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모진 말

슬기엄마 2012. 11. 28. 16:12

 

아무리 정성껏, 조심해서 말해도

모진 말이 있다.

 

더 이상 치료는 안하는게 좋겠습니다.

환자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될 거 같습니다.

앞으로는 검사도 안할거구요

편안히 계실 수 있도록 하는 조치만 할거에요.

 

몸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괜찮을 때

퇴원하셔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세요.

지금 컨디션이 제일 좋은 걸지도 몰라요.

주변 정리도 하시고

만날 사람도 좀 만나시고...

 

아침 회진 돌면서는 이런 말을 안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다인실에 입원한 환자는

다른 환자들이 옆에 있어서 우리 회진 상황을 뻔히 다 보고 있고

우리끼리 나누는 얘기를 다 들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그런 얘기를 하지 안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이런 말은

따로 면담 시간을 잡고 조용하고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하려고 애를 써본다.

우리 입원 병동에는 아직 이런 면담실이 없다.

 

그래서

나는 외래가 끝난 후

빈 방을 찾아서 환자나 보호자 면담을 한다.

 

그런데

솔직히 매번 그렇게 신경쓰기 어려운 점도 많다.

환자가 많아지고

내 시간이 부족하면

이렇게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다.

회진 후에 복도에서,

환자 거동이 불편하면 그냥 방에서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은

환자와 가족은 울상이 된다.

차마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도 못한다.

사실 내심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다.

이제 비로소 그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게 된다.

그럴 때 하는 이야기는 토씨 하나도 상처가 된다.

 

사람들의 의식수준,

병원과 의료에 대해 기대하는 바는 날로 높아진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상처를 받고 불만이 생긴다.

의사인 나도 의료시스템이 마음에 안드는데 환자들은 오죽하겠는가.

 

 

우리나라 의료현실에서 임종을 예상하는 환자,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기로 한 환자는

갈 곳이 없다.

이들은 검사도 안하고 약도 안쓰기 때문에 

말기환자 진료와 관련하여 특별수가가 책정되지 않는 이상

이런 환자를 입원시키는 병원은 그 자체가 손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병원은 자선기관, 구호기관이 아니다.

어쩜 병원이 그럴 수 있어,

어떤 의사가 그럴 수 있어,

사람들은 그렇게 분노하지만

이건 도덕과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경영과 시스템 운영의 문제이다.

 

몇몇 병원으로 전원소견서를 써서 보냈다.

가족들이 미리 찾아가서 면담을 해 보고 입원장을 받아오시게 했다.

그 병원으로 입원하게 될 때까지 우리 병원에 계시라고도 했다.

그랬더니 모든 병원에서 입원장을 주지 않는다.

 

3차 의료기관의 역할은 급성기 환자를 치료하고 빨리 퇴원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환자들은 서운하겠지만

수액만 맞고 임종을 기다리는 환자가

3차 의료기관에서 입원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

우리 병원을 꼭 이용해야 하는 응급환자, 급한 환자들이 제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다.

그래서 난 과감하게 환자를 퇴원시키기 위해 모진 말을 내뱉는다.

 

오늘 퇴원하시구요

잘 지내세요

 

그렇게 허망한 말을 내뱉고 방을 나온다.

나보다 훨씬 공허한 눈으로 내 뒷모습을 쳐다보는 환자의 시선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