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나도 말문이 막혀...

슬기엄마 2012. 1. 7. 20:46

10살부터 신장에 이상이 있었다.
20살부터 혈액투석을 하였다.
30살에 첫번째 신장이식을 하였고
35살에 거부반응이 와서 다시 혈액투석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나이 올해 39세.
두번째 신장이식을 하였지만 10월에 다시 거부반응이 와서 다시 투석을 시작하였다.

두번째 거부반응이 온 이후 전신상태가 계속 좋지 않았다.
원래 콩팥 기능이 좋지 않은 만성신부전 환자들은 늘 기운이 없고 잘 못 먹고 자꾸 토할 것 같은 증상이 생기고 머리도 맑지 않고 그렇다. 그래서 거부반응 이후 동반되는 증상이려니 했다. 그런데 투석을 했는데도 이런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다.
우연히 만져지는 림프절이 있어서 지난 주 조직검사를 했다.
카포시 육종이 진단되었다.
그렇게 또 다른 병이 생기면서 그는 갑작스럽게 말랐고 전신상태가 나빠졌나보다.
병이 진단되고 보니 비로소 설명된다.

난 그를 오늘 처음 만났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그. 카포시 육종을 치료하기 위해 어떤 약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다.
그의 옆에는 여동생과 엄마가 함께 계신다.
묻지 않았지만 결혼은 못 한것 같다.
이 긴 투병기간 동안
그에게는 연애하고 사랑할 젊음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 같아서...
엄마와 여동생에게 몸 곳곳의 림프절과 간으로 전이된 사진을 보여드리며 설명하고 있는데
환자가 비척비척 병실에서 걸어나와 그 사진을 보고 말았다.
환자에게는 말로 설명하고 싶었다.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어제 협진이 났을 때
난 바짝 긴장했다.
흔히 볼 수 있는 환자가 아니다.
밤새 논문을 찾았다. 별로 입증된 치료도 없다. 흔한 병이 아니다.
환자의 증상, 원인, 병이 발생한 기전, 예후, 치료 방법을 논문으로 공부한다.
카포시 육종은
대개 AIDS 환자에서 발생하는 사례가 많고 
드물게 이식한 환자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더 드물게는 그냥 생기기도 한다.  

이 환자의 치료를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면역억제제를 다른 종류의 약으로 바꾸고
병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신장내과, 이식외과 선생님과 상의하였고 이선생님들의 백업 하에 내가 주치의가 되었다.
변경한 약제를 복용하고 한달 후 다시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 일단의 치료계획.
CT를 찍지 않아도
환자를 매일 보면 과연 이 환자의 예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터페론 같은 면역치료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독성이 강해 매우 주의깊게 모니터링하면서 치료해야 하고 중환자실을 갈 가능성도 높다고 되어 있다.
일부 사례 연구에서는 아바스틴 같은 혈관생성억제제가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아바스틴은 독성이 심하지 않으니 환자의 전신상태를 고려했을 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매우 큰 무리가 된다.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경제적인 형편을 여쭤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물어보나 마나 두번의 이식으로 가계는 매우 어려운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에게
그의 가족에게 설명하는 나도 말문이 막힌다.

그는 도저히 퇴원할 컨디션이 안된다.
암센터로 옮기지 않았다. 신장내과 이식외과 선생님도 매일 봐주셔야 하고, 혈액투석을 전문으로 하는 병동에 있는 것이 환자에게 나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최소한 한달간 신장내과 병동으로 회진을 가게 되었다.
한달이면 어떤가 두달이면 어떤가. 그가 퇴원할 정도로 회복될 수만 있다면.
너무 가혹한 형벌이다. 감히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그에게 나는 어떤 의사로 다가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