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동영상으로 엄마를 찍는 아들

슬기엄마 2012. 10. 15. 09:59

 

 

아주 아주 착한 아들이 있다.

원래 그는 취업 준비 중이었다.

1년전 엄마가 전이성 대장암을 진단받은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빠짐없이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닌다.

증상에 따라 진통제 용량이 바뀌니까 진통제 복용일지도 잘 적어 온다.

엄마가 불편한 곳이 많아 약도 엄청 다양하고 많은데, 그걸 종류별로 잘 챙긴다.

어떤 증상 때문에 약을 더 드셨으니까 그 약은 몇일치가 부족하고

어떤 증상은 요즘 호전되서 약을 안 먹고 있으니 처방 안해줘도 되고 

때에 따라 약 처방 일수가 넘치기도 하고 부족하기도 한데 그런걸 아주 꼼꼼히 아주 잘 챙긴다.

흉수 복수 관이 있을 땐 그 소독도 자기가 챙긴다.

엄마가 이것저것 투정을 많이 부리는데

마치 오빠처럼 그 투정을 다 받아주며 엄마 수발을 들어주었다.

 

 

그러던 엄마가 많이 나빠졌다.

칼륨 수치가 급격하게 증가해서 심장마비로 금방 돌아가실 것 같았다. 최근에 병도 많이 않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별 조치 안하고 임종을 맞이하기로 했다. 그런데 엄마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고는 있지만 아직 괜찮으시다.

 

간 전이가 심해서 황달 수치가 10을 넘었고 혈소판 수치도 2만 정도 밖에 안된다. 그런데 아직 소변도 잘 나오고 간성혼수가 왔다갔다 하긴 하지만 낮에는 의식도 꽤 또렷하다. 말기 임종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엄마 곁에 있는 아들은 한달째 간병인 없이 혼자 엄마 간호를 하고 있다. 아침 회진을 가면 피곤에 지쳐 자고 있다. 그래도 내가 가면 벌떡 일어난다.

 

오늘은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새벽에는 이런 모습으로 힘들어 하시더라구요

 

이렇게 보여준다.

 

영상을 보니 간성혼수다.

간성혼수의 치료를 위해 관장을 해야 하지만 지금 혈소판 수치도 낮고 환자도 잘 협조하지 못한다.

콧줄을 끼워서 듀파락 시럽을 투여하여 설사를 유도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혈소판이 낮아 콧줄 끼우는 행위를 하기에도 출혈 위험이 높다.

 

아들은 엄마 곁을 지키다가 뭔가 이상한게 있거나 의료진에게 보고해야 할 것 같은 사항이 생기면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회진 때 나에게 보여준다. 아주 훌륭한 보호자다.

 

아주 서서히 나빠지는 엄마.

심폐소생술 안하기로 했지만 생각보다 임종이 빨리 오지도 않는다.

의식이 아주 맑지 않은데 흡입성 폐렴도 오지 않는다.

피검사도 안하고 있는데, 환자가 그냥 저냥 잘 버티고 있다.

 

지금은 일종의 연명기간.

환자는 가끔 의식이 맑아져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하신다. 환자 입장에서 지금의 병원 생활은 삶의 질도 형편없고 환자의 자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 그러나 집으로 가기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 이렇게 연명하는 시간이 환자와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몇일을 고민 고민하다가

오늘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영양제도 떼고 진통제만 유지하면서 최소한으로만 치료했으면 해요.

지금 뭔가를 조금씩 해 드리니까 시간이 조금씩 더 연장되는것 같습니다.

그렇게 연장된 시간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금방 돌아가시나요? 언제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안 그러면 언제 돌아가시나요? 한달 가실까요?

 

제 생각에 한달 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난 한달간 서서히 나빠지는 속도를 본다면 말이죠.

그러니 어떤 결단을 내려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이 길어지니 가족도 많이 지쳐가는거 같아요.

 

근데요

엄마가 정신이 너무 맑아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보기엔 맑지 않은데, 그는 맑다고 한다.)

 

그렇게 남은 생이 얼마 안 남은 엄마가 조금이라도 힘들어 하는 것 같으면

그는 그 모습을 찍어 나에게 보여주며 아침마다 보고하고, 그에 대한 나의 판단을 귀담아 듣는다.

엄마에게서 모든 적극적인 조치를 철회하는 것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말했더니

그가 고개를 떨군다.

 

그런 자식의 마음.

내가 이런 말을 하는게 맞는 걸까?

아무리 지금이 치료적 대안이 없고 더 나아질 것도 없는 생애 말기 임종기간이라지만

그에게 단 하나뿐인 엄마인데...

 

병의 진행 코스를 되돌이킬 수 없는 말기 임종환자에서는

수액, 항생제, 영양제, 수혈 등이 추천되지 않는다. 의미없는 시간을 연장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도 원칙적으로 이론적으로는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건

그런게 아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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