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무정하게

슬기엄마 2012. 2. 21. 21:27


우리병원으로 입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소개해 드린 요양병원으로 가시고, 이제 임종 준비를 하세요. 자꾸 병원 오지 마시구요.

무정하게 환자를 응급실에서 돌려보냈다.
환자는 이미 비슷한 증상으로 2번 입원했었고
입원해서 그냥 경과관찰 하다가 재원일수가 길어지면 퇴원했었다.
뇌막으로 전이된 이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만큼 다 하고
그 치료의 합병증으로 더 힘들어 해서 더 이상의 치료는 하지 못한채 그 병원에서 치료를 종결했다.
그리고 우리 병원으로 오셨다. 나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었다.
뇌막전이도 조금씩 나빠지고
치료 합병증도 쉽게 호전되지 않아 그로 인한 신경학적 상태도 조금씩 나빠지고
그렇게 힘겨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나는 보호자에게 여러번 뇌 사진을 보여드렸고
뇌막전이의 예후에 대해 설명드렸고
내가 왜 지금 어떤 치료도 하지 않는지, 하지 못하는지 설명드려서
지금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러나 당장 당신 눈앞에서 환자가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면 집에서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으니 응급실로 오신다.
환자가 요양병원은 싫어하니까 가지 않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집에 몇일 계시다 응급실로 와서 입원하고 3주 정도 있다가 퇴원하고 몇일 있다가 응급실로 오시고... 그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 참이다.

전번에 입원했을 때
나는 피검사도 하지 않고 영양제도 가능한 주지 않고
자기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능한 오래 유지하시도록 유도했었다.
일반 약도 별로 투여하는 것이 없었다.
그냥 돌봐주는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환자의 기본적인 의식주 그리고 배설이 원할하게 이루어지도록 돌봐주는 것, 환자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통증은 붙이는 진통제로 조절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진통제 요구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진통제 조절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교육했다.
 
환자만 생각하면
당연히
존엄한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돌봄의 행위를 유지하는게 좋겠으나
병원 전체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임종을 기다리는 환자가 장기환자가 되어 3차 의료기관 입원병실을 차지하고 있으면
급한 다른 환자가 입원하기 어렵다.
병원의 입장은 가능한 7일 내에 환자에 대한 진단, 급성 치료를 한 후 보존적인 치료는 외부병원에서, 혹은 가정간호로 받을 것을 권유하고 있다. 다른 환자 진료의 편이성 문제도 있지만 수익성의 문제도 크다.
나 개인적으로도 나의 수많은 말기 환자들이 그저 집에서 있기 힘들다는 이유로 병원에 입원하기 시작하면 수십명의 환자가 당장이라도 입원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술기나 검사, 투약을 하지 않고 병원 재원일수가 길어지면 심평원에서 실사가 나오기도 한다. 과잉진료로. 이런 환자를 대학병원에서 꼭 입원시켜야 하는거냐고 비판하고 의료비를 삭감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말기 암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고
의사의 지원과 모니터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입원시킨다.
재원일수가 길어져도 의사로서 내가 환자를 위해 해야 할 검사, 시술, 투약이 있다면 입원을 유지한다. 굳이 종양내과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지 않아도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보존적 치료를 해주면 될 정도로 상태가 안정되면 전원을 부탁드린다. 구차하게 다른 환자 운운하며 전원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듣는 환자들 100%가 다 섭섭해 한다.
그렇게 입원환자가 많아지면 진료의 질이 좋아지는 걸까?
절대 그렇지 않다.
진료의 질은 환자수를 줄여야 가능하다.
절.대.적.으.로. 환자수를 줄여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 환자를 내쫒아야 한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지방 환자들은 매일 5분여의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우리 병원에 입원할 수 없다. 아무리 청탁이 들어와도 그건 노 라고 말한다. 뇌전이가 있어서 환자가 어지러워하거나 토하거나 움직일 수 없으면 당연히 입원해야 한다. 뼈전이가 심해서 걸을 수가 없으면 당연히 입원해서 방사선치료를 받도록 입원시킨다.
그렇지만 집이 멀어서,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가족들이 바빠 환자를 제대로 챙길 수 없어서, 음식해줄 사람이 없어서,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입원하길 원하신다면 입원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병원에서 하루에 방사선치료를 받는 환자가 수백명인데 그들을 다 입원시켜서 방사선치료를 받을 수 있게 배려하기 시작하면 누가 응급상황으로 아플 때 병원에 입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방사선치료를 통원해서 받을 수 있도록 교통편을 지원하는 인근 병원으로 전원한다.
이제 그렇게 방사선 종양학과 외래를 매일 다니면서 치료받는 사람이 다른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모두 삭감한다고 한다. 타병원 입원도 어려워 질 것이다.

말기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
시설과 서비스가 좋은 병원은 진료비가 너무 비싸고 대기 시간이 길다.
우리병원에서 제공되는 보존적 치료와 서비스만큼을 제공하지 못한다. 인력과 기타 등등의 문제로.
말기 환자를 보낼 수 있는 좋은 병원을 찾기 위해
인근 병원 순례라도 다녀야 할 참이다.
그쪽 병원 의료진과도 소통할 수 있고
진료 패턴도 유지되고
진료의 수준도 유지되고
그런데 말기 암환자에게 그런 치료를 하면서 진료 실적이 유지되는 지역 병원이 있을까?
지금 보험체계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내가 개업해도
그런 환자를 입원시키면 손해다.
그래서 우리 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
그래도 난 오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