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괜히 항암치료 했어요

슬기엄마 2012. 2. 7. 09:50


이렇게 힘든 건줄 알았으면 항암치료 안하는게 나을뻔 했어요.
항암치료 하기 전까지는 잘 먹고 잘 걷고 괜찮았는데 이게 뭐에요....
부인의 넋두리.

아침 회진 때 엉엉 우신다.
그냥 우시도록 놔 둔다.
넋두리를 할 때는 들어드리는게 좋다.
거기다 대고 무슨 설명을 해도 내 말을 들을 겨를이 없다.

환자가 나빠지면
1. 병이 나빠지기 때문에 상태가 나빠지는 것인지
2. 치료와 관련하여 치료부작용과 합병증 때문에 컨디션이 나쁜 것인지
3. 현재 병과 무관하게 다른 병이 생겨서 상태가 나쁜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4기 암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대개 1번과 관련하여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2번에 대한 대책이 미흡해지기도 쉽고
3번의 원인을 미쳐 찾지 못한채 1번으로 원인을 돌려버리기도 쉽다.
4기 암환자들은 기본적으로 1번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상태라서, 상태가 악화되면 1번으로 판단해버리고 그렇게 설명하면 환자나 보호자들도 그냥 받아들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1번도 있지만 2번과 3번의 문제가 겹쳐 있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너무 병이 악화된 것으로 몰아가기 보다는 원인을 정확히 감별해서 찾는게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여러 모로 지치고 힘든 환자를 어디까지 검사해야 하고 어디까지 기다려봐야 하는지를 판단하는게 쉽지는 않다.

두경부암을 진단받은지 3년, 1년전에 재발했는데 크게 나빠지지 않고 그럭 저력 괜찮았는데 이번에 간으로 크게 전이가 되었다. 두통이나 어지러움증 증상은 심하지 않아서 항암치료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암치료 1주일만에 잘 못 드시고 나트륨도 많이 떨어지고 의식도 명확하지 않은 채 응급실로 오셨다. 1번과 2번, 3번의 여러 요인을 다 가지고 계신다. 3번부터 해결하면서 전신상태를 호전시켜야 겠다고 생각하는데, 환자의 상태라는게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건 아니라 보호자인 부인이 넋놓고 하소연을 하신다.
이 환자는 항암치료를 하고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 맞기 때문에 일단 2번에 초점을 맞춰서 잘 치료해야 한다. 그런데 쉽게 컨디션이 좋아지지 않는게 1번과도 관련이 있다. 부인이 괜히 항암치료를 했다고 나를 원망하신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1주일 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항암치료를 시작했을 것이다. 예후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떄 환자는 뭐든지 내가 시키는대로, 내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설명을 드려도 제가 뭘 아나요, 그저 선생님이 좋은 결정 내리시면 따라가야죠. 그런데 정작 몸 상태가 나빠지지 그런 마음이 아닌가보다. 당연하다.

언제 검사를 하지 말아야 할지
언제 치료를 하지 말아야 할지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을 결정하는 일이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건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문제가 아니라 의사가 제대로 결정을 해야 하는 능력의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