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응급은 아니었는데...

슬기엄마 2012. 3. 17. 12:33


이제 항암치료 그만 하는게 좋겠어요.
집에서 편하게 지내세요.

그렇게 보낸 환자.
나보다 어린 환자. 나이 또래의 남편.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지난 1월 우리 병원을 떠나갔다.
집이 지방인 그들을 보내며 나는 소견서를 써 주었다.
진단명, 그동안 한 시술, 그동안 한 항암치료 종류와 일지.
그리고 주치의로서 나는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지 않을 계획이며 보존적 치료가 환자에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적어보냈다. 마지막까지 사용한 약 처방전을 같이 보냈다. 환자는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겠다고 했다. 혹시 근처 병원에 가게 되면 이 소견서를 제시하라고 했었다.

그 환자가
1주일전부터 다리가 아파서
자기 사는 동네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지금 손 쓰기 어렵다고, 원래 다니던 병원 가라고 했다며 자기 다시 우리병원에 와도 되냐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콩팥 수치가 않좋아서 내가 전화번호를 알려줬었나보다)
응급실로 오시라고 했다. 환자는 앰불런스를 타고 밤12시에 응급실에 왔다.
신장수치는 2. 빈혈수치는 8.8 혈압, 맥박 괜찮다. 환자 상태가 좋은 건 아니지만 전화로 들은 것보다 환자 상태는 그리 많이 나빠지지 않았다. 다행이다.
얼마 안되는 용량으로 몰핀 진통제를 연결했더니 통증이 금방 좋아졌다. 조영제 안들가는 CT를 찍어서 관 스텐트를 갈아끼우는게 좋을지 밖으로 요관을 하나 더 설치하는게 좋을지 결정하기로 했다.
다리가 부은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혈전증이 생긴것 같다. 부인암은 혈전증이 잘 생긴다.

응급으로 앰불란스로 허둥지둥 서울로 올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렇게 지방에서 사는 환자들이 문제를 해결 못하고 서울에 오는 일을 몇번 겪고 나면 의기소침해지고 많이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병원을 오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에게.
밤에 응급실을 지나다가
환자가 왔을 것 같아서 들렀더니 환자는 너무 많이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내가 소견서를 좀더 잘 썼어야 했나? 환자는 곧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성 멘트만 듣고 왔나보다.

전화로 들은 것 보다 아주 나쁘지는 않네요.
빈혈 교정도 하구요
스텐트 문제를 해결해 봅시다.
그만 울고요.

자기가 처음부터 진료하지 않은 환자를 상태도 않좋은데 첨 보면 답답하고 파악이 잘 안된다.
그래서 난 소견서를 써서 보낼 때 내 메일 주소랑 전화번호도 기재한다. 환자 파악에 이해가 안되시면 전화하시라고. 그러나 실상 환자 진료의 연계가 잘 안된다.
우리 환자는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 환자도 남편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렇게 warning만 할 필요가 있었을까? 검사해서 해 줄 수 있는 부분까지 해 주면 되고, 말기 암환자니까 몰핀 진통제 잘 써주면 되는거,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복잡하고 기왕력이 길다는 이유로 잘 파악하지 않고 환자를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데리고 있어야겠다. 환자 마음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