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어린 보호자 면담

고2 중2 남매를 만났다. 이들의 엄마가 내 환자다. 환자는 짧으면 한달, 길면 세달안에 돌아가실 것 같다. 환자는 그동안 복통도 심하고 출혈 때문에 계속 빈혈이 오는데도 절대 입원하지 않으려고 했다. 집에 애들있으니까 애들 옆에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외래에서 버티다 버티다 통증조절이 안되서 입원하였다. 환자의 남편은 올 4월에 돌아가셨다. 환자는 남편 때문에 고생 정말 많이 했다. 환자 당신도 20대에 심장판막수술해서 평생 쿠마딘 먹고 그것때문에도 고생많이 했다. 암으로 고생 많이 하다가 이제 곧 임종하실 것 같다. 그러나 엄마는 지금 자기 통증이 문제가 아니다. 두 남매를 두고 자기가 먼저 죽게 되는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상태가 악화되어 가는 걸 알지만, 아이들에게 절대 얘..

경희야 축하한다

경희야 조금 더 참을려고 했는데 못 참겠다. 행복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으니까. 네가 엄마가 되는구나. 도담이 엄마. 너의 눈물이 너의 고통이 너의 인내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큰 행복으로 활짝 꽃피우길 기도한다. 정말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누구도 나 개인의 삶은 개인의 삶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관계를 맺고 살게 된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네가 원하지 않더라도 너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도담이 소식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 세상에 전파될거야. 도담이는 그 엄청난 사랑과 행복을 받는 아이가 될거고. 이번 겨울이면 4년을 넘어가는구나. 이 세상의 행복을 네가 다 가져가도 좋겠다. 경희..

'괴물'은 되지 말자

내가 보기에도 어색한 인턴 초년병 시절, 병원 생활을 막 하기 시작한 나에게 유용한 조언을 해준 선배들이 있었다. 언니는 나이가 많으니까 어수룩해 보이면 안되. 꼭 복장 단정히 하고 다니고 머리도 빗고 다녀. 복장이 뭐 중요해.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지. 아니야, 언니. 병원에서 의사는 복장과 외모도 중요해. 꼭 단정히 하고 다녀. 가운도 자주 갈아입고. 가운에 볼펜 너무 많이 넣어가지고 다니지 말고. 여름에 슬리퍼 신지 말고. 언니가 슬리퍼 신을 사람도 아니지만. 알았어. 어디서, 누구에게 전화가 오든 '인턴 이수현입니다' 그렇게 딱부러지게 전화를 받는게 중요해. 그건 동의. 습관이 되었다. 한 파트가 끝나면 꼭 윗 선생님들께 정식으로 인사드려. 그동안 많이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설령 그런 마음이..

행복한 외래

추석 연휴가 지난 오늘 외래. 월요일 수요일이 쉬는 날이라 화요일 목요일 외래가 평소보다 분주합니다. 진료를 보기까지 많이 기다리셨을텐데 죄송합니다. 추석이 지났으니 (어쩌면 세속적인 의미로 따지자면) 굳이 인사를 할 필요도 없는데 오늘 이렇게 명절 선물을 많이 받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외국에 주문한 무거운 양초를 세개나 가져와 선물해 주신 분 오늘은 특별히 명절 다음이니까 평소와 달리 딸기 우유를 선물해 주신 분 차량용 방향제 - 나 이거 진짜 갖고 싶었는데 ㅎㅎ 쌀쌀해지면 타 마시라는 허브차 외국 출장 다녀오는 길에 사오신 초콜렛 추석 떡 대신 먹으라는 케익과 파이 달콤한 스무디킹 제일 감동적인 선물은 동네 뒷산에 열린 밤나무에서 직접 밤을 따서 따뜻하게 쪄오신 밤 선물입니다. 쪄먹을 시간 없을 거라고..

후배가 보내준 시

후배가 시를 보내주었습니다. 읽고 또 읽어봅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난소암으로 수술받고 항암치료 받으셨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감수성 뛰어난 시인이라 해도 이렇게 직접 암환자로 병원에서 치료받는 시간을 경험하지 않으셨으면 이렇게 절절한 시를 쓰시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 환자들 그 누구도 이런 마음으로 진료시간을 기다리고 주치의인 저를 만나려고 애태우고 있겠죠. 그런 마음을 다 품을 만큼 아직 성숙하지 못했는데 그 막중한 소임을 다해야 하는 의사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가득 부담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경제 경영의 논리가 의료시장을 파고 들어도 의사는 의사의 원래 본분을 잃으면 안되겠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멀었는데 그런 부족한 저를 믿고 치료받는 환자를 위해 몇번이고 다짐합니다. 어느날 병원에서..

나의 멘티들에게

올초 나에게는 두명의 멘티가 배정되었다. 내과에서 배정해 주었다. 그들 1년차 때 만나 지금은 2년차가 된 녀석들이다. 스승의 날 어색하게 그들로부터 카네이션과 케익을 선물로 받았고 우리는 두세번 고기를 먹었지만 어느새 나도 그들을 잊고 지냈다. 같이 하는 '일'이 없으니 단순히 알고 지내는 이유로 그들을 챙기는 것이 솔직히 어렵다. 모임 한번 잡기도 어렵고, 그 모임을 잡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어렵다. 심지어 멘티 한명은 논문도 봐줘야 하는데 방치하고 있다. 병원에서의 삶이 나를 한치의 여유도 없이 만드는 게 아닐까 핑게를 대본다. 사실 이들 멘티 2명 말고도 친한 레지던트들이 몇 몇 있다. 대개는 같은 파트로 일하면서 정이 든 관계다. 내가 먹을려고 싸온 도시락을 대신 매일 챙겨먹었던 놈 환자 조금이라..

환자가 나를 짜증나게 만들때

다른 병은 잘 모르겠지만 암환자를 주로 진료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환자가 나를 짜증나게 할 때, 그것은 어떤 알람이라는 겁니다. 저는 성격이 그리 온화하거나 양순하지 않고 오히려 욱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환자를 진료하다가도 욱 할 때가 많습니다.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욱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 감정을 잘 숨기지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제 감정 상태의 변화를 다 눈치챕니다. 종양내과 의사로서 아직 많이 멀었습니다. 그런 제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제가 욱 할 때 환자가 자꾸 나를 짜증나게 할 때 그 순간에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약간 지나고 나서 되돌아 보면 그것은 환자가 나에게 보내는 어떤 알람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환자 스스로도 잘 표현하지 못하는, 표현..

그냥 퇴원합시다

10년만에 재발했다. 뭔가가. 10년전에 유방암으로 수술했는데 허리가 아파서 검사했더니 사진상 재발된 암인 것 같다는 말씀을 듣고 온가족이 그 사진만 들고 지난 주 목요일 우리 병원 외래에 오셨다. 연휴가 끼어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예전 병원 기록과 조직슬라이드를 가능한 빨리 가져올 수 있도록 조치를 했고 지방에서 오신 분이니 또 왔다갔다 하는 것도 힘들고 마음도 불안하니 재발된 병에 대해 치료를 하고 내려가고 싶다고 하셔서 일단 입원을 하였다. 나는 목금을 이용해 알뜰하게 검사를 했고 재발된 것으로 추정되는 폐에서도 조직검사를 또 했다. 모든 조직검사는 조직을 얻어낸 다음 그 조직을 가공하여 여러 염색을 하여 암인지 아닌지를 먼저 확인하고 암이라면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또 암의 종류에 따..

가족 간병의 어려움

가까운 사람의 오랜 투병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간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배우자를 간병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주 가깝기 때문에, 혹은 가까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다치기도 쉽고 환자 상태가 좀 않좋아지면 , 내가 좀 더 잘 했어야 했는데 잘 못한걸까 하는 죄책감도 들고 환자가 요구하는게 좀 많아지면, 내 몸도 힘들어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 수 있습니다. 아침에 회진을 도는데 남편이 손수 만들어 온 죽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죽은 곱게 잘 쑤어서 쌀알갱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구운 조기를 가시를 발라 자잘하게 찢어놓고 백김치 국물이 옆에 놓여있네요. 명절에 먹기엔 약간 아쉬움이 있지만 꽤 영양가가 높아 보이는 식..

괜찮아요

가끔 오랜 친구와 전화합니다. 제가 대학도 여러군데 다니고, 예전에 했던 일도 여러가지라 친구들의 폭이 다양한데, 인사 못 챙기고 연락없이 지내는 친구가 많습니다. 오랫만에 연락하는데 이런 전화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인사, 혹은 네가 의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말을 인사로 한 후 근데, 우리 누구누구가 이러이러한 증상으로 어디어디 병원 갔는데 거기서 뭐라뭐라 했대. 그거 맞는거니? 어떤 거야? 글쎄. 내가 주로 보는건 암이라... 사실 직접 환자를 보지 않고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코멘트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한두마디 하면, 그는 내 친구니까 내 말을 덜컥 믿고, 자기를 진료한 의사에게 가서 다른 의사는 이렇다고 하던데 왜 당신 의견을 그런거요? 그런 식으로 따지게 되기 쉽습니다.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