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환자의 웃음

슬기엄마 2012. 2. 23. 18:47

호스피스 시범사업 때문에 일주일에 두번씩 호스피스 회진을 따로 돌고 있다.
회진도 따로 돌고
밤이면 해당 환자의 담당 레지던트들과 환자에 대해서 다시 논의하고
환자를 위해,
증상 완화를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게 좋은지 좀더 시간과 노력을 들이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 치료를 받다 받다 상태가 않좋아져서 호스피스로 협진이 나기 때문에
내가 가서 만나는 환자들은 다들 너무 고통도 심하고 보호자들도 많이 지쳐있기 마련이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병원이나 의사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원망도 많고 불만도 많다.
그런 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우리 호스피스 선생님들의 노력에 나는 인간적인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매번 호스피스 팀 미팅을 하는 동안
환자의 여러 상황을 토의하고 난 다음
회진을 돌기 위해 방을 나서는 순간의 내 마음은 피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솔직히 마음이 가볍지 않다.

그런 마음으로 찾아간 환자.
황달 수치가 20에 가깝다 이 정도 수치는 언제라도 돌아가실 수 있는 수치라는 걸 의미한다.
차트 정보로만 확인한 환자의 상태는 좋지 않다.
환자도 보호자도 우리 병원에 정을 뗀 것 같다.

환자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환자는 눈을 감고 있다.
멀리서부터 온 몸이 노랗게 변한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황달 때문에 가지고 있는 관을 살펴보고
온 몸을 진찰해본다.
이것 저것 물어보고 반응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누어본다.
통증도 확인하고
진통제 때문에 구역감이 생기는 점에 대해서 설명드렸다.
할아버지는 내 질문에 은근 대답을 잘 하신다.
대답을 잘 하시니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며 분위기가 좋아진다.
농담을 건넸더니 할아버지가 웃으신다.
내가 호스피스 회진을 가서 환자랑 웃으면서 이야기 나눈 것은 처음이다.
대화를 거듭할 수록 할아버지가 자꾸 웃으신다.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해진다.
옆에 계신 부인도 대화에 합류하신다. 같이 웃으신다.
나는 다른 회의가 예정되어 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환자와 부인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우리 완화케어팀의 계획, 환자를 위해 해 드리고 싶은 부분, 가능한 도움 등에 대해 상의하였다.

어떤 환자와 가족이 임종을 앞두고 웃음지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밝은 웃음을 보여주신 할아버지의 내공은 필시 내 인생의 대단한 선배임이 분명하다.
젖은 스폰지처럼 무거운 내 마음이 가벼워진다.

뭔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든다.
환자를 집으로 퇴원시키고 싶다.
집에서 편안하게
가족들과 함께
증상을 잘 조절하며 남은 인생의 시간을 잘 마무리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다.

환자의 웃음, 그것은 의사에게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