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Long vacation 견디기 - 2

내 인생의 100인 제가 20년전 처음 대학 다닐 때 그때도 인생 심란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인생은 늘 심란함의 연속인것 같습니다) 그때는 젊고 뭔가 의욕도 많을 때라 심란해도 뭔가를 생산적으로 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까지는 못 쫒아가겠지만 당시 내 인생의 100인을 선정해보고 기록해 보려고 했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현실의/가상의 (소설, 영화 등등) 인물을 선정해보는 거죠. 역사적인 사건도 생각해보고, 위인도 떠올려 100인의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그가 왜 나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와의 기억이 흐릿해지면 그를 불러내서 다시 만나 이야기도 나눠보고 변한 그를 보며 100인의 목록에서 ..

Long vacation 견디기 - 1

당신의 모든 순간 (강풀) 제가 가장 심란할 때 하는 건 만화보기. 원래 순정만화는 안보는데 이 만화에 좀비가 등장하기 때문에 스릴러물인줄 알고 봤다가 곧 순정만화라는 걸 깨달았으나 시작한 만화를 끊지 못하고 결국 돈내고 끝까지 눈물 펑펑 쏟으며 다 보았습니다. 왜 울었냐고 물으신다면.... 내용은 신파라서... 강풀 만화는 그림체보다는 contents가 좋은데 매우 상징적인 코드를 구사하기 때문에 다 보고 다서 결말이 해피엔딩인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독자의 시선을 끌고 갑니다. 첫회 첫컷에서 '세상에 당신과 나만 남는다면, 우리는 사랑할 수 있었을까'를 묻지만 다 보고 나면 답은 'No'입니다. 그렇지만 완전 No는 아닙니다. 세상에 둘이 남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Long vacation

뭘 해도 일이 제대로 안 풀리는 것 같을 때 마음을 아무리 다잡으려고 해도 잘 안될 때 내가 아무리 애써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그건 어쩌면 사람의 힘으로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건 하늘이 준 long vacation 이라고 생각합시다. 방학이죠. 그냥 놀면서 지내는. 하늘이 준 시간. 그 시간을 잘 견디는 거. 그냥 놀면서 견디는 거. 너무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견디는 거. 긴 더위도 너무 이겨낼려고 하지말고 물 많이 마시고 견디고 복잡한 마음도 너무 극복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불안정하게 흐르는 마음 그대로 인정하고 때론 커피 한잔 때론 맥주 한잔 때론 영화 한편 때론 소설 한편 때론 근교 여행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거죠. 지금의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마음..

의사와 암환자의 커뮤니케이션

환자는 의사에게 적응합니다. 물어봐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에게 질문하고 하소연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에게 하소연 합니다. 말이 안통할 것 같으면 환자도 자기 마음의 문을 열지 않죠. 의사에게 상처받기 싫으니까. 의사소통이란 원래 그렇게 상대방의 입장을 파악하는 상태에서 형성되는 과정적 행위 아니겠어요? 병에 따라 의사 환자 관계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의사의 판단과 결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상황이 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진단과 치료과정에서 의사와 환자의 의사소통은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각종 사고로 인한 응급외상, 수술, 심장마비, 뇌혈관 장애로 막힌 혈관을 뚫어야 할 때, 내부 장기 출혈이 있을 때 등의 상황은 환자의 의견보다는 의사의 판단과 결정, 그리고 신속한 대처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

재미없으나 감동이 있는 음악회

암환우를 위한 음악회. 저녁 7시, 시작 시간에 맞춰서 강당이 관객으로 서서히 차간다. 항암제를 맞고 있는 환자도 있다. 수액이 연결된 채로, 휠체어를 타고 환자들이 많이 왔다. 환자 간병에 몸도 마음도 노곤한 보호자들도 우리 강당의 편안한 의자에 몸을 기댄다. 냉방도 시원하게 잘 틀어주고 있다. 사회를 보시는 분, 음향감독, 무대감독, 합창지휘자 등 출연과 준비팀 모두가 현재 암으로 투병중이거나, 치료를 받고 좋아진 혹은 돌아가신 환자의 가족들이다. 그렇게 암이라는 혹독한 병으로 인연이 엮인 사람들이 지금 투병중인 또 다른 환자를 위해, 위로와 평안을 주는 음악회가 열렸다. 공연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윌름씨 종양으로 방사선치료와 수술을 마친 딸을 둔 엄마가 사회를 보고 지금도 ..

내 사랑 안산 예찬론

외래가 끝난 오후 혹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저는 연대 안 안산을 다닙니다. 가능하면 매일 가려고 애씁니다. 병원에서 앉아있는 시간이 많으니, 꼭 시간을 따로 내서 운동을 해야 합니다. 실내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것보다 산에 다니는 게 더 좋아요. 이렇게 좋은 산이 연대 안에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지... 한때 제가 마라톤도 했었지만, 이제 그렇게 폭주기관차처럼 뛰기엔 온 관절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쿨럭. 산에 못가는 날 연대 운동장 뛰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마라톤은 이제 안녕이에요. 정상 직전 오르막 길입니다. 이 길을 통과하면 정상인 봉수대가 나옵니다. 이 길이 흙길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지지난주 비오던 날 어느 저녁에 아무도 없어서 한장 찍어봤습니다. 워낙 동네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산이..

빡빡 머리에 잘 어울리는 귀걸이

잘 어울리는 귀걸이를 찾기 위해 몇번을 시도해 봤을까요? 빨갛고 파랗고 하얀 보석이 박혀있는 화려한 귀걸이가 예쁘다고 했더니 빡빡머리에는 화려한 귀걸이가 잘 어울린다고 하네요. 왼쪽에는 4개, 오른쪽에는 두개. 과감하게 많이도 귀를 뚫었다고 했더니,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귀를 뚫고 새 귀걸이를 했대요. 별거 아니지만, 그 기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서점에 가서 신간서적도 사고 문방구에 가서 펜을 삽니다. 그래서 서점만큼 책이 많고 문방구만큼 펜이 많아요. 다 읽지도, 다 쓰지도 못할만큼. 그래도 그렇게 새책, 새펜을 사가지고 제 방으로 돌아오면 뭔가 좋은 일이, 뭔가 꼬였던 일이 풀릴 것 같은 신선한 느낌을 받아서 하루의 한 순간이 즐겁습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귀걸이였..

새로운 시도 - 사진 편집

제가 오늘 첨으로 블로그에 사진을 올려봅니다. (음악파일을 올리려다 한번 좌절한 이후로 블로그에 무슨 짓을 해보려고 하지 않았죠. 그냥 글만 무식하게 올리는 재미없는 블로그에요.) 그동안 이런거에는 신경을 안썼는데요, 한번 해보니 블로그가 좀 산뜻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오늘 받은 유기농 야채선물세트입니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 이렇게 많은 야채, 손수 농사지은 정성과 함께 배달해 주셨습니다. 꽤 무겁습니다. 고**님, 감사해요. 저녁은 유기농 야채를 쌈장에 찍어 먹고 토마토를 후식으로 먹으면 되겠습니다. 몇번 재발되었죠. 그 소식을 전할 때 흔들리는 눈빛, 금방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꼭 참고 '선생님, 다른 방법이 있는거죠?' '그럼요' '선생님만 믿어요' '저 그말 제일 싫어해요' '에이 ..

악역은 없다. 스토리가 꼬일 뿐

먼 남쪽 지방에서 오신 할머니, 그리고 그의 며느리. 며느리는 시어머니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면 상태가 지금보다 호전될 수 없다는 것도, 그런데 항암치료를 해도 순식간에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숨찬 시어머니와 함께 내 진료실을 찾았고 우리는 몇번을 고민해서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항암치료를 해보기로 했다. 항암제 들어가고 하루이틀 컨디션이 좀 좋은것 같았는데 사흘나흘 컨디션이 다시 나빠지고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신다. 그렇게 5일째. 나도 마음이 탄다. 항암치료라는게 오늘 했다고 내일 좋아지는 치료가 아니니 일단 치료를 하면 약효가 작용하는 시간만큼은 환자가 좀 견뎌주어야 한다. 항암제의 약효가 이길지, 독성이 이길지, 병이 나를 이길지 누가 이기는지 ..

할머니 마음

아흔을 바라보시는 할머니 유방암을 진단받고도 한참 있다 오셨다. 초기니까 수술하면 된다고 들으셨는데도 안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또 자식들 성화에 몇달 뒤 다시 검사하셨다. 다행히 여전히 수술가능한 상태. 그래도 할머니는 수술 안하신다고 했다. 그러다가 오늘 나를 만났다. 묵주반지를 끼고 있지만 사실 날나리 신자인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데 눈물이 글썽글썽. 할머니 무릎 관절염 말고 다른데 불편하신거 없으세요? 혈압 말고는 없어. 아이고, 건강하시네요. 얼른 수술해요. 검사 몇가지 하구요. ... 괜히 자식들한테 오래살고 싶은 할망구 소리 들을까봐, 삶에 연연해한다는 소리 들을까봐 수술 안하실라고 했죠? 응. 나이도 이렇게 많은데 무슨 수술이야. 그냥 죽는게 낫지.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오늘 저한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