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로 맞잡은 손

슬기엄마 2012. 12. 28. 19:08

 

 

오늘

우리 병원 호스피스팀의 마지막 팀 미팅이 있었다.

호스피스 팀에서 올 한해를 결산하는 슬라이드를 보여주셨다.

 

슬라이드 첫장은

서로 맞잡은 손.

이 사진은 우리 호스피스 팀의 서민정 간호사가 직접 찍은 우리 환자와 가족의 사진이다.

 

얼굴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다들 부담스러워 하시는데에 비해

손 사진은 훨씬 덜 부담스러워 하신다고 한다.

환자와 가족에게

'손 잡아보세요' 하면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손을 잡는다고 한다.

관계맺음의 방식이

마음의 엮임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겠지.

 

(파일로 작게 올려서 지금 보니 그 감동이 덜한데)

큰 화면으로 이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 했다.

 

손가락 마디마디 결 따라

환자와 가족이 짊어지고 간 고생의 결이 느껴진다.

힘들고 지쳐도

우린 가족이니까 두 손 꼭 잡고 함께 가는 거라고, 두 손 놓지 말고 끝까지 같이 가는 거라고 다짐하는 이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시범사업을 하면서 다른 과, 다른 선생님들의 환자도 만났다.

임종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얼마나 복잡 다난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의사의 힘으로, 의료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이 얼마나 환자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지 알게 되었다.

 

평소 딸의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던 아버지, 침대채로 환자를 이동하여 병원 내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환자를 옮겼다. 쓸쓸한 연주회가 되지 않도록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딸의 친구 중 팝페라 가수가 있었는 모양이다. 딸의 연주에 맞추어 친구가 노래한다. 아버지는 행복한 마음으로 자기만을 위한 딸의 공연을 보시고 몇일 뒤 돌아가셨다.

 

인턴 선생님이 자기를 자꾸 할머니라고 부른다며 섭섭해 하셔서, 자원봉사사 헤어 디자이너를 연결해 검은 머리로 염색도 해 드리고, 죽기 전에 세례 받고 싶다고 하셔서 목사님께 요청하여 세례도 받게 해드고, 꼭 덮고 싶었다는 꽃이불도 사드렸다. 척추로 전이된 병 때문에 침대에 누운 채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호스피스 팀의 지원으로 환자는 돌아가시기 전에 하고 싶은거 다 해보셨다. 꽃이불 덮은지 이틀만에 돌아가셨다.

 

난소암 말기 장폐색으로 몇개월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부인, 언뜻 보기에도 피골이 상접하다. 그런 부인을 항상 '나의 아름다운 아내'로 소개하던 남편, 그는 진심으로 말했다. 나의 부인은 정말 예쁘고 아름답다고. 이렇게 예쁜 부인을 둔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그녀는 그에게 최고의 부인이었다. 부인 돌아가시기 전에 찍은 부부사진. 남편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었지만 활짝 웃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맞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의 이름이 리본으로 매달린 풍선을 만들고 그런 풍선이 둥둥 떠 있는 공연장을 만들었다. 그런 아이들로 가득 찬 공연장에 자원봉사자 최종백 화백은 즉석에서 연필로 아이들을 그려주신다. 아이들은 로보트로 가져와서 그려달라고 하고 친구도 같이 그려달라고 하고 별거 별거 다 그려달라고 조른다. 세시간이 넘도록 그려도 끝나지 않는 복잡한 로보트. 그는 하루 종일 우리 아이들을, 아이들이 그려달라고 하는 것을 그려주신다. 힘든 시술을 받으러 간 아이들을 쫒아가 시술을 받는 장면을 그려주신다. 그리고 힘든 시술을 받고 나온 아이들에게 훈장처럼 그림 선물을 주신다. 아이들이 언제 아팠냐는 듯이 활짝 웃는다. 힘든 검사를 이겨낸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한다.

 

백일잔치를 해주고 떠난 젊은 엄마의 사진을 보니, 애기 아빠가 준 백일떡 받고 우리가 함께 울었던 그날도 생각난다. 사진 속에 아프지만 행복한 엄마의 얼굴이 생생하다. 백일잔치하고 일주일만에 돌아가신 그 날이 엊그제 같다. 이제 아이도 많이 컸겠구나.

 

우리 병원 호스피스팀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은

환자가 임종 전에 꼭 하고 싶은 것, 풀고 싶은 마음 등을 찾아내

환자의 형편에 맞게 도움을 제공한다.

의료비는 책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병원 호스피스 팀은 공식적인 예산 책정도 되어 있지 않은 조직이다.

정규직 두명의 월급이 나올 뿐이다. 나머지 일하시는 분들은 비정규직으로 이 일을 하고 계시다. 벌써 2년째. 이분들이 우리 병원의 정규직으로 배정되어 호스피스에서 계속 일을 하셔야 하는데... 나도 비정규직이지만, 이들만큼은 정말 꼭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석같은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가 입원하면 최소한 7일 이내에 검사하고 응급 조치하고 퇴원할 수 있도록 재원일수를 제한하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병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병원은 이 압력이 훨씬 더 강하다. 인정사정 볼것 없이 퇴원해야 한다. 나는 그런 정책이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참 이렇게 해야만 병원이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말기 암환자가 되어 특별히 의학적으로 추가적인 검사나 조치할 것이 없으면 대학병원에는 입원도 어렵다. 더 이상의 치료적 대안이 없는 환자는 3차 의료기관 입원보다는 안락한 병원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호스피스 병원도 별로 없다. 호스피스라는 말이 너무 절망적이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환자는 자기 주치의에게 매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서비스를 주치의 혼자의 힘으로 고민하고 제공하기는 어렵다. 그걸 도와주는 팀이 호스피스 팀이다. (호스피스 팀이라는 명칭보다는 환자들이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없는 이름으로 팀 이름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호스피스 서비스는 병원 재정과 경영의 측면에서 보면 마이너스다. 그래서 자본의 측면에서 보면 호스피스 서비스를 잘 하는 것이 별로 유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년부터 호스피스 케어에 수가를 적용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도 있었는데, 가격 책정의 근거와 그런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는 호스피스 서비스의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비용으로 최선의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란 말인가. 그정도 여력이 있으면 일반 환자 진료가 훨씬 나을 것 같다. 진단을 위해 검사하고 약 써서 치료하는게 훨씬 쉽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도 환자를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며

환자의 평온한 삶과 죽음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회의를 하였다.

언젠가는 돌아가실 말기 암환자를 위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그 무엇.

죽음의 순간에 후회없이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노라고,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았노라고

그렇게 웰 리빙, 췔 다잉 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한 손에는 자본의 잣대를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환자와 손을 맞잡고 있는 우리. 

이러한 현실이 아이러니하지만

더 이상 아이러니하지 않도록 상황을 바꾸는 것도 우리의 몫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