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외로움

슬기엄마 2012. 1. 17. 19:55


6년만에 유방암이 재발했다.

HER2 양성 유방암.
6년전에는 HER2를 타겟으로 하는 약제가 이제 막 나와서
우리나라에서는 쓸 수 없었고, 전세계적으로 임상연구를 막 시작하던 차였다.
환자는 그때 당시 할 수 있었던 치료를 다 받았다.

재발 후 환자는 HER2를 타겟으로 한 임상연구가 있어서 치료를 받았다.
표적치료제를 쓰면 놀랍게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효과가 없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 환자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흉막에 물이 있었는데 줄지 않았다.
물을 없애고 흉막유착술을 했지만 물을 또 다시 고였다. 배에도 물이 생겼다.
병이 나빠지면서 복강 내 물이 늘어나니까 복수로 환자가 많이 불편했다.
허셉틴도 쓰고 타이커브도 썼지만
뾰족하게 치료효과가 없었다.
환자는 날 만나고 1년이 지났지만 별로 좋아지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나빠졌다.
흉강과 복강에 물이 고이니 몇번의 시술을 통해 관을 넣고 물을 빼기를 반복했지만
정작 암 자체가 잘 콘트롤되지 않으니 물은 계속 생겼다.

그 와중에
혈전증도 생기고
체내 혈액응고수치도 들쑥날쑥하고
물을 자꾸 빼니 체내 알부민도 자꾸 떨어져서 몸이 붓는다.
환자는 점점 쇠약해지고 식사량도 줄어서 몸이 말라갔다.

그리고 오늘 임종을 앞두고 있다.

환자는 아무리 힘들어도 한결같이 나에게 예의를 갖추시는 분이었다.
함께 오는 따님과 손자도 한결같이 예의를 갖추시는 점잖은 가족이었다.
치료 반응이 없으면 의사에 대한 믿음도 엷어지고 불평이 많아지는데 그렇지 않은 환자라 더 속상했다.
요 며칠 사이 환자는 숨이 많이 차서 진통제 주사를 맞고 많이 주무시게 했다.  
심장 주위에도 물이 차서 심장이 효과적으로 펌핑 기능을 못하니 숨이 더 차는데, 물을 빼기에 위험함이 많아 손을 못 댔다.
분당 140회가 넘는 빠른 맥박수.
숨이 가빠서 말씀도 잘 못하시는 분이
요즘 아침 회진 때 가면 왜 자주 자길 보러 오지 않냐고 날 원망하셨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아침 저녁으로 가보는데 저녁 회진을 매일 가지 않으니 환자가 섭섭하셨나 보다.

오늘 아침 회진 때는 환자가 힘든 숨을 몰아쉬며
말씀을 많이 하신다.
의자를 갖다 놓고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가 제일 힘드세요? 지금 저에게 무슨 말씀을 제일 하고 싶으세요?
너무 외로워.
마음 정리 다 하셨잖아요. 기도도 많이 하셨구요.
그래도 죽는 건 너무 외로워.
자녀분들이 이렇게 주위에 계시고 환자를 응원하고 있잖아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내 뜻대로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 내 뜻과는 반대로 의사선생님한테 말하고 있어.
말하려고 해도 내뜻대로 말이 잘 안나오죠? 진통제 때문에 그럴 수 있어요. 그거에 너무 신경쓰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
....
우리의 침묵이 계속 된다.

이제 하느님께 편안하게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기도하고 계셨잖아요.
그런데도 외로워. 그러니까 내 옆에 있어주면 안되?
....
....

저 다른 환자 회진 돌구요, 오전 외래보고 다시 올께요. 한시에 다시 올께요. 꼭.
....
환자는 말씀이 없으시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 대답이다.

그리고 한시에 병실에 다시 들렀다.
동공이 많이 열렸다. 아직 동공반사는 있다.
손 잡아보세요 하면 내 손을 잡는 정도의 가물가물한 의식이 남아있다.
가족들은 모두 눈이 충혈된 채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오늘 돌아가실 거 같아요. 오후면 혈압도 떨어지고 맥박도 떨어질거에요.
더 이상 약 안쓸게요.

방금 혈압이 50 으로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래 시간을 끌지 않으셔서 다행이다. 오늘 돌아가시면 좋겠다.

우리 환자가 겪었을 외로움은 내 마음의 그늘로 남아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