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끔은 믿을 수 없이 놀라운 환자들

슬기엄마 2012. 8. 21. 18:55

 

 

지난 3주 동안

진통제 드신 날짜, 시간, 진통제 종류, 양을 다 기록해 오신 환자.

한번에 몇백알씩 약을 가지고 가신다. 진통제 양이 매우 많다.

항암제나 방사선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아주 느릿느릿 자라는 종양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척추 깊은 근육쪽에 종양이 자라서 다리쪽으로 내려가는 신경을 누르니 걸음을 못 걸으실 정도로 아파서 협진 의뢰가 되었다.

환자는 너무 다리가 아파서 죽고 싶다고 했다. 부인은 옆에서 눈물 바람이다.

환자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할 때는 위기이자 응급상황이다.

 

당장 입원시켜 작용시간이 빠른 주사진통제로 환자에게 총 필요한 진통제 용량을 계산하였다.

어마어마하였다.

좀 줄였더니 금방 다시 아파지고, 발을 쭉 펴고 눕지도 못할 정도였다.

붙이는 진통제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마취통증클리닉에 여러 차례 의뢰하여 신경차단시술을 해 보았지만 효과가 신통치 않아다.

결국 고용량의 경구용 진통제를 여러알 먹어보기로 했고

여러 차례 시행 착오 끝에

환자에게 맞는 진통제의 종류와 용량, 용법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엄청난 통증 다이어리를 써서 외래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진통제 교육을 해 드렸더니 본인이 증상에 맞게 조절을 잘 하신다. 남은 약을 고려하여 다음 처방을 내 달라고 하며 진통제 처방용량과 일수도 다 계산해 오신다.

선생님 이약은 몇일치 정도 남았으니까 몇일치 더 주시구요,

혹시나 응급 상황 생길지도 모르니까 무슨 진통제를 응급 상비용으로 몇일치 정도 더 주시면 좋겠어요.

 

환자는 똑똑하고 의사에게 협력적이다.

보호자는 환자를 잘 도와주고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의사에게 열심히 보고해 준다.

어떻게 하면 통증이 악화되는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는지

자기가 상황에 맞게 조절을 해 봐도 되는지 여러각도에서 질문하신다.

 

환자인 아저씨는 잘 낫지 않는, 그렇다고 빨리 나빠지지도 않는 이 병을

수술하고 방사선치료 하기를 여러차례, 그동안 빚을 많이 졌다고 하신다.

지금 이발소일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통증이 심한데도 이발 일을 하시고, 남편이 주요 과정 이발을 다 하면 부인이 머리감기고 말리고 뒷정리를 하면서 두분이 생계를 꾸려가신다.

한동안 통증이 너무 심해 일을 못했는데

이렇게 진통제를 맞춰서 먹으면서

조절이 어느 정도 되고

아주 편하지는 않으나 그럭 저럭 살만해서 다시 이발 일을 시작하셨다고 하신다.

 

통증때문에 잘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가 가늘어졌다.

부인은 요즘 진통제 복용 시간에 맞춰서

하루에 30분에서 한시간 다리 근육 운동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운동하시기에 힘드실텐데요. 아직 통증이 있어서요.

그게 뭐 쉽게 없어지는게 아니면

의지할 근육이라도 있어야 오래 견디지  않겠어요.

운동시키니까 밥도 더 잘 드시고 생기가 생기는거 같아요.

 

무서운 부인이다 ^^

 

이렇게 진통제를 많이 드셔도

큰 부작용없이

일상생활로 복귀하여 생활 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 부부가 존경스럽다.

 

통증 일기의 기록은 이들 삶의 투쟁의 역사이다.

내가 이 일기를 받을 때마다 대단한 기록이라고 칭찬해드리면 환자와 부인이 아주 흐뭇해하신다.

본인들이 스스로의 증상을 조절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일상을 잘 꾸려가시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시는것 같다.

병이 나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병을 가지고 잘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오늘 다리 근육의 둘레를 자로 쟀다.

다음에는 더 튼튼한 다리로 오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