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어린 보호자 면담

슬기엄마 2012. 10. 6. 13:46

 

 

고2

중2

남매를 만났다.

이들의 엄마가 내 환자다.

환자는 짧으면 한달, 길면 세달안에 돌아가실 것 같다.

환자는 그동안 복통도 심하고 출혈 때문에 계속 빈혈이 오는데도 절대 입원하지 않으려고 했다.

집에 애들있으니까 애들 옆에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외래에서 버티다 버티다 통증조절이 안되서 입원하였다.

환자의 남편은 올 4월에 돌아가셨다.

환자는 남편 때문에 고생 정말 많이 했다.

환자 당신도 20대에 심장판막수술해서 평생 쿠마딘 먹고 그것때문에도 고생많이 했다.

암으로 고생 많이 하다가 이제 곧 임종하실 것 같다.

 

그러나

엄마는 지금 자기 통증이 문제가 아니다.

두 남매를 두고 자기가 먼저 죽게 되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상태가 악화되어 가는 걸 알지만, 아이들에게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큰애가 고2라 한창 공부할 때라고.

 

하지만 환자 의견을 존중하고만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학교 안가는 오늘 남매를 오라고 했다.

오라고 해놓고도

막상 이렇게 어린 보호자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지금 이들에게 엄마 병의 경과를 설명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지금 내가 가족에게 들어야 하는 말이 심폐소생술 하지 않겠다는 동의인가?

그런게 아니라면 나는 이들을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하고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 거지?

 

 

잘 들어.

엄마 돌아가실 거야.

알고 있지?

엄마는 지금 너희들을 제일 걱정해. 본인 아픈게 문제가 아니야.

 

아들, 너 엄마 말 잘 안듣지? 엄마가 널 젤 걱정하고 있어. 앞으로 병원에 매일 와서 엄마 얼굴 봐. 속 썩이지 말고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한테 착하게 굴어. 아무리 사춘기라도 이제 엄마에게 시간이 별로 없어.

 

딸, 공부 열심히 해. 그리고 동생 잘 챙겨. 공부하는데 방해된다고 딸한테 당신 얘기 하지도 말라고 하셨는데 내가 지금 몰래 부른거야.

내 명함 챙겨놓고, 친척들하고 말 잘 안되고 세상에 내편 하나도 없는거 같으면 전화해. 메일 보내든지.

외래에서 만나자.

엄마 한테는 내 명함 받았다고 말하지 마. 그냥 우리끼리 보자.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딸이 내 명함을 챙긴다.

우리는 전화번호도 교환하였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면

큰 딸 대학에 갈때까지 혹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남매를 3개월에 한번씩 외래에서 따로 만나기로 했다.

먼 나라 아프리카 어린이도 도울 판에

내 환자를 위해 이 정도 후원해 줄 수 있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환자의 chief complain 은 자식 걱정이었다. 그걸 좀 덜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