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12

약한 고리

병은 우리 삶의 약한 고리를 노출시킨다. 꾹꾹 묻어놓고 잘 덮어두고 살았는데 암을 진단받고 보니 그렇게 묻어두고 덮어두었던 문제들이 다 폭발하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그들 부부는 방문객이 별로 없다. 남편 수발은 오로지 부인이 다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재혼한 부부다. 그래서 각자 당신들의 장성한 자녀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병원에 안온다. 뭔가 가족 내 앙금이 있는 것 같다. 이제 막 암 진단을 받았지만 환자는 항암치료를 시작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어쩌면 아무런 치료도 시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50대 초반의 부인, 그녀의 몸에도 여러 신호가 온다. 부정맥도 생긴 것 같고 가끔 숨도 차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고 몸도 자꾸 붓고 그녀도 건강검진 한번 받아봐야 겠다 그러던..

다시 만날 그녀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는 어려운 것으로 결정을 했다. 환자를 돌봐 줄 사람이 있는 친정 집으로 가는게 나을 것 같았다. 남편은 일을 나가야 하니까 그녀를 돌볼 수가 없다. 혹시 병원 갈 일이 있으면 어떤 병원으로 가시라고 소견서도 준비해 드렸다. 우리 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선생님이 계신 병원이라 그 선생님께 전화로 부탁도 드렸다. 그렇게 2달 정도 지났다. 그녀 상태가 많이 않좋아졌나 보다. 남편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환자가 그동안 치료받은 적이 없는 지방으로 가게 되니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고 내가 연락처를 줬었나보다. 임종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최근 몇일 환자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많이 힘들어 하니 가족은 또 당황하고 있나 보다. 진통 조절도 잘 안되고. 더 이상 집에..

어린 보호자 면담

고2 중2 남매를 만났다. 이들의 엄마가 내 환자다. 환자는 짧으면 한달, 길면 세달안에 돌아가실 것 같다. 환자는 그동안 복통도 심하고 출혈 때문에 계속 빈혈이 오는데도 절대 입원하지 않으려고 했다. 집에 애들있으니까 애들 옆에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외래에서 버티다 버티다 통증조절이 안되서 입원하였다. 환자의 남편은 올 4월에 돌아가셨다. 환자는 남편 때문에 고생 정말 많이 했다. 환자 당신도 20대에 심장판막수술해서 평생 쿠마딘 먹고 그것때문에도 고생많이 했다. 암으로 고생 많이 하다가 이제 곧 임종하실 것 같다. 그러나 엄마는 지금 자기 통증이 문제가 아니다. 두 남매를 두고 자기가 먼저 죽게 되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상태가 악화되어 가는 걸 알지만, 아이들에게 절대 얘..

가족 간병의 어려움

가까운 사람의 오랜 투병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간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배우자를 간병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주 가깝기 때문에, 혹은 가까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다치기도 쉽고 환자 상태가 좀 않좋아지면 , 내가 좀 더 잘 했어야 했는데 잘 못한걸까 하는 죄책감도 들고 환자가 요구하는게 좀 많아지면, 내 몸도 힘들어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 수 있습니다. 아침에 회진을 도는데 남편이 손수 만들어 온 죽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죽은 곱게 잘 쑤어서 쌀알갱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구운 조기를 가시를 발라 자잘하게 찢어놓고 백김치 국물이 옆에 놓여있네요. 명절에 먹기엔 약간 아쉬움이 있지만 꽤 영양가가 높아 보이는 식..

환자의 칭찬에 목이 메이다

우리 병원에는 친절 직원 추천제도가 있다. 환자들이 해주는 것이다. 어떤 환자가 나를 친절 직원으로 추천해주면 그가 쓴 추천의 이유가 나에게 메일로 온다. 익명의 누군가일 때도 있고 환자의 이름을 알 수 있을 때도 있다. 추천의 이유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그가 누구인지 알면 특히 더 그렇다. 그 생명의 불꽃이 어느 정도 남아있을지 짐작이 될 때가 많기 때문에 그럴 때가 있다. 나를 칭찬해주는 문구를 내가 볼 때 사실 좀 오그라든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에 그리 그렇게 대단한 것이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는데, 환자들이 나를 친절하다고, 좋게 표현하는 내면에 나를 향한 환자마음의 기대감이 있기 때문일 때도 있다. 선생님,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우물 안 개구리

오늘 호스피스 완화학회 내 보험위원회 회의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 학회의 보험위원입니다. 근사하네요. 명칭이...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 하에서는 완화의료 서비스나 호스피스 서비스가 정식 수가가 발생하지 않는 서비스 항목입니다. 그래서 개별 병원의 형편에 따라 자원봉사적인 측면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병원도 호스피스 팀이 있고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정말 국내 최고의 호스피스 팀이라고 자부하지만) 정작 환자는 내는 돈 없고 국가도 병원도 지원해주는 돈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1년에 2번하는 자선바자회가 우리 호스피스 수입의 전부입니다. 병원 예산도 거의 책정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우리 암센터에서 일부 예산을 지원해 주신것으로 들었습니다. 원장님, 감사합..

서태지 할아버지

79세 할아버지. 우리 병원에서 10년 전에 직장암 진단받고 수술도 받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도 다 받으셨다. 장루도 갖고 계신다. 10년 생존자 새누리클럽 회원이시다. 작년에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원격 전이는 없었지만 췌장 내에서 상당히 진행된 병기라 수술 할 수 없었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 하셨다. 그리고 그 뒤로 1년째 젬자로 항암치료를 하고 계신다. 사진을 보면 아직 병이 남아있지만 처음보다 줄어든 상태에서 크기가 줄어든 채로 1년째 그대로 있다. 이 정도 병기면 평균적으로는 10개월 내에 재발한다고 되어 있는데 아직 괜찮으시다. 할아버지 성격이 긍정 그 자체다. 할아버지는 서태지 랩을 즐겨 하신다. 지난 주 슈퍼스타 K 예선에 나가셔서 방송도 타셨다. 'Come back home'부르..

가끔은 믿을 수 없이 놀라운 환자들

지난 3주 동안 진통제 드신 날짜, 시간, 진통제 종류, 양을 다 기록해 오신 환자. 한번에 몇백알씩 약을 가지고 가신다. 진통제 양이 매우 많다. 항암제나 방사선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아주 느릿느릿 자라는 종양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척추 깊은 근육쪽에 종양이 자라서 다리쪽으로 내려가는 신경을 누르니 걸음을 못 걸으실 정도로 아파서 협진 의뢰가 되었다. 환자는 너무 다리가 아파서 죽고 싶다고 했다. 부인은 옆에서 눈물 바람이다. 환자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할 때는 위기이자 응급상황이다. 당장 입원시켜 작용시간이 빠른 주사진통제로 환자에게 총 필요한 진통제 용량을 계산하였다. 어마어마하였다. 좀 줄였더니 금방 다시 아파지고, 발을 쭉 펴고 눕지도 못할 정도였다. 붙이는 진통제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마취..

스킨쉽을 해주세요

미국에서 남동생이 왔다. 몇달전 보았던 누나가 아니다. 잘 모르겠지만 누나 상태가 나쁘다는 건 의사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것 같다. 난 사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가족도 더 늦기 전에 한번 와서 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사는 친정아버지와 남동생이 비행기를 타고 급히 오셨다. 나는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드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긍정적인 측면, 부정적인 측면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설명드렸다. 그리고 최근 부정적인 증상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어서 더 늦기 전에 가족들을 다 보는게 좋을 거 같아서 오시라고 했다고 말씀드렸다. 패혈증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번주에 돌아가실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이번 고비를 넘겨야겠지만, 그래서 가능한 시간을 많..

나의 결심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자연과 생체리듬을 가까이 할 것. 숲이나 산, 강을 자주 다니며 원기를 잃지 말 것. 계절이라는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 그러므로 잠이나 규칙적인 생활, 휴식 등 내 몸이 원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무시하지 말 것. 이런 생활 수칙을 지킬 때 몸의 균형 회복과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온함. 내면의 초연함을 갖고 명상이나 정상 심박동 훈련을 규칙적으로 할 것. 평온함보다는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고, 사람들의 행복과 사고방식을 변화시켜 균형적인 미래를 만들려는 욕구를 실천하면서 느끼는 충만한 느낌도 좋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가진 한계를 무시하는 것. 그것은 가장 위험한 행동이다. 그것을 긍정적인 스트레스라고 믿으며 중독되지 말자. 스트레스 양을 늘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