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족 간병의 어려움

슬기엄마 2012. 10. 1. 14:29

 

 

가까운 사람의 오랜 투병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간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배우자를 간병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주 가깝기 때문에, 혹은 가까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다치기도 쉽고

환자 상태가 좀 않좋아지면 , 내가 좀 더 잘 했어야 했는데 잘 못한걸까 하는 죄책감도 들고

환자가 요구하는게 좀 많아지면, 내 몸도 힘들어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 수 있습니다.

 

아침에 회진을 도는데

남편이 손수 만들어 온 죽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죽은 곱게 잘 쑤어서 쌀알갱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구운 조기를 가시를 발라 자잘하게 찢어놓고

백김치 국물이 옆에 놓여있네요.

명절에 먹기엔 약간 아쉬움이 있지만

꽤 영양가가 높아 보이는 식단입니다.

남편이 메뉴를 바꿔서 매일 다른 종류의 죽을 만들어 옵니다.

환자는 복막에 병이 있어 장운동 상태가 좋지 않아 쉽게 토하고 장운동이 멈춰서 반복적인 복통이 옵니다.

그래서 지난 몇개월 동안 음식먹는 것 자체가 힘들 때가 많은데

그래도 항암치료 한번 하고 나서

복통도 줄고 토하는 것도 조금 나아졌습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만

환자는 아들이 대학가는거 볼 때까지 살고 싶다면 이를 악물고 치료를 받습니다.

환자와 저는 이번이 마지막 항암치료가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쯤을 서로 알 정도로

그동안 많은 대화와 고민을 함께 했습니다. 이제 눈빛만 보면 압니다. 오늘 항암치료 할까요? 하지 말까요? 겉으로 오가는 대화는 형식적이지만 우리끼리 교환하는 정보는 많습니다.

환자가 그리도 이뻐하는 아들도 함께 와서 밥을 먹습니다. 아들은 명절 반찬에 밥을 먹네요.

저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환자의 가족을 존경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환자도 최선을 다합니다.

죽을 날이 멀지 않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애씁니다.

그것이 환자가 가족을 위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입니다.

 

 

제가 너무너무 좋아했던 환자와 그 아들, 그 가족이 병원에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환자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환자는 숨 쉬는 걸 너무 힘들어 하셨는데

제가 약을 좀 드렸더니 편안히 숨쉬며 주무시고 계십니다.

오늘 내일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그동안 긴 투병기간 동안 최선을 다한 가족들, 별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냥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아가실 때는 어떻게 돌아가시나요?

 

지금 모니터 제일 윗칸에 보이는게 심장 박동수입니다. 120회 정도 되죠? 지금 폐도 나쁘고 심장기능도 떨어져서 힘든 상황인데 심장이 보상할려고 열심히 뛰고 있는 상태입니다.

몇 시간 지나면 저 심장박동수가 80회, 60회 이렇게 점차 떨어질거에요. 50회 미만으로 떨어지면 곧 돌아가실 거라는 싸인이니까 가족들 옆에서 모두 환자를 지켜봐주시고 기도도 해주세요.

그 아랫칸이 혈압인데, 높은 혈압, 낮은 혈압 두가지가 체크됩니다. 지금 70/40 이니, 지금도 낮은 상태에요. 혈압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승압제는 쓰지 않을려구요. 일시적으로 혈압을 올려도 금방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하실 거에요. 괜히 승압제 쓰면 환자 힘들거 같습니다. 우리 승압제 쓰지 않기로 해요.

그 아래 수치가 산소포화도인데 아직 괜찮으시네요. 저 수치가 제일 마지막으로 떨어질거 같아요. 그렇게 순차적으로 수치가 떨어지다가 임종하시게 될 것 같습니다.

 

소변 안나온지 48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시간 문제인것 같아요.

아직 청력은 살아있으니까 옆에서 좋은 이야기 해주시고 가족들 목소리 들려주세요.

 

가족은 많이 울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치료받았고 어느정도 죽음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고 계십니다. 환자와 가족 모두 준비된, 차분한 임종을 맞이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편안히 주무시고 계셔서 다행입니다. 제가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입니다. 편안히 주무시게 해 드리는 것.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기에

간병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육체적으로

마음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이런 힘든 시간이 쌓이면 그동연 숨겨져 왔던 가족 구성원들간의 갈등과 불만, 분노를 촉발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서로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애쓰며, 서로에게 좋은 기억을 주려고 애쓰며 임종을 준비하는 이들을 보며 저는 인간적으로 많이 배웁니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간병을 하는 가족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 최선을 다할려고 애쓰지 마시라고,

몸과 마음 모두 다 바쳐서 간병하지 마시라고.

그렇게 하면 지쳐서

남아있던 사랑도 다 증발해 버린다고.

그렇게 서로간에 부족한 공백을 인정해 주는게 필요한 거라고 당부합니다.

얼마나 도움이 되는 당부일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