설명을 드렸는데
무조건 하지 않으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항암치료도 받지 않으시려고 했다.
나는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여 겨우 승낙(!)을 받고 일반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매번 단순 폐 엑스레이만 찍어도 병이 호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환자가 좋아했다.
"암이 좋아지기도 하네요."
병이 좀 좋아지니 환자 마음도 풀리는 것 같고 우리 관계에도 여유가 생겼다.
"그때 왜 항암치료를 안 받으려고 하셨어요?"
"무슨 검사를 했는데 검사 결과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이것저것 검사만 잔뜩 하더라구요. 물어봐도 속시원히 대답도 안해주고. 제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갑자기 항암치료를 하라길래 심통이 났지요. 폐암이면 어차피 죽을 병, 그냥 죽을려고 했어요."
환자는 조직검사의 결과와 치료 방침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못 들었던 것이 섭섭하고 이해도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폐암이 아니구요, 유방암 폐전이에요."
"그게 그거 아닌가요?"
"아니에요. 폐암보다 유방암 폐전이일 경우 치료도 더 잘되고 좋은 약도 많으니까 불행 중 다행인거에요."
"그래요? 그래서 제가 좋아지는 건가요?"
"그런가봐요. 다행이에요."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다.
2주 전 찍은 CT에서 폐의 병변이 조금 자라나는 느낌이다.
처음 크기보다는 여전히 작아져 있는 상태이지만, 이제 다시 커지기 시작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약제 저항성이 생긴 모양이다. 약을 바꾸는게 나을 것 같았다.
여전히 유용한 임상연구 약제가 있어서 설명을 드렸지만 내 말을 들을 기세가 아니다. 연구고 치료고 다 하기 싫다고 하신다. 얼굴 표정도 않좋다. 모든게 다 싫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지금은 제가 어떤 말씀을 드려도 싫으신가봐요?"
"솔직히 그래요. 다 귀찮아요. 감기기운도 있어서 몸도 좀 않좋고. 치료 꼭 해야 하나요?"
"그런 마음이시군요. 그럼 한주간 쉽시다. 저의 치료 계획은 이러이러하니, 잘 생각해보시고, 다음주에 오시면 다시 상의합시다."
그리고 감기약을 처방해드렸다.
사실 외래 중간에는 환자와 치료 계획을 여유있게 논의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이 환자 외래 시간을 제일 앞쪽에 잡았다. 다음 환자 진료시간까지 여유시간을 많이 두고 환자를 먼저 진료하여 대화를 충분히 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약제에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다시 치료하면 또 다시 좋아질 가능성이 높았다. 치료 효과가 좋을 것으로 기대해 볼만한 약도 있는데 여기서 치료를 중단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환자가 오지 않았다.
또 지난번처럼 불충분한 설명으로 환자 마음의 문을 여는데 실패한 것일까?
점심 시간이 다 되어서 환자가 왔다.
"안 오시는 줄 알고 걱정하고 있었어요."
"오기 싫었어요. 그래도 지난주에 선생님이랑 손가락걸고 오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온거에요."
"손가락 약속하기를 잘 했네요. 치료는 받으실거죠?"
나의 질문에 환자가 가방을 열더니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놓는다.
"이게 뭐에요?"
"김치에요."
"..."
"다시 약 바꿔서 항암치료 시작하면 약에 적응하는데 힘들거라면서요. 그래서 가족들 먹을 김장 해 놓고 왔어요. 선생님도 한번 잡숴보세요."
안 듣는 척 하면서 내 설명을 다 듣고 계셨구나.
알싸한 김치 냄새를 맡으니 내 마음도 알싸해진다.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전이성유방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연구결과를 보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0) | 2011.12.13 |
---|---|
뼈주사를 맞는 분들께 (7) | 2011.12.09 |
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환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6) | 2011.11.17 |
겉으로는 쿨 해 보였던 그녀 (4) | 2011.11.14 |
효심 (2) | 2011.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