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병원 사회사업팀에서 주관하는
기적의 책갈피 모임이 있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내가 어떤 환자를 위해, 어떤 조직을 위해
내 마음 다하여 지향하고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여
그를 위해/ 그 조직을 위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한달 동안.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책갈피를 누군가에게 준다.
그러면 그가 나에게 이 책갈피를 선물로 받고 나에게 답례로 어떤 선물을 준다.
그러면 나는 그 선물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준다.
그러면 그는 그 선물을 받고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준다.
그러면 나는 또 그 선물을 또또 다른 누군가에 준다....
이렇게 한달동안 나를 매개로 하여 선물이 오고 간다.
손을 거칠 때마다 더 좋은 선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했던 사람에게 전달되는 선물은 처음 시작한 이 책갈피와는 비교도 안되게 큰 선물이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 운동의 이름이 기적의 책갈피 이다.
추상적으로는
그것은 단지 외형적인 선물이 중요한게 아니라 마음이 모이는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왜 그를 지향하는지, 왜 그에게 선물하려고 하는지
뜻을 함께 모으는 시간이 된다.
그는 선물로 상징되는 우리의 마음을 받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난 우리 호스피스실을 마음으로 지향하며
누군가에게 이 기적의 책갈피 선물을 시작할 생각이다.
그래서 예산도 없는 우리 호스피스실에 뭔가 유용한 선물을 주고 싶다.
그런데 아직 그 선물을 뭘로 할지 정하지는 않았다.
내일 호스피스 팀 선생님들을 만나
환자를 보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한달간 그걸 구하기 위해 열심히 책갈피 운동을 벌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스피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싶다.
몇 명의 사람들에게 선물을 건네게 될까?
누구에게 선물을 건네볼까?
정작 모임에 나가서는 열심히 잘 해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솔직히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바빠 죽겠는데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할 때가 많은데
슬기가 보내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못하고 사는데
누구를 만나
이 운동의 취지를 전하고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을 할 여유가 있을까?
또 이 선물을 받으면 답례를 해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기부나 나눔의 문화라는게 꼭 이런 형식일 필요가 있을까?
물론 없다.
다른 방식도 많다.
소리없이 기부하고 후원할 수 있는 방법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 방법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종양내과 의사로서
말기 암환자를 진료하는 사람으로서
주위 사람들과 호스피스에 대해 그 정도는 얘기하며 살 수 있는거 아닌가.
혹은 그 정도는 주위 사람들과 대화하고 살아야 하는거 아닌가.
현대 의학에서
별 관심없고
돈벌이도 안되는 호스피스 서비스.
임종의 순간까지 외로운 이들 곁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우리 호스피스실을 위해
내가 그 정도는 애를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음 속으로
선물을 건네 볼 사람들을 꼽아본다.
사실 내심 정했다.
그들이 좀 부담스러워 하겠지.
그래도 한번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생활에서 작은 기적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기적이라는 것도
우리가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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