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고생 많았어요

슬기엄마 2013. 2. 12. 20:37

 

아침 회진 시간, 전공의와 대화

 

** 씨는 혈압, 맥박, 호흡수가 어떠어떠한 상태입니다.

의식은 명료하지 못한 상태이고,

진통제 및 승압제는 같은 용량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직 안 돌아가셨어요?

 

네...

 

어제 호흡 양상 봐서는 금방 돌아가실 거 같았는데...

 

네. 잘 견디시는 것 같습니다.

 

빨리 돌아가셔야 할텐데...

 

누가 들으면 깜짝 놀랄 대화이다.

환자를 두고 빨리 돌아가셔야 할텐데 의사가 그런 얘기를 하다니...

그러나 환자가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게 솔직한 나의 마음이었다.

 

 

환자는 나보다 한참 어린 젊은 남자.

아주 천천히 자라는 육종을 진단받았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5년전. 치프 레지던트로 일할 때이다. 너무 잘 생겨서 같이 치프 레지던트로 일하던 홍양과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그를 처음 본 건 내가 일하는 파트의 주치의 선생님 환자로 그가 입원하여 항암치료를 받던 때였지만, 나중에는 내가 일하는 파트가 아니어도 그의 입원주기를 셈하고 있다가 그가 입원할 때가 되면 차트를 확인하고 가서 따로 안부도 묻고 인사도 하였다.

 

잘 생기고 멋진 그를 만나기 위해서? 솔직히 그랬던 것 같다. 나랑 홍양이 방문을 하면 그도 우리를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냥 정이 갔다. 잘 해주고 싶었다.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힘든 치료를 받고 있는게 안쓰러웠다. 잘 챙겨주고 싶었다.

 

키도 크고 잘 생기고 과묵한 그는 평소 별 말이 없는 스타일었다. 항암치료도 별 내색없이 받는 환자였다. 때 되면 입원해서 항암치료 하고 퇴원하고, 젊고 건강해서 중간에 열이 나거나 치료 합병증으로 응급실에 오지도 않았다. 그때만 해도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던 무렵이라 컨디션이 좋았다. 다만 수술로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기가 어려워 복강 내 병을 어느 정도 남겨둔 상태라 추가적인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던 무렵이다.

그렇게 몇개월 그를 추적관찰(!)하며 만났지만

나는 전문의 시험을 보고 다른 병원에서 1년간 전임강사로 일을 하느라 우리 병원을 떠나 있었다.

홍양과 나는 만나면 가끔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이 많이 간 환자였다.

 

그리고 재작년, 연수를 가신 선생님에 이어 내가 그 환자의 주치의가 되었다.

 

오랫만에 외래에서 다시 만난 그.

 

여전히 잘 생겼지만 

얼굴과 몸이 많이 상한 것 같았다.

그는 그 사이에 병이 재발했고, 수차례의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신약 임상연구 등 갖가지 종류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병이 자라는 속도가 느리니, 치료를 해도 완치되지 않고 복강 내 종양은 서서히 나빠지는 양상을 보였다. 내가 만날 무렵에는 특별한 치료없이 진통제를 먹으면서 통증만 조절하고 있는 시기였다.

더 시도할만한 치료도 없고, 통증도 별로 심하지 않고, 그냥 경과관찰을 하는 시기.

 

그는 자신의 상태를 잘 인식하고 있었고 통증 조절이 되는 동안에는 병원에 오고 싶어하지 않았나 보다. 잡아준 외래도 잘 안왔다. 하라는 검사도 잘 안했다. 아프면 병원에 왔다. 그리고 진통제 복용량을 늘려서 처방을 받아갔다. 난 그런 그를 내버려 두었다.

왜 외래 안왔어요? 왜 검사 안했어요? 내가 물으면 

그는

뾰족한 수가 없잖아요. 지금 괜찮으니 그냥 이렇게 지내고 싶어요.

그렇게 대답했다.

나도 할말이 없었다.

 

그렇게 몇개월 지내다가 복강 내 있던 병이 간으로 전이가 되었다. 복부 통증이 심해졌고 복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견디다 못해 다시 항암치료를 하자는 나의 권유에 못이겨 다시 입원을 하였다. 다행히 항암치료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독성으로 너무 심하게 고생을 했다. 아무리 효과가 좋다 해도 다시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또 그렇게 몇개월을 지냈다. 항암치료의 효과는 4-5개월 정도 유지된 것 같다. 그 후로 다시 진통제 용량이 늘었다.

 

복강 내 병이 나빠지니 소대변을 보는 것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변비가 심해 3일 정도 입원해서 관장하고 겨우 나아져서 퇴원하기도 했고, 먹는 진통제로 통증이 조절되지 않아 주사 진통제를 맞기 위해 일주일을 입원해서 통증 조절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입원하면 가능한 빨리 퇴원하고 싶어했다. 강원도 바닷가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원래 말이 없는 그는 심한 통증도 잘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처방을 할지 뻔히 아는 눈치다. 그래서 나에게 진료받지 않고 나름대로 진통제를 잘 조합해서 먹는다. 그가 아프다고 표현을 하면 정말 아픈 것이었다. 그런 그가 아파 죽겠는데도 병원을 오지않고 한달을 버티다가 몇일 전 입원을 했다.

 

나는 애써 명랑하게 그를 맞이한다.

 

**씨, 많이 힘들었나 보네요. 자기 발로 입원도 하고.

 

네...

 

얼굴 많이 상했네요. 예전 인물 어디로 갔어요?

 

그가 피식 웃는다.

 

나는 잘 생긴 **씨가 좋더라. 빨리 원기를 차리고 원래대로 잘 생긴 모습 보여줘요.

 

네...

 

그렇지만 그의 통증은 잘 조절되지 않았다. 밤에는 수면제와 진정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도 못할 정도였다. 면역력도 많이 떨어져 있었는지 입원하자 마자 잰 체온이 35도. 혈압도 낮다. 패혈성 쇼크가 의심된다. 입원하자 마자 나간 피검사에서 곰팡이균이 자란다. 승압제를 써도 혈압이 많이 오르지 않는다. 못 먹는 사람에게 항생제, 항진균제, 승압제, 진통제, 수면제 이런 약들을 써 대니 환자가 완전히 늘어진다.

 

누나와 상의하여 호스피스 면담을 했으면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지난 5년의 시간동안 그는 이미 많은 생각을 했고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진정제 때문에 너무 가라앉는 것 같나요? 의식이 좀 몽롱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기분이 싫은가요?

 

그는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 지금 이 상태로 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나를 보지 않고 눈을 감는다. 눈을 뜰 힘마저 없나보다.

 

오늘 아침 회진 때 나는 승압제를 중단하였다. 생명력을 시사하는 반응이 거의 없었다. 가족들에게 승압제를 중단하는게 좋겠다고, 이런 약을 쓰면서 시간을 하루 이틀 더 연장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는 그렇게 버티다가 오늘 소천하였다. 

 

그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마음을 아무에게도 열지 않고 혼자 끌어않고 힘들어 하다가 갔다.

그 고통과 외로움

나는 수년간 그 마음을 위로하지 못하고

알량한 진통제 몇알을 처방하는 의사였다.

다시 그를 만난다면 나는 무엇을 해 주었어야 했을까?

한창 젊은 그, 그렇게 병과 싸우며 고통을 감내하는 그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주었야 했을까?

 

 

너무 오랫동안 고통받았다. 이제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