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Family meeting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기로 한 분입니다. 작년에 신장암으로 수술을 하였고 간내 담석이 있어서 간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큰 고비를 여러번 넘기셔서 그런지 항암치료를 설명하는데도 환자 표정이 담담하십니다. 남편 환자의 언니 시집간 딸 그리고 그녀의 돍을 갓 넘긴것 같은 아들 늦둥이 중학생 아들 환자와 함께 모두 모였습니다. 내가 설명을 하는 내내 갓난쟁이가 까르륵 까르륵 계속 크게 웃어대는 바람에 나는 설명하는 내 목소리를 더 높여야 했습니다. 딸은 아이를 얼르고 달래며 내 주위를 왔다갔다 하면서 설명을 듣습니다. 미안하다면서 자기가 놓친 부분의 설명을 다시 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블로그에 들어와서 정보를 얻고 질문을 하는 건 중학생 아들이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번..

아침에 읽은 썰렁한 논문 한편

NEJM 2012;367:1616-25. Patients' expectations about effects of chemotherapy for advanced cancer 오늘자 E-pub 으로 뜬 NEJM 논문입니다. 하바드 그룹에서 연구한 결과입니다. 요지는 전이성 암을 진단받은 환자들 1193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이 연구는 대장암 환자의 81%, 폐암환자의 69%에서 항암치료를 통해 자신이 완치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들의 속성을 비교해 보니 백인에 비해 비백인이거나 히스패닉의 경우에, 의사와의 의사소통이 잘 되고 있는 경우에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완치의 믿음을 더 갖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인종별로 비교해보면, 아시아 사람들이 백인에 비해 완치에 대한..

서로 딴 생각

76세 할머니 병원에 혼자 다니신다. 십년전에 유방암 치료 다 받으셨는데 2009년에 재발했다. 뼈에만. 호르몬제 3년 드셨는데 석달 전 신장과 부신 쪽으로 전이가 진행되었다. 피검사나 몸 컨디션에는 문제가 없다. 새로 전이가 되었다고 말씀드려도 할머니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신다. 호르몬제를 바꿔 드렸다. 가능하면 항암치료는 안 하는게 좋겠다. 전이성 유방암에서는 제일 먼저 이 환자가 항호르몬치료의 적응증에 합당하는지를 고려하는게 치료 원칙의 1번이다. 할머니는 항호르몬 치료를 유지하는 기준에 합당하다. 그리고 가족의 지지가 별로 없는것 같다. 항암치료는 이렇게 혼자 병원 다니면서 받기 어려운 치료다. 3개월에 한번씩 CT를 찍어야 한다는 것에도 할머니는 불만이 많다. 그거 꼭 찍어야 되? CT ..

동기 최고

(특정 가게 선전 절대 아님) 내가 쓴 마사지 관련 글을 본 동기가 자기가 선불결제를 한 전신 마사지 쿠폰을 선물로 주고 갔다. 등산도 좋지만 가끔은 전신마사지를 받아 보면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 질거라고. 꼭 받으라고 당부한다. 언니는 이제 나이 먹었으니까 이런거 좀 받아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고 간다. 약도까지, 장소까지, 전화로 예약하고 가면 된다는 요령까지, 나를 위해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찾은 거라고 설명해준다. 눈물나게 고맙다. 과도 다르고 그와 나는 지금 처한 상황도 많이 다른데 나를 기억하고 챙겨준다. 동기가 좋구나.

수능, 항암보다 중요하다

11월 8일 올해 수능시험 날이다. 엄마 유방암 환자들이 항암치료 일정을 다 변경한다. 수능 전에는 치료를 안 하시겠다고 하는 분이 많다. 아이 시험 전에 자기가 항암제를 맞고 힘들어 하면 아이한테 않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게 이유. 지금쯤이면 모든건 다 결정되어 있는걸지 몰라요. 애들은 엄마랑 상관없이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안해요. 지금 뭣 좀 더 한다고 대세에 지장없어요. 그러니까 일정 맞춰서 치료합시다. 나도 왠만하면 환자의 형편을 맞춰가면서 치료일정을 변경해 주는 편인데 일정을 꼭 맞추는게 필요한 환자가 있다. 그녀는 골수까지 전이되어 백혈구, 혈소판 등의 혈액 수치가 아주 낮은 상태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고 항암치료 2 주기가 지나자 수치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다. ..

향 레코드

20년전 신촌에서는 '독수리 다방'에서 미팅을 했고 '오늘의 책'에서 약속을 했었지요 2차를 갈 때는 오늘의 책 메모판에 메모를 남기면 지나가던 친구들이 그 메모를 보고 예정없이 합석하기도 합니다. 친한 친구들과는 소주집 '훼드라'에 가서 라면 국물과 계란말이에 쏘주도 마시고 술이 안 깨면 탁구장 가서 탁구도 치고 야구장 가서 500원 넣고 공 10개 나오는 야구도 했습니다. 그렇게 술 깨고 집에 갑니다. ^^ 그게 제가 대학 1학년 1990년 대 초반 신촌의 풍경이었죠. 지금 현대 백화점 5거리 자리에 무슨 디스코텍도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 그 앞에서 데모도 많이 했었는데... 그뒤로 신촌 풍경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옛날 가게 중에 남아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3년에 한번씩은 가게가 바..

H 선생님께

H 선생님. 내가 우리 4기 암환자 수술을 주로 의뢰드리는 선생님이다. 내가 비슷한 증상의 환자를 여러 외과 선생님께 협진 의뢰해 봤지만, 두고 보는게 낫다는 둥, 약을 더 써보라는 둥, 수술적 이득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둥, 수술을 잘 안해주시려고 하는 다른 선생님에 비해 H 선생님은 내가 수술을 의뢰한 이유를 잘 수용해주시고, 비교적 수술을 잘 해 주신다. 난 그래서 H 선생님께 주로 수술을 의뢰하게 된다. 수술하는 의사 입장에서 완치 목적이 아닌 4기 환자에 대한 증상 완화적 목적의 수술은 일반 환자에 비해 훨씬 손도 많이 가고, 수술하기도 힘들고, 수술 시간도 길고, 그만큼 그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도 크다. 또 이런 수술들은 대부분 수가가 싸서 본인 및 병원의 수익율 향상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마사지 한번 받아보세요

온 몸이 뻐근하다. 잔뜩 긴장하고 책상 앞에서 일을 한 탓인지 양 어깨에 귀신이 앉아 있는 것처럼 무겁다. 늙은 의대생 시절, 나에게 가끔 마사지를 해주는 동기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이 노쇠한 언니를 위해 자기 쉬는 시간을 할애하여 내 어깨도 주물러 주고 척추뼈도 두들겨주고 나를 그렇게 만져주었다. 그러나 가끔. 마사지를 하는 사람도 힘드니까. 자기의 에너지를 나에게 주는 것이니까. 그녀가 긴장해 있는 내 목 주위 근육을 주물러 주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이고 시원하다. 마사지를 통해 우리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배아프면 엄마들이 손으로 배를 살살 문질러 주며 엄마손 약손을 해준다. 그 온도와 터치가 주는 에너지로 아이들 배가 낫는다. 항암제로 인한 손발저림 항..

삭감 모면을 위해

학회장에서 평소 안면이 없는 선생님께서 - 선생님은 타병원 선생님이시고 종양내과 내에서는 매우 연배가 높으신 선생님인 관계로 나같은 피래미는 선생님 근처에는 갈 일이 없는 관계로 - 나를 따로 찾으셨다. 이선생, 잠깐 얘기해도 될까요? 내 발표에 문제가 있었나? 마음이 긴급 긴장된다. 네, 선생님 말씀하세요. ** 환자 기억나나요? 네. 그런데 선생님이 어떻게 그 환자를 아시죠? 심평원에서 아주 뜨거운 토론을 벌였던 환자라서요. 네? 선생님 말씀인즉슨 그 환자가 말기 암환자로 임종 전 통증 조절을 위해 주사용 몰핀 제재를 고용량으로 쓰고 있었는데 같은 성분의 값싼 몰핀이 있었는데도 내가 사용했던 몰핀 제형의 단가가 더 높아, 전체 진료비용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약을 쓰는 바람에 비용이 많이..

Physicians' Burning Out

어제는 한국 임상 암학회에서 주관하는 두 분과모임의 학회가 있었다. 오전에는 완화의료분과에서, 오후에는 유방암 분과에서 모임을 주관하였다. 오전 발표 중 Physician's burnout 이라는 주제로 대구 계명대 박건욱 선생님 발표가 있었다.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의사의 기력소진 정도라고 하는게 좋을까? 박건욱 선생님은 종양내과 의사로서 암 환자 진료에 경험이 많은 것은 물론이시고, 통증이나 암환자의 삶의 질에 대해 연구도 많이 하신 중견 연구자 이시다. 평소에 특정 암을 중심으로 의학적인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만 보다가 오늘처럼 다소 소프트한 주제로 발표하시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다. 선생님의 발표를 듣는데, 이건 강의를 듣는게 아니라,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함꼐 집단 치료를 받는 시간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