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통증 회진

슬기엄마 2012. 2. 1. 21:10

우리병원 호스피스 팀이
올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간 국가에서 시행하는 '산재형 호스피스'에 관한 시범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산재형 호스피스란
병동형 호스피스가 호스피스 환자만 한 병동에 모아 한 주치의 밑에 입원하여 진료를 받는 시스템인 것에 비해
호스피스 환자가 일반 다른 환자들과 함께 입원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원래 주치의를 변경하지 않고 호스피스 케어가 추가적으로 제공되는 형태를 말한다. 병동 여기저기 환자가 흩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산재형'이라고 명칭이 붙여졌다.
병동형은 호스피스 환자만 모여있으니 나름의 장점이 많이 있지만
오랜기간 자신의 치료를 담당하던 주치의가 변경되고, 호스피스 치료를 결정하는 순간, 일반 치료는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임종 준비만을 하는 것으로 오해되기 쉽다. 환자가 호스피스를 수용하는 순간, 주치의로부터 멀어지고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여 호스피스 케어를 거부하게 되는 단점이 있는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일반 환자가 아니라 말기 환자로 따로 격리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병원 입장에서도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는 것은
들이는 노력과 인력 투입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꺼리는 입장이다.
호스피스 환자들을 대상으로 수익성 높은 검사나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비싼 약제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 경영자의 입장에서 호스피스는 비호감이다.

현재의 실상은
호스피스로 협진을 낼 경우 적절한 서비스의 범위, 적절한 수가 이런 것들이 제대로 책정되어 있지 않아서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자신을 오래 동안 치료해주고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주치의를 변경함없이 호스피스 케어가 추가됨으로써 효과적으로 증상이 조절될 수 있게 지원하고 의료적, 비의료적 측면에서 말기암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표준화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어떤 프로그램, 어느 정도의 수가가 현실적일지를 타진해보고자 제안된 사업인 것 같다. 

우리 병원 호스피스 팀은 호스피스 전담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적지원을 위한 목사님, 자원봉사자 등 여러 관련 인력들이 모여있고 그 중 나는 의료진의 일원으로 팀에 합류하여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호스피스 팀의 여러 역할 중 말기 암환자들의 통증과 그외 기타 불편한 신체적 측면의 문제를 점검하며 환자의 불편한 증상을 호전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의사가 아닌 직종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기회가 되다보니, 평소 의사로서는 잘 파악하고 있지 못했던 가족관계, 환자를 중심으로 한 지지체계, 환자의 심적 갈등, 정서적 어려움 등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는 장점이 있다.
다만 환자는 원래 나의 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의사이면서도 약간은 환자들과 심리적 거리가 멀다. 나에 대한 신뢰도 없는 상태이다. 신뢰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성의를 갖고 꾸준히 성심껏 진료하면 된다.

그러나...

나는 환자들이 우리의 호스피스 케어를 통해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이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통증이나 증상 완화를 위한 노력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신경쓰고 약을 조절하고 환자의 변화 상태를 파악하는 치밀한 관심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다. 지금 나는 내 환자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도 부족함이 많은데 또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환자군을 맡아 그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현실적인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범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의뢰된 환자가 6명이 되었다.
모두 암성 통증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계신 분들이다.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가기에도 몸 컨디션이 않좋은 분들도 많고, 좋아지지 않는 병에 환자와 가족 모두 심리적 육체적으로 지쳐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약제를 조절하면서 봐 드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일주일에 세번의 회진으로는 택도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렇게 취약한 상태의 환자는 매일 진료하는게 원칙인것 같다. 앞으로 시범사업을 하면서 어떻게 진료하는 것이 호스피스 담당 의사와 환자에게 효율적이고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야 겠다. 아직은 그 길이 보이지 않아 좀 답답하다.

환자에게 너무나 성심성의껏 잘 하는 우리 호스피스팀 선생님들.
정작 환자들이 그 마음을 잘 몰라주기도 한다. 우리 팀원들은 그러한 반응에 별로 개의치않는다. 나도 그들의 자세를 보고 배운다.

오늘은 환자에게 가보지 못하고, EMR로만 확인하였다. 9시가 넘었지만 지금이라도 한번 가볼까 싶다. 이 시범사업을 하는 동안 당분간 나는 통증 회진을 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