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CT를 찍는 여러분들께

종양평가를 위해 CT를 자주 찍는 여러분들께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 CT를 찍습니다. 2-3주기 치료를 하고 다시 CT를 찍어서 처음 CT랑 비교해 봅니다. 크기가 줄었는지 다른 변화는 없는지 CT 의 객관적인 변화가 항암치료를 유지할지 약제를 변경할지를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암환자로 치료를 받다보면 CT 찍을 일이 너무 많습니다. 방사선 피폭량도 문제지만 CT를 찍을 때 사용하는 조영제도 종종 문제를 일으킵니다. 조영제를 써야 병변이 정확히 잘 보이기 때문에 병만 생각하면 조영제를 쓰면서 찍는 CT가 질이 좋지만 환자에게는 해로움도 있는 셈입니다. 1. anaphylaxis 급성이상반응 급성 약제 반응입니다. CT를 찍는 중에 조영제 주사를 맞게 되는데, 그걸 맞고 나서 피부가 간지럽..

내가 잘 모르고 있던 것들

제가 얼마전에 소개해 드린 책,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 라는 책을 쓴 다비드 세르방 슈레베르 라는 의사가 이 책 쓰기 전에 쓴 '항암 (Anti Cancer)'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한글 제목을 너무 잘 못 지은것 같습니다. 내용상 암에 대항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적인 실천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자는 최초 뇌종양진단 후 15년째 이 책을 썼더군요. 그는 최초 뇌종양진단 후 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를 받은 후 완치 판정을 받은 몇년 후 또다시 재발했고 또 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를 마친 후 완치되었습니다. 그렇게 15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이 책을 썼습니다. 자신이 인지신경학을 전공하는 의사임과 동시에 암을 진단받고 재발했으며 또 다시 재발할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

우리는 최고의 콤비

유방암 클리닉에서 진료가 있는 월화수목, 나와 함께 외래진료를 담당하는 배영숙 간호사는 나랑 환상으로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다. 사실 호흡이 잘 맞는다기 보다는 나를 위해 최상의 진료 환경을 만들어주는 베스트 서포터이다. 그녀가 없으면 난 진료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녀만 있으면 환자가 100명이 넘어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와 함께라면... ^^ 외래 진료 전에 환자를 다 정리해서 내가 알고 있어야 할 정보를 EMR 메모에 넣어둔다. 진료볼 때 잊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환자를 진료하면서 어떤 코멘트를 하면 따로 메모해두었다가 진료가 끝나고 나면 그 사이에 자기가 알아본 사항을 알려주고 다음 진행을 어떻게 할지 나에게 확인한다. 내가 처방을 잘못 넣으면, 선생님 처방이 잘못 되었어요 그렇게 말..

아침부터 삭감소견서

젤로다를 쓰면 수족증후군과 설사, 구내염이 흔하게 발생한다. 어떤 환자는 이 약을 최대 용량까지 쓰면서도 아무 독성없이 한가지 약제로 병이 안정적으로 조절되어 2년 이상을 젤로다 하나로 꺼뜬히 버티며 이 약의 효과를 최대한 유지하는 반면에 어떤 환자는 1주일만 써도 손발 허물이 다 벗겨지고 입안이 헤어져 음식도 못 먹게 되고 설사하면서 탈수되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약효를 따져보기도 전에 독성 때문에 약을 중단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약물을 대사하는 유전자의 차이에 의해 특정 약에 대한 반응이 달라 같은 약이라도 환자에 따라 독성이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보고한 연구들이 있지만, 이는 아직 일부 연구에 국한된 결과일 뿐, 실재 환자에게 검사용으로 시행할 수있는 단계의 확고한 연구결과는 아..

내가 기도할 때

슬기가 결혼할 때 청첩장을 보내주세요.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슬기가 결혼할 때까지 치료 잘 받고 그때 꼭 축하해주세요. 겉으로 드러내고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나눈 대화. 마음으로 눈물 가득 입밖으로 한마디로 할라치면 그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아 애써 별 말 없이 나의 설명을 듣는 환자와 가족. 그런 마음을 느낄 때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되묻는다. 지금의 선택이 최선인가. 더 이상의 대안은 없는가. 이번에 찍은 사진을 보니 병이 더 나빠졌는데, 다음 치료 계획은 어떠신가요? 지금 정황이 이러이러하니, 지금으로선 이러이러한 약으로 치료를 다시 해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최선의 방법일까요? 저도 확신이 서지 않아 다른 병원의 선생님들의 의견을 들어보았습니다. 치료가 거듭될 수록 다음 치료방법을 ..

가끔은 믿을 수 없이 놀라운 환자들

지난 3주 동안 진통제 드신 날짜, 시간, 진통제 종류, 양을 다 기록해 오신 환자. 한번에 몇백알씩 약을 가지고 가신다. 진통제 양이 매우 많다. 항암제나 방사선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아주 느릿느릿 자라는 종양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척추 깊은 근육쪽에 종양이 자라서 다리쪽으로 내려가는 신경을 누르니 걸음을 못 걸으실 정도로 아파서 협진 의뢰가 되었다. 환자는 너무 다리가 아파서 죽고 싶다고 했다. 부인은 옆에서 눈물 바람이다. 환자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할 때는 위기이자 응급상황이다. 당장 입원시켜 작용시간이 빠른 주사진통제로 환자에게 총 필요한 진통제 용량을 계산하였다. 어마어마하였다. 좀 줄였더니 금방 다시 아파지고, 발을 쭉 펴고 눕지도 못할 정도였다. 붙이는 진통제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마취..

능력없는 선배의사

저는 단연코 100점짜리 의사가 아닙니다. 아마 저는 최선을 다해도 80점짜리 의사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전 최선을 다해 80점을 맞으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것이 임상의사인 제가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대학병원 의사의 역할은 환자 진료를 잘 하는 것 외에도 연구 교육 이라는 중차대한 3대 임무가 기본적으로 부여되는데, 요즘에는 이 중에서도 연구를 강조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연구도 겉으로 측정가능한 논문 편수나 점수가 중요합니다. 의학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확고한 정답이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논문을 내는 활동에 주력해야 하는 것에 100% 동의합니다. 그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대학이라는 기관에서 일하는 의사 누구에게나 각인된 사실입니다. 그것이 자존심이고 ..

약 처방이 빠져서 죄송합니다

암환자는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그에 따라 약도 많아진다.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니까. 나는 진료실에 약통을 준비해 놓고 자주 처방하는 약은 샘플로 준비해서 약을 처방하면서 환자에게 직접 약에 대해 설명한다. 약이 캡슐인지 아닌지, 쪼개서 먹어도 되는지 아닌지, 무슨 약이랑 헷갈리는지 (변비약이랑 와파린이랑 헷갈려서 먹고 INR이 9가 넘어 온 할머니가 계신 뒤로 약을 모양과 색깔로 설명하게 되었다) 이 약은 새롭게 왜 처방하는지, 무슨 증상이 있으면 이 약을 드셔야 하는지, 먹으면서 뭘 주의해야 하는지 그런 설명을 주절주절 하면서 약을 처방한다. 샘플이 준비되지 않은 약을 처방할 때는 컴퓨터 화면으로 약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하얀색에 노란띠 있는 이 캡슐은 속쓰리지 않은 관절염약이니까 하루 두번 드세요' ..

스킨쉽을 해주세요

미국에서 남동생이 왔다. 몇달전 보았던 누나가 아니다. 잘 모르겠지만 누나 상태가 나쁘다는 건 의사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것 같다. 난 사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가족도 더 늦기 전에 한번 와서 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사는 친정아버지와 남동생이 비행기를 타고 급히 오셨다. 나는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드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긍정적인 측면, 부정적인 측면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설명드렸다. 그리고 최근 부정적인 증상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어서 더 늦기 전에 가족들을 다 보는게 좋을 거 같아서 오시라고 했다고 말씀드렸다. 패혈증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번주에 돌아가실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이번 고비를 넘겨야겠지만, 그래서 가능한 시간을 많..

나의 결심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자연과 생체리듬을 가까이 할 것. 숲이나 산, 강을 자주 다니며 원기를 잃지 말 것. 계절이라는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 그러므로 잠이나 규칙적인 생활, 휴식 등 내 몸이 원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무시하지 말 것. 이런 생활 수칙을 지킬 때 몸의 균형 회복과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온함. 내면의 초연함을 갖고 명상이나 정상 심박동 훈련을 규칙적으로 할 것. 평온함보다는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고, 사람들의 행복과 사고방식을 변화시켜 균형적인 미래를 만들려는 욕구를 실천하면서 느끼는 충만한 느낌도 좋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가진 한계를 무시하는 것. 그것은 가장 위험한 행동이다. 그것을 긍정적인 스트레스라고 믿으며 중독되지 말자. 스트레스 양을 늘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