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명상 프로그램을 마치고

슬기엄마 2012. 1. 4. 20:49

애초 계획과는 달리
난 우리 병원 명상프로그램에 끝까지 참석하지 못하였다.
한 세션 당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고 명상 중에는 핸드폰을 꺼 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럴 수가 없었다.
6주간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명상 선생님과 일단 간단하게 평가하였고
설이 지나고 총평가를 하기로 했다.

중간에 병이 나빠져서 입원한 환자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매번 참석하지 못한 환자
매번 모임의 분위기는 그런 환자들로 인해 조금씩 어색함과 긴장이 감돌았다.
나도 마음이 이렇게 흔들리는데
병이 나빠진 환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다른 환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명상 선생님이 잘 이끌어 주셨고
환자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다.
총 평가를 준비하면서 환자들에게 땡큐메일을 보내려고 한다.
나의 이런 어줍잖은 시도, 병원에서 시도하는 공식적인 프로그램도 아닌데 나를 믿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보내려고 한다.

무엇보다 확인하고 싶었던 환자들의 마음.
정말 도움이 되셨을까?

내 전화번호를 알고 계시는 한 보호자분이 문자를 보내주셨다.

6주 동안의 명상 프로그램을 통해 큰 선물을 받았어요. 감사해요.
많이 활용해서 더욱 더 건강해질게요. 선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환자가 누군지, 현재 상태가 어떤지 아는 나로서는
문자를 받으니 가슴이 뭉클하다.
나한테까지 인사를 챙겨주시는구나...
환자는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내 병원에 입원해계셨다.
퇴원하시기에 상태가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그런 분이 방사선치료를 받으면서, 어지러움을 견디면서 명상 프로그램을 끝까지 마치셨다. 부부가 항상 함께 하셨다.
내가 이 환자의 주치의가 아니기 때문에 병동에서 지나치면 그냥 눈인사만 한다.

오후에 호스피스 담당 간호사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떠셨어요?
다섯번째 명상 시간에 우리의 삶과 죽음을 직면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 충격적이기도 했고 좋기도 했어요.
아직 환자들의 건강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상태잖아요?
비록 병은 있지만 일상생활을 다 꾸려가실 수 있는 건강한 몸 상태에서 이런 고민과 생각을 해보는게 좋은거 같아요.
지금까지의 내 삶과 앞으로의 시간,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의 질문은 사실 직면하게 힘들고 회피하고 싶은 주제잖아요. 환자들이 지금 상태가 좋으니까 오히려 더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고민하실 수 있는거 같아요.
너무 아프고 힘들면 그런 생각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데
시간이 아직 어느 정도 남아있다고 생각할 때
충분히
이성적인 사고로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직면하는거.
제가 생각한 것보다 환자들이 훨씬 더 용감하고 적극적이고 현명한 것 같아요.
저도 이렇게 직접 환자들과 대면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누어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환자들이 계속 명상을 배우고 하고 싶다고 하셔서 명상 선생님 명함을 받아가신 분들도 꽤 많아요. 

시험적으로 시도해 본 프로그램.
명상 선생님도 개인적으로 얻은 게 많으셨다고 했다. 암환자와 함께 해 본 적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호스피스 담당 간호사 선생님도 앞으로 일을 계획하는데 좋은 경험이 되셨다고 하셨다.
참여한 정신과 동기도 약을 쓰기 어려운 임산부나 불안 환자에게 적용해 보고 싶다고 한다.
나에게도 많은 가르침이 있었다.
앞으로 프로그램을 더 잘 운영하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할지, 시간은? 공간은? 환자 구성은? 이런 구체적인 사항들을 어떻게 보완하는게 더 좋을지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하게 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원래 병원 내 윤리위원회에 미리 서류를 작성하고 임상연구의 형태로 세팅을 잘 갖추어 시작했으면 녹화도 하고 다른 검사와 병행해서 진행하면서 객관적인 자료를 더 많이 모을 수 있지만 아직 그렇게 시작할 단계가 아니었다. 이번 결과를 잘 분석해서 가능성이 있으면 그렇게 해보고 싶다.

유방암은 따로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환자군의 특징이 다른 암과 다르다. 유방암 환자들과 함께 하는 명상 프로그램을 하는게 내 희망사항이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마친 분들, 호르몬제를 복용하는 분들은 재발에 대한 불안, 일상으로의 복귀, 가족관계 등에서 나름의 고민이 많다. 호르몬제 부작용도 만만치 않고 항암치료 후유증도 꽤 오래 지속된다. 그들과 한 세션.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또 입장이 다르다. 치료를 언제까지 해야할 것인가,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치료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나의 예후는 과연 어떨 것인가,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는 않을 것인지, 다른 암에 비해 전이가 된 후에도 예후가 좋고 오래 사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들만의 세상이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들과 한 세션. 
이렇게 성격이 비슷한 그룹의 환자들과 명상 프로그램을 함께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지금 하는 일도 제대로 잘 못 해내고 있는데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해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많았다.
환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더 좋은 약으로 몸을 치료하고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마음을 치료하고
우리 환자들에게 뭐가 되었든 좋은 걸 드리고 싶다.
이번 시도가 그 노력 중의 일환이 되기를 바란다. 계속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