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스킨쉽을 해주세요

슬기엄마 2012. 8. 17. 09:43

 

미국에서 남동생이 왔다.

몇달전 보았던 누나가 아니다.

잘 모르겠지만

누나 상태가 나쁘다는 건 의사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것 같다.

 

난 사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가족도 더 늦기 전에 한번 와서 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사는 친정아버지와 남동생이 비행기를 타고 급히 오셨다.

나는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드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긍정적인 측면, 부정적인 측면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설명드렸다. 그리고 최근 부정적인 증상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어서 더 늦기 전에 가족들을 다 보는게 좋을 거 같아서 오시라고 했다고 말씀드렸다. 패혈증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번주에 돌아가실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이번 고비를 넘겨야겠지만, 그래서 가능한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고, 항암제 반응이 없으면 조만간 다시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런 앞으로의 코스를 설명드렸다.

 

 

위급한 순간까지 치달을 뻔 했던 환자 상태가

이틀 전부터 조금 나아지는것 같다.

장 운동이 전혀 없어 공기와 물로 배가 남산만큼 불러서 숨쉬기도 힘들어 했던 그녀가

방귀도 뀌고 너무너무 오랫만에 변도 보고 콧줄로도 배액이 많이 되기 시작한다.

복막의 병이 좋아지는 걸까?

콧줄을 낀 상태에서 오늘은 물을 먹어보기로 했다.

너무 나쁜 상태에서 가족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다.

 

남동생은 아무 말없이 내 설명을 듣다가

설명을 다 듣고나서

울먹울먹한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질문한다.

 

다리가 많이 부었던데

마사지 좀 해줘도 되나요?

무릎 위쪽으로 마사지 해도 병이 나빠지는 건 아닌가요?

 

다 큰 남동생

누구나 그렇듯

가족이지만 철들고 나서 뜸했던 누나와의 관계

아픈 누나를 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남동생

그가 병원에 있는 동안 누나를 위해 발맛사지를 해 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 마음이 너무 착하고 예쁘다.

 

'환자에게는 스킨쉽이 필요하고, 발맛사지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걱정말고 잘 해주세요'

그렇게 드라이하게 한마디 하고 말았지만,

돌아서는 남동생의 뒷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뭉클하다.

 

실재로 우리병원 호스피스 팀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발맛사지 교육을 받은 후

우리 환자들을 대상으로 발맛사지를 해드리고 있는데

이뇨제로도 전혀 호전이 없는 암환자의 말기 부종이 효과적으로 빠질 뿐만 아니라, 정성을 다한 발맛사지가 환자들 마음을 많이 움직인다. 돌아가시기 전 편안한 마음을 갖고 우리 병원에 대해서도 그동안 치료 잘 해주셔서 고맙다고 느끼는 계기가 된다고들 하신다. 뭔가 신체적 접촉이 주는 힘인 것 같다.

 

발 이라고 하는 우리가 평소에 신경쓰지 않던 신체의 일부,

우리 몸을 지탱하며 피곤해 하던 신체의 부위가,

병의 말기에 퉁퉁 붓고 힘들다.

발 맛사지는 전신의 피로감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고, 맛사지라는 스킨쉽을 통해 환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동생의 마사지가

우리 환자에게도 그런 편안함과 사랑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환자들은 몸과 마음으로

세상과 스킨쉽을 느끼고 싶어 한다.

힘든 시기, 옆에 있는 가족의 사랑이 환자를 평온하게 만들고 씩씩하게 견딜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