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방사선 치료는 어디서?

대개의 방사선 치료는 컨디션이 왠만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자기 힘으로 걸어다닐 정도는 되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그정도가 안되는데 치료를 하면 치료의 효과보다 독성이 환자를 더 괴롭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방사선치료는 외래에서 통원 치료를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뇌전이로 어지러움증이 심하거나 토해서 먹을 수가 없을 때, 척수전이로 걸을 수가 없을 때, 그럴 때는 입원해서 방사선치료를 합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매일 병원을 왔다갔다 하는 일이 환자입장에서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힘도 들구요. 또 어떤 경우는 방사선치료 첫 1-3회 때에 평소보다 더 피곤하고 아픈 곳이 더 아픈 것 같은 그런 불편감을 더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안하고 퇴원하네요

원래 말이 없는 그녀. 오늘 치료받을 수 있겠어요? 컨디션 괜찮나요? 하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난 그동안 수개월 동안 외래에서 그녀를 위해 줄기차게 항암제를 처방해 왔다. 가끔 찍는 그녀의 가슴 엑스레이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다. 숨은 잘 쉬고 사시나... 폐전이가 심한데, 환자는 그런 폐에 적응을 해서인지 그럭저럭 살만하다고 하신다. 많이 움직이면 숨이 좀 차기는 하지만, 워낙 움직이지 않고 지내니 호흡곤란 때문에 힘들지는 않다고 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하던 중 얼마전 뇌전이가 생겨서 감마나이프를 하였다. 뇌막 전이가 의심되어 오마야도 넣었다. 오마야로 척수강 내 항암제를 투여하는 치료를 하던 중 그녀가 예정에 없이 외래에 왔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서 왔어요. 말이 없는 ..

남편도 받아보지 못한 선물

그녀가 나를 위해 호두를 볶아 왔다. 그녀의 남편이 물었다고 한다. 도대체 누굴 위해 그렇게 정성껏 호두를 볶는 거냐고.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는 그녀. 그녀가 나를 위해 호두를 볶아 왔다. 이렇게 예쁘게 포장을 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대학원 다니고 직장 생활하느라 한시도 쉴 틈이 없던 그녀, 요리라고는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부엌에서 음식하는게 어색한 그녀는 고작 이만큼의 호두를 볶느라 엄청 많은 호두를 태워먹었다고 한다. 이만큼도 겨우 건진거라며 그녀 특유의 눈웃음을 보낸다. 애교만점인 그녀의 눈웃음. 만화 캐릭터처럼 귀엽고 예쁜 그녀는 아주 초기 유방암인 줄 알았는데 수술을 하고보니 생각보다 병기가 높게 나와 8번의 항암치료를 받게 되었다. 나는 가능하면 ..

통증 조절은 혈압 조절을 하는 것처럼

암환자가 컨디션에 나빠 입원했다가 혈압이 떨어지는 이벤트가 생기는 경우, 패혈성 쇼크인 경우가 많다. 패혈성 쇼크는 항생제가 투입되는 시간, 혈압이 정상화되는 시간을 가능한 짧게, 모든 조치를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패혈성 쇼크가 의심되면 - 확진되지 않았더라도 - 아주 집중적인 검사와 과량의 약제 투여가 시작된다. 살고 죽는 것이 시간싸움이다. 약을 쓰고 환자 옆에서 계속 혈압을 잰다. 소변줄을 끼우고 시간당 소변량을 체크하며 약제의 반응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한다. 혈압승압제를 쓰고 몇 분 단위로 혈압을 재면서 환자의 상태가 안정화되는지를 확인한다. 같은 혈액 검사도 수치가 안정화될 때까지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대개 환자 옆에서 서너시간을 서성거리게 된다. 암환자의 조절되지 않는 암성..

모진 말

아무리 정성껏, 조심해서 말해도 모진 말이 있다. 더 이상 치료는 안하는게 좋겠습니다. 환자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될 거 같습니다. 앞으로는 검사도 안할거구요 편안히 계실 수 있도록 하는 조치만 할거에요. 몸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괜찮을 때 퇴원하셔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세요. 지금 컨디션이 제일 좋은 걸지도 몰라요. 주변 정리도 하시고 만날 사람도 좀 만나시고... 아침 회진 돌면서는 이런 말을 안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다인실에 입원한 환자는 다른 환자들이 옆에 있어서 우리 회진 상황을 뻔히 다 보고 있고 우리끼리 나누는 얘기를 다 들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그런 얘기를 하지 안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이런 말은 따로 면담 시간을 잡고 조용하고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하려고 애를 써본다. 우리 입원 병..

내 두발로 걷기

오늘은 종일 외래인데 생각보다 일찍 외래가 끝났습니다. 오랫만에 연대 구내서점에 가 봤습니다. 한동안 서점에 못 갔는데 오늘 가보니 새로운 책들이 눈에 띄네요.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지인들에게 줄 책 선물을 골라봅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산 다음 후딱 읽고 새 책인양 깨끗하게 선물하려는 전략입니다.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장에서 기부금 마련을 위해 판매하는 카드를 샀습니다. 신간 코너에 눈에 띄는 책 한권 4285km를 걸었다는 이야기인가보다 싶어 책 날개를 펼쳐보지도 않고 이 책을 샀습니다. 나를 부르는 숲 (A walk in the woods), 미국의 동부 아팔라치안 산길 3,360km 을 걷는 이야기에 관한 책입니다. 올 초에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이렇게 긴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

검사 자주 안하면 안되요?

그녀는 암을 세번 진단받았다. 유방암 난소암 갑상선암 진단받고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재발하고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그렇게 지내기를 7년째. 그러나 다행히도 매번 치료 성적이 좋다. 지난 주 찍은 PET-CT 를 보니 현재 눈에 보이는 병은 없는 상태다. 지난 번 항암치료를 예정대로 다 마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훨씬 지친것 같았다. 곁에 있는 남편이나 언니는 꾹 참고 끝까지 항암치료를 받으라고 종용하지만 치료를 받는게 환자지 가족인가. 항암치료를 받고 힘든 건 환자의 몸이다. 무엇보다 환자의 의지와 체력이 중요하다. 환자는 서로 다른 암이 진단되고 반복적으로 수술, 항암치료를 받는 생활을 너무 힘들어하고 많이 울었다. 나는 예정된 치료를 끝까지 다 마치지 못했지만, 치료..

그녀의 해피콜

그녀는 일을 하다가 짬이 나면 그동안 일하면서 메모해 둔 환자 정보를 점검하면서 해피콜을 한다. 주로 환자에게. 그리고 가끔 나에게. 차트를 보다가 환자가 응급실을 다녀간게 확인되면 이제 괜찮으신지, 추가 외래 진료를 볼 필요는 없는지 상황을 점검해 준다. 조직검사를 하고 간 환자에게는 검사 후 합병증이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여쭤본다. 내 진료를 보다가 울고 간 환자, 기분이 언잖아했던 환자들에게도 다시 한번 전화하여 이제 괜찮으신지 안부를 챙긴다. 내가 메일로 문의했던 사항은 진행된 상황, 알아본 결과를 정리해서 메일로 보고해 준다. 우리 환자가 다른 과에서 추가 검사를 한게 발견되면 나에게도 미리 알려준다. 알고 계시라고. 진료볼 때 참고하시라고. 외래 일정에 변경이 생겼을 때, 내가 외래 준비를 하면..

FDA inspection

저는 오늘부터 미국 FDA 의 inspection (실사)를 받고 있습니다. Inspection 이라는 것은 임상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의 수행능력을 우리 기관 외부의 독립적인 기관 - 미국 FDA, 한국 KDFA, 유럽의 EMA 와 같은 - 에서 평가하고 점검하는 과정의 일환입니다. 임상연구란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연구의 윤리적 측면, 환자 안전의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임상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이러한 측면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각 병원별 IRB 가 주관하는 자율점검제도, 스폰서(회사) 주도 임상연구에서 시행하는 Audit 등이 진행되고 있는데, 자율점검제도나 audit 은 연구자 혹은 연구를 주도하는 회사가 자율적으로 자신의 연구에 대한 질적 관리를 위해 수행하는 것인데 비해 미..

잠든 뇌를 깨우는 시간

모처럼 전화도 별로 않오고 방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한가로운 주말 오후다. 이렇게 시간이 주어지면 그동안 못했던 일을 많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딴 생각을 하거나 딴 짓을 하거나 꾸벅꾸벅 존다. 나 일주일 동안 힘들었으니까 이정도 여유는 좀 누려도 되는거 아냐? 그렇게 자위해 보지만 사실 멍한 머리를 깨울려고 커피를 네잔이나 마셨지만 도통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벌써 오후가 되었다. 쯧쯧. 이렇게 뇌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난 내일 외래를 예습한다. 술취한 것처럼 무거운 뇌를 깨우는데는 외래 예습이 최고다. 환자 차트를 볼 때는 일단 머리를 빨리 빨리 굴려야 한다. 컴퓨터 한쪽 화면에는 사진을 띄우고 컴퓨터 다른 한쪽 화면에는 경과기록을 띄운다. 사진 판독이 미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