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치료적 궁합

토요일인데 유방암 초진환자가 왔다. 보통 초진환자는 평일에 와야 필요한 검사도 하고 혹시 다른 과 진료가 필요하면 같이 봐야 하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려면 평일 진료가 좋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유방암 초진환자 진료를 잘 받지 않는데 오늘 환자가 지정해서 예약을 했다고 한다. 아들과 함께 온 엄마.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나서 수술 후 항암치료를 임상연구로 하자는 말씀을 들으셨다는데 그 설명을 듣고 나서 그걸 꼭 해야 하나 부담이 되어 다른 의사의 의견을 들으러 오셨다고 한다. 환자 본인은 암이라는 진단과 이어지는 수술 등으로 정신이 없어서 의사가 시키는대로 그냥 하겠다고 싸인을 했는데 그리고 왠지 안한다고 하면 불이익을 볼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하겠다고 해놓고는 집에 와서 얘기했더니 남편과 아들이 그..

방사선 폐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유방암 수술을 하고 나면 방사선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방 보존술을 하신 분은 무조건 방사선 치료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유방을 다 절제하신 분들 중에서도 최초 유방의 종양크기가 컸다든지, 수술 후 제거한 림프절에서 종양세포가 침투한 림프절이 여러개 발견될 경우 방사선치료를 받는 것이 수술 후 국소적으로 남아있는 암세포를 제거하고 재발율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고 입증된 바 있습니다. 매일 매일 한달에서 한달반 정도. 그렇게 방사선치료가 끝난지 수개월 내 (대개 3-9개월 사이)에 방사선 폐렴이 올 수가 있습니다. 유방을 중심으로 방사선이 조사되지만 유방 뒤쪽의 폐에도 방사선의 영향이 일부 미치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합병증입니다. 증상은 잔 기침, 가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가래 색..

선생님 저 치료 잘되고 있나요?

수술하고 항암치료 받는 환자분들이 가끔 묻습니다. 선생님, 저 치료 잘 되고 있나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대개 저는 그럼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지만 정확히 말씀드리면 잘되고 있는지는 사실 모른다는 것입니다. 수술을 해 버린 상태에서는 눈에 보이는 병을 다 제거한 상태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전이암을 타겟으로 재발하지 말라고 치료하는 셈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진행된 여러 3상 임상연구를 근거로 하여 도움이 된다고 입증된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조건의 환자군에서 항암치료를 했을 때 재발율과 사망율을 낮춘 것이 명백히 입증되었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일부는 굳이 항암치료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는데 하는 수도 있고 일부는 좀더 강화된 요법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데 미흡한 치..

유방암 생존자로 살아가기, 그 어려움에 대하여

Cancer survivor 혹은 Survivorship 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암 생존자 혹은 생존자로 살아가기 정도가 될까요? 번역을 하니 어감이 별로 와닿지 않습니다. 좀 더 나은 한글 번역어가 필요한 개념입니다. 암이라는 첫 진단을 받고 정신없이 검사하고 치료를 받습니다. 완치 가능한 단계라고 판단되면 첫 치료로 항암치료를 하기도 하고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 방사선치료가, 표적치료가, 항호르몬 치료가 추가로 진행됩니다. 방사선 치료는 보통 한달-한달반, 표적치료는 1년, 항호르몬 치료는 5년간 진행됩니다. 환자마다 이 기간을 받아들이고 견디고 이겨내는 과정이 다른 것 같습니다. 1기인데도 이후 재발을 걱정하고 이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시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3기여도..

우물 안 개구리

오늘 호스피스 완화학회 내 보험위원회 회의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 학회의 보험위원입니다. 근사하네요. 명칭이...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 하에서는 완화의료 서비스나 호스피스 서비스가 정식 수가가 발생하지 않는 서비스 항목입니다. 그래서 개별 병원의 형편에 따라 자원봉사적인 측면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병원도 호스피스 팀이 있고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정말 국내 최고의 호스피스 팀이라고 자부하지만) 정작 환자는 내는 돈 없고 국가도 병원도 지원해주는 돈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1년에 2번하는 자선바자회가 우리 호스피스 수입의 전부입니다. 병원 예산도 거의 책정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우리 암센터에서 일부 예산을 지원해 주신것으로 들었습니다. 원장님, 감사합..

밤이면 밤마다...

제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수첩 외래를 보고 나면 그날 해결이 제대로 안된 환자들의 이름과 병원번호를 씁니다. 환자 전화번호를 써놓기도 합니다. 제가 내일이나 모레 전화드릴께요. 그렇게 말씀드리고 당일 치료 결정을 하지 못한 채 환자를 보낼 때도 가끔 있습니다. 외래를 보고 방으로 돌아오면 수첩을 열고 다시 환자 리뷰를 합니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고민하면서 논문도 좀 찾아보고 솔직히 혼자 생각으로 해결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의 문제는 비단 유방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방 외과나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과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케이스로 나타납니다. 많은 과가 연관된 문제로 말이죠. 우리 암병원의 진료 철학은 아주 오래 전부터 '다학제 진료의 활성화'를 모토로 내 걸었지만 실상 다학제 진..

서태지 할아버지

79세 할아버지. 우리 병원에서 10년 전에 직장암 진단받고 수술도 받고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도 다 받으셨다. 장루도 갖고 계신다. 10년 생존자 새누리클럽 회원이시다. 작년에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원격 전이는 없었지만 췌장 내에서 상당히 진행된 병기라 수술 할 수 없었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 하셨다. 그리고 그 뒤로 1년째 젬자로 항암치료를 하고 계신다. 사진을 보면 아직 병이 남아있지만 처음보다 줄어든 상태에서 크기가 줄어든 채로 1년째 그대로 있다. 이 정도 병기면 평균적으로는 10개월 내에 재발한다고 되어 있는데 아직 괜찮으시다. 할아버지 성격이 긍정 그 자체다. 할아버지는 서태지 랩을 즐겨 하신다. 지난 주 슈퍼스타 K 예선에 나가셔서 방송도 타셨다. 'Come back home'부르..

할머니에게 너무 많은 약

할머니는 진료실에 들어서자 마자 큰 종이가방에서 약봉지 꾸러미를 내 놓는다. 언제, 무슨 약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데 목소리에서 불평과 짜증이 잔뜩 묻어있다. 멀리 경상도 끝에서 태풍을 뚫고 외래에 오셨는데 눈물바람이 더 매섭다. 지금 뭐가 제일 힘드세요?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걸을 때 꼬구라 질려고 해. 전이성 유방암에 대해 아드리아마이신 6번 쓰고 심장기능이 저하되어 심장내과 약을 종류별로 쓰고 계신다. 간으로 전이된 병이 조금씩 나빠지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일단 치료를 보류하고 있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유방암 치료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 원래 당뇨 고혈압이 있으시다. 당뇨나 혈압은 그때그때 환자 상태에 따라 약이 조절, 변경되기 때문에 약 처방이 조금씩 변한..

빙그레 웃음

가끔 유방암 클리닉 외래에서 웃음이 터집니다. 암치료 받으면서 웃을 일이 있냐구요? 그럼요. 삶은 순간이에요. 그 찰나가 즐겁고 웃음나는 순간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원래 탁솔이나 탁소텔이 우울감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런 약을 맞으면 여기 저기 몸이 아프고 서너번 주사를 맞으면 몸이 붓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몸도 무거워요 그리고 항암제를 맞고 1주일 정도 지나면 무기력감도 생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울하기 쉽상이에요. 저 사실 외래 진료실 문 열고 들어오시는 순간, 느낄 수 있어요. '아, 우리 환자가 마음이 좀 힘드시구나. 우울감이 온 것 같다.' 그래도 '우울하세요?' 쉽게 묻지는 못합니다. 그건 왠지 환자의 프라이버시 같아서요. 그래도 제가 '우울하세요?' 이렇게 묻는다는 건, 제 ..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치료를 하다가 좋았는데 나빠지고 또 약을 바꿔서 치료를 하면 다시 좋아지다가 또 나빠지고 이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는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언제까지 이런 치료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지 그 끝을 알 수 없는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꾹 참고 견딘다. 의사선생님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몇달이 지나면 약제 저항성이 생긴다. 기존 약제에 반응하는 놈들은 다 죽고 반응하지 않고 숨어있던 놈들이 슬금슬금 자라서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도 진작에 자라고 있었을텐데 우리는 어느 정도 크기가 커져야 CT에서 비로소 그 존재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의학의 한계다. 그리고 그것이 소위 연구라는 것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가시적인 존재로 나타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