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의 기도

슬기엄마 2012. 1. 19. 23:12


면역억제제를 바꿔 쓰고 경과관찰 중인 나의  카포시 살코마 환자.
매일 회진을 돌면서 느끼는 것은
그는 이미 30년 동안 투석, 이식과 관련하여 병원 생활을 겪는 동안
우리 병원 시스템에도 빠삭하고 병원과 의사들의 생리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미쳐 시간이 없어서 다른 병동에 있는 그 환자 회진을 못돌고 저녁에야 그를 찾았다.
기운이 없고 잘 먹지 못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그.
그가 오늘은 자리에 앉아 있다.
나는 매일 그의 목 주변을 만져본다. 혹시 목 주변 림프절이 좀 작아지지는 않았는지..
그는 식사를 거의 못해서 비쩍 말라 있다. 3-4개월 동안 거의 못 먹고 있다. 음식 먹는 것이 조금이라도 수월해지는지... 복강 내 림프절과 간 전이로 인해 장운동이 잘 안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심 먹는 양이 느는 것을 회복의 징조로 삼고 있다. 객관적인 지표로 황달 수치와 신장 수치에 주목하고 있다. 매주 두번 투석 전 혈액검사를 하고 있다.

먹는 양에는 아직 별 변화가 없다.
림프절을 만져봐도 아직은 변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황달 수치는 6에서 오늘 1.8로 떨어졌다. 신장수치도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 올레!
투석은 세번 하고 있지만 두번만 해도 될 정도로 소변도 나오고 뭔가 약간 호전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경과를 보면 일단 나쁘지는 않지만 뚜렷하게 좋은 것도 아니다.
면역억제제를 바꾼지 4주가 지나면 PET-CT를 찍어볼 예정이다. 오늘은 10일째다.

회진을 가면 특별히 할말이 별로 없다. 나는 이런 저런 안부를 묻지만 그는 항상 뚱하다. 맨날 비슷한 걸 물어보냐는 불만도 있는 것 같고, 별로 호전되는 것도 없는데 과연 치료를 하고 있기는 하는거냐는불만을 가진 것도 같고, 병동 걷기라도 좀 하라는 나의 말에 힘이 없어서 화장실도 겨우 가는데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와의 대화가 쉽지 않다.

오늘 저녁에는 어머니가 함께 계신다.
회진을 돌고 병실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따라 나오신다.

선생님, 제 아이가 말이 좀 많아졌네요.
원래 별 말이 없는 아이였어요. 의사선생님이 회진을 와도 아무말 없이 듣기만 하는 아이인데, 선생님에게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하네요.
그래요? 저한테도 별 말씀은 안하시는 편이에요. 딱히 병이 좋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증상도 호전되지 않으니 답답하셔서 그런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에요. 선생님한테 마음의 문을 연것 같아요. 마음도 많이 순화된 것 같고 많이 편안해 하는 것 같아요. 성경도 안 읽는 아이였는데, 요즘은 성경도 읽고 목사님 방문도 완강히 거절했었는데 요즘은 목사님 만나서 기도도 받고 그러고 있어요. 이런 일 처음이에요.
다행이네요.
어차피 완치되기 어려운 병이라면, 남은 시간 동안 마음의 평화라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느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아요.

종교적 심성이 약한 내가 이런 말을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대답할 말이 없다.

매일 몸 상태의 변화에 대해 나에게 말해달라고 했었다. 그동안 환자는 별 말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눈꼽만큼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오래 앉아있으면 등이 많이 당겼는데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 화장실 다녀오면 기운이 너무 없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잠을 조금 더 많이 잘 수 있게 된것 같다....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해주니 고맙네요.
뭐, 그닥 많이 좋아졌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조금 나아진거 같아요.
그게 그가 대화하는 방식이었나 보다.
 
병원 내 와이파이가 너무 느려서 인터넷하는게 짜증난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미드나 음악 몇개를 복사해서 이번 설 맞이 선물을 해야겠다.
나랑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병동 산책에 나서는 그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