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기분은 좀 어떠세요?

한국의 의료현실에서 대학병원으로 암환자가 몰립니다. 그래서 외래 진료시간에 환자 몸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 전략을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요. 그러니 마음은 어떠시냐고 물어볼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Journal of Clinical Oncology 라는 종양학 저널에서 2012년 4월호에 암환자를 위한 심리사회적 지원의 중요성에 대한 특집호가 발행되었는데 거기 실린 논문을 읽다보니 유방암에 대한 1차적인 치료를 다 마치고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에 오는 환자들, 그들을 위한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하고 있네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과 마음 때문에 여러 모로 힘든 상태에서 주치의가 환자에게 요즘 기분은 어떠신지 그렇게 감정적인 상태를 묻는 관심을 보이는 것을 원한다는 통계도 인용되어 ..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

뇌종양에 걸린 프랑스 정신과 의사가 20년만에 재발한 뇌종양과 투병하며 쓴 책입니다. 31세에 뇌종양을 진단받고 완치된 후 그는 인지신경학을 전공하는 정신과 의사로 살았습니다. 누가 이런 말을 했느냐에 따라 울림이 다르네요. 그는 의사 생활을 하는 동안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를 많이 만났는데 그때의 경험, 그리고 투병 중인 지금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잘 정리한 글입니다. (좀 놀랍습니다) 그의 서문에서 환자들과 교류하며 나는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적절한 순간은 없다는 걸 배웠다. 환자에게 충격을 주지 않는 조건에서 언제든지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을 꺼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끝이라는 느낌을 주어서도 안 되고, 얼버무려서도 안 된다. 죽음은 예측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회복에 대한 가능성..

항산화제에 대한 생각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트럭이나 가게에서 암에 좋다고, 면역력 증강에 좋다고 무슨 열매, 식품 그런 걸 많이 팝니다. 저도 관심이 많아서 가서 물어봐요. 그거 좋은거래요? 한번 질문하면, 아주 자세한 설명을 들어야 합니다. ^^ 요즘에는 항산화제라며 파는 식품들이 많더군요. 우리 몸은 정상 세포와 암세포 모두가 생존을 위해서 뭔가 에너지원을 받아들여서 대사하고 대사 산물을 이용해 다른 형태의 에너지원을 합성하기도 합니다. 이런 대상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독성 산화물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정상 세포는 아주 미세한 범위 내에서 자체 조절능력을 가지고 이러한 산화 독성을 중화하고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는 것에 비해, 암세포는 그런 조절 능력이 없습니다. 원래 암세포의 산화 독성 상태를 평가해 보면 정상세포보다 그 수..

무엇을 남길까요

삼십대 중반의 엄마 그녀에겐 여섯살난 아들이 있다. 그녀는 매년 건강검진을 했었고 매번 아무 이상도 없다고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4기 위암을 진단받았다. 경황없이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약제 반응이 신통치 않다. 갑자기 복통이 찾아오고 물도 넘기지 못하고 다 토한다. 뱃속에 스텐트라는 것을 넣고 나서야 겨우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녀는 아직 분노 단계에 있다. 보통 첫 항암치료의 효과는 최소한 몇개월은 간다고 들었는데 세달도 안되어서 약효가 없어진 것 같다. 바꿔서 다시 쓴 항암제도 효과가 없는지 장폐색이 왔다. 그녀는 나의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우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나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막연..

가족 중에 암환자가 생겼을 때

가족 중에 암환자가 생겼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가족은 공기와 같은 존재. 평소에는 소중함을 모르고 지내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야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된다. 소중하지만 무심하게 지냈던 우리 가족의 누군가가 암을 진단받았다. 나는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 가장 중요하게 명심해야 하는 사항은 병원의 의료진 못지 않게 가족이 중요한 치료 팀의 일원이라는 사실이다. 즉 나도 치료과정을 함께 하는 멤버 중의 하나라는 것. 약을 제때 챙겨주는 일, 부작용을 모니터하고 관리하는 일,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기록해 두는 일,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알리는 일, 환자 곁에서 지금 하고 있는 치료가 제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아닌지를 관찰하고 상의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

일상으로 복귀할 때

힘들고 어려웠던 유방암 치료의 일차관문을 통과하고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가신 여러분께 수술 후 유방암 환자가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사하여 유방암 환자를 위한 사회심리적인 지지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치료 중 겪었던 어려움, 지금도 남아있는 후유증, 마음의 갈등 등에 대해 여러분이 솔직한 의견을 주시면 이후 치료받게 될 유방암 환자들이 사회 및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돕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같은 배를 타고 가는 유방암 친구, 그들이 망망대해를 헤매지 않고 안전한 항로로 치료의 여정을 밝을 수 있도록 선배 환우님들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와 같은 머릿말이 붙은 설문조사가 다음달 2주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주제가 정해진 연구는 아니고 암치료를 받고 사회로..

Early palliative care 세미나

저희병원 호스피스 팀에서는 올 11월 10일 (토) 국제 완화의료 학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Early ingegration of palliative care 입니다. 호스피스라는 단어, 완화의료라는 개념이 사실 어감이 잘 와닿지 않고 우리에게는 다소 저항감을 주는 면이 있습니다. 여하간 핵심은 암환자 치료에 있어서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 이외에도 환자들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증상조절과 지금보다 더 많은 사회심리적 지지, 가족을 포함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원할한 커뮤니케이션도 필요하다는 것. 이런 전체적인 과정을 통해 암환자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국제학회의 주제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현실적으로 필요한 주..

Long vacation 견디기 - 3

내가 열심히 살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무래도 인생은 스스로 브라보를 외칠 수 밖에 없나봅니다. 우린 누군가에게서 내 마음에 흡족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하지만 내 인생을 책임져 주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당장 눈 앞에 할 일이 많아도 마음이 안 잡히면 허둥대고 집중이 안되서 허송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저도 요즘 좀 그래요. 제 과거를 돌이켜 봅니다. 나의 과거는 아직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습니다. 처음 대학교 다닐 때는 사진에 미쳐서 학과공부는 손도 안대고 전국을 쏘다니며 사진에 올인했었어요. 멋진 보도사진을 찍는, 그래서 역사와 사회를 기록하는 찍사가 되고 싶었던 열망이 강했던 시절이었지요. 긴 방학 동안 몇일찍 집을 떠나 필름 가득담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취재하는게 일이..

유방암 수술 한달후, 팔운동에 장애가 없도록

유방암 수술을 하는 누구도 겨드랑이 림프절을 일부 혹은 전부를 절제하게 됩니다. 검사용으로든 치료용으로든 겨드랑이 림프절을 건드리게 되어 있어요. 일반적으로 혈관이 손상되어 출혈이 생겨도 잘 눌러 지혈하면 저절로 피가 멈추듯이 림프절/림프관이라는 것도 일종의 혈관이라서, 수술할 때 림프절을 제거하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새로운 림프절, 림프조직들이 생겨나며 정상화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제대로 된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혈액순환이 정상적으로 잘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은 사람마다 달라서 온전한 구조를 형성하기 전까지는 수술한 겨드랑이 근처에서 림프액이 셀 수 있습니다. 조직에 림프액이 고이는거죠. 그래서 너무 많이 세서 조직이 땡땡해지고 아프면 주사기로 림프액을 빼면서 증상을 조절할 수 있습니..

더위를 감사한 마음으로

4년째 치료받고 계신다. 병이 거의 안정적으로 콘트롤되서 이제 외래에서 몸 상태나 어디 아픈거에 대해서 얘기할 게 별로 없다. 그냥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분이 오시면 나는 '벌써 3주가 되었나요? 시간 빠르네요.'라고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그만큼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이다. 큰 딸 시집 보낸 이야기 시집보내고 나서 남편이 갑자기 자기랑 상의도 없이 30년간 살던 집을 팔아버려서 한달 넘게 말 한마디 안하고 냉전하며 등돌리고 지냈던 이야기 그래도 영감 불쌍하니까 밥은 챙겨먹이고 산다는 이야기 그래도 부부니까 가끔 같이 골프도 치러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진료한다. 진료가 아니라 대화다. 그래서 이 환자를 만나면 '별 일 없으셨어요?' 라고 묻기보다는 '뭐 좋은 일 없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