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12

남편의 눈물, 그리고 아이의 백일떡

남편은 병원비 중간정산을 해야 한다며 은행에 가서 마지막 적금을 깨고 왔다. 부인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게 맞는 것 같다며… 30대 초반의 부부. 행복한 연애, 결혼, 첫 아이 임신. 그런 기쁨으로 시간이 충만한 임신 7개월째 어는 날 배속에는 아이만 있는게 아니라 종양도 같이 자라고 있는걸 알았다. 태아의 폐가 성숙되기를 기다려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엄마는 수술을 받았다. 소장암 그리고 복강내 전이. 항암치료를 2번 밖에 못 했는데 장폐색으로 장루를 빼는 응급수술을 다시 했다. 그리고도 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콧줄을 끼우지 않으면 소화액이 계속 역류하여 토하는 일이 반복되어 음식을 먹지 못하고 콧줄을 끼운 상태로 지내야 했다. 아무런 치료도 하지 못하고 환자의 상태는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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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중고노트북 기증받습니다 50대 중반의 여자 환자. 갑작스러운 사지 마비로 입원하였다. 척추를 누르는 종양이 커지면서 갑자기 하지의 감각, 운동기능이 상실되었다. 아무런 느낌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미 방사선 치료를 한 곳인데 종양이 더 커졌나보다. 그녀는 원래 자신을 예쁘게 단장하길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화려하게 꾸미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예쁘게 단장하는 것. 첫눈에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도 자신의 흐뜨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보다 어린 딸이 항상 엄마 옆을 지키고 있다. 평생 엄마가 자신을 돌봐주었는데, 갑자기 한 순간에 딸이 엄마를 돌봐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딸은 쉬지 않고 엄마..

거짓말

가끔 거짓말을 하게 된다. 지병으로 간경변이 심했던 60세 난소암 환자. 난소암 때문에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6차례 하였다. 간경변 때문에 백혈구 수치가 남들보다 많이 떨어지고 또 회복이 느렸던 탓에 항암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환자도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복수가 생겼다. 간 때문인지, 난소암 재발 때문인지 확인하기 위해 CT를 찍었다. 보이는 병변은 없지만 복수가 아주 많다. 복수를 빼서 검사를 했다. 물에서 암세포가 관찰되었다. 난소암 재발로 진단. 난소암은 platinum을 기본으로 치료하게 된다. platinum에 반응이 좋은 타입인지, 아닌지가 예후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 환자는 마지막 platinum을 쓰고 6개월 내에 재발했기 때문에 platinum..

병원 밖에서 보호자를 만나다

환자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 먹으면 자꾸 토하고 소변양이 줄면서 온몸이 퉁퉁 붓고 있다. 무슨 검사를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또 검사를 해도 환자의 증상 완화를 위해 특별히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대책이 거의 없다. 의사로서 힘들어 하는 환자를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 정말 힘들다. 그러나 그 마음이 가족만 할까? 아직 의식이 맑은 환자. 진통제를 더 올리거나 밤에 수면제를 쓰는 문제에 대해서는 완강히 거절하고 있다. 환자보다 더 초췌해진 남편. 남편분이 더 지쳐보여요. 부인에게 멋진 모습 보여주셔야죠! 밤에 연대 캠퍼스 쪽에 있는 남편을 우연히 만났다. 아침에 내가 한 말 탓인지 면도를 하셨다. 회진 때 내가 환자에게 우울한 말 할까봐 남편은 옆에서 전전긍긍하신다. 먹으면 자꾸 토하..

응급은 아니었는데...

이제 항암치료 그만 하는게 좋겠어요. 집에서 편하게 지내세요. 그렇게 보낸 환자. 나보다 어린 환자. 나이 또래의 남편.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지난 1월 우리 병원을 떠나갔다. 집이 지방인 그들을 보내며 나는 소견서를 써 주었다. 진단명, 그동안 한 시술, 그동안 한 항암치료 종류와 일지. 그리고 주치의로서 나는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지 않을 계획이며 보존적 치료가 환자에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적어보냈다. 마지막까지 사용한 약 처방전을 같이 보냈다. 환자는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겠다고 했다. 혹시 근처 병원에 가게 되면 이 소견서를 제시하라고 했었다. 그 환자가 1주일전부터 다리가 아파서 자기 사는 동네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지금 손 쓰기 어렵다고, 원래 다니던 병원 가라고 했다며 자기 다시 우..

죽기전 항암

오늘 외래는 오전은 암센터에서 오후는 새병원 유방암 클리닉에서 있었다. 오전과 오후 사이는 1시간. 그 사이에 나는 우리병원에서 진행된 임상연구에 대한 심의를 받아야 했다. 다국적 임상시험이라 본사에서 외국사람이 심의를 하러 나왔다. 어제 밤에 심의대비를 위해 공부를 잔뜩 해야했다. 우리병원에서 진행되는 임상연구의 진행과정에 대해 발견된 약 부작용에 대해 임상연구 중 입원한 환자에 대해 우리가 입력하고 보관중인 자료의 비밀성과 안정성에 대해 뭐 그런 여러가지 질문을 하면 내가 대답하면서 임상연구의 질 평가를 받는 자리였다. 외부(외국)에서 우리 병원을 평가하러 왔으니 미팅 시간에 맞춰서 가는게 예의이겠으나 오전 진료시간에는 병이 나빠진 환자가 많았다. 시간을 맞추려고 닥달하듯 환자를 진료했지만, 병이 나..

사랑하는 이를 만날 때까지

혈압이 떨어지고 열이 나서 응급실로 왔다. 얼마전 퇴원했을 때보다 환자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엄마 말을 들어보니 어제까지는 그럭저럭 괜찮게 지내셨다고 하는데 오늘 응급실에 와서 한 피검사 결과가 아주 좋지 않다. 남편은 지금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고 계신다고, 내일 새벽에 서울에 도착하신다고 한다. 지난번 입원 때 나는 남편과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사실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이들 부부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예쁜 부부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우리 레지던트는 오늘밤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잔뜩 경고를 했나보다. 환자 랩을 보면 그렇게 생각이 들만도 하다. 남편 빼고 친척들이 잔뜩 모이셨다. 그렇게 나빠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

환자의 웃음

호스피스 시범사업 때문에 일주일에 두번씩 호스피스 회진을 따로 돌고 있다. 회진도 따로 돌고 밤이면 해당 환자의 담당 레지던트들과 환자에 대해서 다시 논의하고 환자를 위해, 증상 완화를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게 좋은지 좀더 시간과 노력을 들이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 치료를 받다 받다 상태가 않좋아져서 호스피스로 협진이 나기 때문에 내가 가서 만나는 환자들은 다들 너무 고통도 심하고 보호자들도 많이 지쳐있기 마련이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병원이나 의사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원망도 많고 불만도 많다. 그런 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우리 호스피스 선생님들의 노력에 나는 인간적인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매번 호스피스 팀 미팅을 하는 동안 환자의 여..

무정하게

우리병원으로 입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소개해 드린 요양병원으로 가시고, 이제 임종 준비를 하세요. 자꾸 병원 오지 마시구요. 무정하게 환자를 응급실에서 돌려보냈다. 환자는 이미 비슷한 증상으로 2번 입원했었고 입원해서 그냥 경과관찰 하다가 재원일수가 길어지면 퇴원했었다. 뇌막으로 전이된 이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만큼 다 하고 그 치료의 합병증으로 더 힘들어 해서 더 이상의 치료는 하지 못한채 그 병원에서 치료를 종결했다. 그리고 우리 병원으로 오셨다. 나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었다. 뇌막전이도 조금씩 나빠지고 치료 합병증도 쉽게 호전되지 않아 그로 인한 신경학적 상태도 조금씩 나빠지고 그렇게 힘겨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나는 보호자에게 여러번 뇌 사진을 보..

죽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 아흔이 넘으셨다. 가족들은 진작에 다 마음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창 컨디션이 좋았는데 갑자기 Cancer stroke 이 오고 나서 말씀을 잘 못하시게 되었다. 영상검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임상적으로 암으로 인한 혈전증이 뇌혈관에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폐렴이 동반되었다. 아마 사인은 폐렴이 될 것이다. 성당을 열심히 다닌 외할머니. 성서 필사를 2번이나 하셨다. 대학노트 10권도 넘는 분량의 필사를 2번이나 하신 셈이다. 노트를 보니 한자의 오자도 없고 수정액도 안 쓰셨다. 줄도 반듯이 잘 맞추셨다. 노인이 대단한 정신력이라며 온가족이 혀를 내둘렀다. 장례를 하게 되면 발인하는 날 아침에 외할머니가 다니던 목포 성당의 10시 미사를 맞추기로 했다. 자식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