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112

괜히 항암치료 했어요

이렇게 힘든 건줄 알았으면 항암치료 안하는게 나을뻔 했어요. 항암치료 하기 전까지는 잘 먹고 잘 걷고 괜찮았는데 이게 뭐에요.... 부인의 넋두리. 아침 회진 때 엉엉 우신다. 그냥 우시도록 놔 둔다. 넋두리를 할 때는 들어드리는게 좋다. 거기다 대고 무슨 설명을 해도 내 말을 들을 겨를이 없다. 환자가 나빠지면 1. 병이 나빠지기 때문에 상태가 나빠지는 것인지 2. 치료와 관련하여 치료부작용과 합병증 때문에 컨디션이 나쁜 것인지 3. 현재 병과 무관하게 다른 병이 생겨서 상태가 나쁜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4기 암환자 상태가 나빠지면 대개 1번과 관련하여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2번에 대한 대책이 미흡해지기도 쉽고 3번의 원인을 미쳐 찾지 못한채 1번으로 원인을 돌려버리기도 쉽다. 4기 암환자들은 기..

통증 회진

우리병원 호스피스 팀이 올 2월부터 4월까지, 3개월간 국가에서 시행하는 '산재형 호스피스'에 관한 시범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산재형 호스피스란 병동형 호스피스가 호스피스 환자만 한 병동에 모아 한 주치의 밑에 입원하여 진료를 받는 시스템인 것에 비해 호스피스 환자가 일반 다른 환자들과 함께 입원하고 있으면서 자신의 원래 주치의를 변경하지 않고 호스피스 케어가 추가적으로 제공되는 형태를 말한다. 병동 여기저기 환자가 흩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산재형'이라고 명칭이 붙여졌다. 병동형은 호스피스 환자만 모여있으니 나름의 장점이 많이 있지만 오랜기간 자신의 치료를 담당하던 주치의가 변경되고, 호스피스 치료를 결정하는 순간, 일반 치료는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임종 준비만을 하는 것으로 오해되기 쉽..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원래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환자를 직접 보고나면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래 더 이상 유용한 항암제가 없으니 보존적 치료를 하시면 되겠다고 썰렁하게 답변을 달고 협진을 마감할 생각이었다. 내가 유방암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용한 항암제 종류가 많고 약을 잘 쓰면 불사신처럼 다시 좋아지는 환자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의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간지나게' 찾아온다는 말이다. 폐 여기 저기 얼룩덜룩, 기침을 콜록, 정상 조직은 보이지도 않게 간전이가 심했는데 세번째 주기를 마치고 CT를 찍었더니 놀랍게 좋아지는 경우 전신 뼈로 전이가 되어 통증이 심해 꼼짝도 못하던 환자가 호르몬제 먹고 2주만에 가뿐해지는 경우 뇌로 전이가 되었는데 방사선치료 하고 굳세게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해 3..

엄마의 기도

면역억제제를 바꿔 쓰고 경과관찰 중인 나의 카포시 살코마 환자. 매일 회진을 돌면서 느끼는 것은 그는 이미 30년 동안 투석, 이식과 관련하여 병원 생활을 겪는 동안 우리 병원 시스템에도 빠삭하고 병원과 의사들의 생리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미쳐 시간이 없어서 다른 병동에 있는 그 환자 회진을 못돌고 저녁에야 그를 찾았다. 기운이 없고 잘 먹지 못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그. 그가 오늘은 자리에 앉아 있다. 나는 매일 그의 목 주변을 만져본다. 혹시 목 주변 림프절이 좀 작아지지는 않았는지.. 그는 식사를 거의 못해서 비쩍 말라 있다. 3-4개월 동안 거의 못 먹고 있다. 음식 먹는 것이 조금이라도 수월해지는지... 복강 내 림프절과 간 전이로 인해 장운동이 잘 안되는 것 같다. 그래서 ..

외로움

6년만에 유방암이 재발했다. HER2 양성 유방암. 6년전에는 HER2를 타겟으로 하는 약제가 이제 막 나와서 우리나라에서는 쓸 수 없었고, 전세계적으로 임상연구를 막 시작하던 차였다. 환자는 그때 당시 할 수 있었던 치료를 다 받았다. 재발 후 환자는 HER2를 타겟으로 한 임상연구가 있어서 치료를 받았다. 표적치료제를 쓰면 놀랍게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효과가 없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 환자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흉막에 물이 있었는데 줄지 않았다. 물을 없애고 흉막유착술을 했지만 물을 또 다시 고였다. 배에도 물이 생겼다. 병이 나빠지면서 복강 내 물이 늘어나니까 복수로 환자가 많이 불편했다. 허셉틴도 쓰고 타이커브도 썼지만 뾰족하게 치료효과가 없었다. 환자는 날 만나고 1년이 지났지만 별로..

왕왕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암

지금 입원해 있는 환자 중 80세가 넘으신 유방암 할머니, 유방암 할아버지, 그리고 90세가 넘으신 폐암 할머니가 계신다. 유방암은 가능한 조직검사를 해서 호르몬 수용체, HER2 수용체 여부를 확인하면 세부 유형이 결정되는데, 유형에 따라 독한 항암제를 쓰지 않고도 항호르몬제나 표적치료를 통해 병을 어느 정도는 다스릴 수 있다. 성적도 꽤 좋다. 게다가 유방 조직검사는 별로 위험하거나 어렵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왕왕 할머니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환자를 설득해서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유방암 할아버지는 다른 병원에서 1차 검사를 해서 유방암이라는 것은 진단이 되었지만 더 이상 가용한 조직이 없어서 수용체 검사를 하지 못하였다. 할아버지는 조직검사를 한 후에 종양이 커지고 통증이 심해졌다면서 죽어도 재검사는..

나도 말문이 막혀...

10살부터 신장에 이상이 있었다. 20살부터 혈액투석을 하였다. 30살에 첫번째 신장이식을 하였고 35살에 거부반응이 와서 다시 혈액투석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나이 올해 39세. 두번째 신장이식을 하였지만 10월에 다시 거부반응이 와서 다시 투석을 시작하였다. 두번째 거부반응이 온 이후 전신상태가 계속 좋지 않았다. 원래 콩팥 기능이 좋지 않은 만성신부전 환자들은 늘 기운이 없고 잘 못 먹고 자꾸 토할 것 같은 증상이 생기고 머리도 맑지 않고 그렇다. 그래서 거부반응 이후 동반되는 증상이려니 했다. 그런데 투석을 했는데도 이런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다. 우연히 만져지는 림프절이 있어서 지난 주 조직검사를 했다. 카포시 육종이 진단되었다. 그렇게 또 다른 병이 생기면서 그는 갑작스럽게 말랐고 전신상태가..

명상 프로그램을 마치고

애초 계획과는 달리 난 우리 병원 명상프로그램에 끝까지 참석하지 못하였다. 한 세션 당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고 명상 중에는 핸드폰을 꺼 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럴 수가 없었다. 6주간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명상 선생님과 일단 간단하게 평가하였고 설이 지나고 총평가를 하기로 했다. 중간에 병이 나빠져서 입원한 환자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매번 참석하지 못한 환자 매번 모임의 분위기는 그런 환자들로 인해 조금씩 어색함과 긴장이 감돌았다. 나도 마음이 이렇게 흔들리는데 병이 나빠진 환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다른 환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명상 선생님이 잘 이끌어 주셨고 환자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다. 총 평가를 준비하면서 환자들에게 땡큐메일을 보내려고 한다. 나의 이런 어줍잖은 시도..

당신 이런거 신경도 안쓰는거 아냐?

오늘 이런 말 들으며 멱살 잡힐 뻔 했다. 환자가 안절부절 힘들어하는데 병원이 해주는게 뭐냐고... 환자가 밤새 섬망이 생기고 힘들어 하면서 라인도 다 뽑고 힘들어 했다. 24시간 내가 환자 콜을 다 받는게 아니니까 간호사, 인턴, 레지던트 그리고 나 사이의 협조 시스템에 간극이 생기면 환자가 밤새 고생을 한다. 매번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병동 간호사나 인턴, 레지던트를 다 호출해서 왜 빨리 해결되지 않았는지 닥달해서 사연을 묻지 않는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겠지... 그냥 묻어둔다. 이유 불문하고 가족과 보호자는 환자가 힘들어하면 훨씬 예민해진다. 환자가 안절부절 하기 시작하면 온 가족이 다 같이 예민해지고 화내고 우리 병원에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얼마전 입원하신 내 외할머니도 진통제 용량이 ..

명상 프로그램 중간평가

명상 프로그램을 4주 운영하였다. 두 팀이 진행되고 있는데 한팀은 명상에 몰입을 하기 시작하였고 다른 한팀은 아직 몰입이 잘 안되고 있는 것 같다. 당초 나도 같이 참여하여 명상을 배워보려고 했지만 전화가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고 또 전화기를 꺼놓을 상황도 아니라 그냥 프로그램 전후로 환자들 분위기만 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명상 선생님, 도와주시는 자원봉사자분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중간 평가를 들어보았다. 선생님은 우리 환자들 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의 사람들과도 명상을 함께 하고 계시고 애니어그램에도 조회가 깊으시다. 심리학을 전공하셔서 환자들과도 개별 상담을 잘 해주신다. 환자들의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 않으신 분들이 많아,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은데, 잘 대처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