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기적의 책갈피

슬기엄마 2012. 11. 1. 21:43

 

 

오늘 우리병원 사회사업팀에서 주관하는

기적의 책갈피 모임이 있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내가 어떤 환자를 위해, 어떤 조직을 위해

내 마음 다하여 지향하고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여

그를 위해/ 그 조직을 위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한달 동안.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책갈피를 누군가에게 준다.

그러면 그가 나에게 이 책갈피를 선물로 받고 나에게 답례로 어떤 선물을 준다.

 

그러면 나는 그 선물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준다.

그러면 그는 그 선물을 받고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준다.

 

그러면 나는 또 그 선물을 또또 다른 누군가에 준다....

 

이렇게 한달동안 나를 매개로 하여 선물이 오고 간다.

손을 거칠 때마다 더 좋은 선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했던 사람에게 전달되는 선물은 처음 시작한 이 책갈피와는 비교도 안되게 큰 선물이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 운동의 이름이 기적의 책갈피 이다.

 

 

추상적으로는

 

그것은 단지 외형적인 선물이 중요한게 아니라 마음이 모이는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왜 그를 지향하는지, 왜 그에게 선물하려고 하는지

뜻을 함께 모으는 시간이 된다.

그는 선물로 상징되는 우리의 마음을 받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난 우리 호스피스실을 마음으로 지향하며

누군가에게 이 기적의 책갈피 선물을 시작할 생각이다.

그래서 예산도 없는 우리 호스피스실에 뭔가 유용한 선물을 주고 싶다.

그런데 아직 그 선물을 뭘로 할지 정하지는 않았다.

내일 호스피스 팀 선생님들을 만나

환자를 보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한달간 그걸 구하기 위해 열심히 책갈피 운동을 벌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스피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싶다.

 

몇 명의 사람들에게 선물을 건네게 될까?

누구에게 선물을 건네볼까?

 

정작 모임에 나가서는 열심히 잘 해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솔직히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바빠 죽겠는데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할 때가 많은데

슬기가 보내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못하고 사는데

누구를 만나

이 운동의 취지를 전하고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을 할 여유가 있을까?

 

또 이 선물을 받으면 답례를 해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기부나 나눔의 문화라는게 꼭 이런 형식일 필요가 있을까?

 

물론 없다.

다른 방식도 많다.

소리없이 기부하고 후원할 수 있는 방법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 방법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종양내과 의사로서

말기 암환자를 진료하는 사람으로서

주위 사람들과 호스피스에 대해 그 정도는 얘기하며 살 수 있는거 아닌가.

혹은 그 정도는 주위 사람들과 대화하고 살아야 하는거 아닌가.

 

현대 의학에서

별 관심없고

돈벌이도 안되는 호스피스 서비스.

임종의 순간까지 외로운 이들 곁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우리 호스피스실을 위해

내가 그 정도는 애를 써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음 속으로

선물을 건네 볼 사람들을 꼽아본다.

사실 내심 정했다.

그들이 좀 부담스러워 하겠지.

그래도 한번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생활에서 작은 기적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기적이라는 것도

우리가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