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나의 주말

오늘은 대한암학회가 있었습니다. 올해는 프로그램이 좋아서 그런지 참가자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학회가 열리는 발표장이 꽉 차서 서서 듣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자기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사람 최신 지견을 공부해서 발표하는 사람 강의를 듣고 질문하는 사람 내과, 외과, 방사선종양학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신경외과 등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 여러 기초분야 연구자 등 암을 연구하고 진료하는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습니다. 한동안 국내 학회가 시들해지는 분위기였는데 오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학회를 가면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슷한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아직 연구해서 발표할만한 변변한 과제도 없고 그저 배우고 따라가기에 급급한 신참인 것 같습니다...

드레싱 도사가 된 할아버지

할머니 유방 상처가 낫지를 않는다. 항암제가 잘 들으면 상처가 잘 아물고 깨끗해졌다가 항암제 저항성이 생기면 다시 상처가 덧난다. 항암제가 듣지 않을 때는 진물도 많이 나고 살성도 벌겋게 변해서 드레싱하기도 힘들게 순식간에 나빠진다. 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는 항상 외래에 같이 다니신다. 치료 받는 사이 할머니에게는 뇌전이도 한번 왔다 갔고 악화되는 상처 때문에 유방에 방사선 치료도 했고 세가지 약제 이상으로 여러번 항암제를 바꿔서 치료했지만 결국 나빠지고 있는 중이었다. 할머니인데 삼중음성유방암이었다. 처음 이 할아버지는 너무 꼬장꼬장 하셔서 사실 나랑 몇번의 실갱이도 있었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할머니랑 대화하며 치료방법을 결정하고 관련 설명을 드렸었다. 할아버지는 약간 못마..

진료실에서의 기도

오후 외래 들어가기 전 분초를 다투어 다른 일 처리를 하다가 가까운 사람에게 실수를 하였다. 가까울수록 더 예의를 지키고 조심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 사실을 잊었나보다. 외래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심사가 얼굴에 다 드러났는지 오후 외래 첫 환자부터 나를 걱정한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이어 들어온 몇명의 환자가 계속 똑같이 나를 걱정한다. 선생님, 얼굴 표정이 너무 않좋아요. 나쁜 일 있어요? 선생님이 저보다 더 않좋아 보여요. 힘내세요. 세상에, 자기 몸 아파 병원에 온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담당의사의 얼굴 표정을 보고 걱정을 하다니 참 엉터리 의사다. 소심한 나는 얼굴 표정을 잘 못 바꾸고 그렇게 꿀꿀한 표정으로 진료를 하는데 목사님 환자 차례가 되었다. 지난 번 외래에서 병이..

재충전

저, 일주일간 학회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애써 블로그를 외면하며 들어와보지 않았어요. 저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마음에 가득 찰 때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요 환자 진료를 하면서 그런 마음이 들게 되요. 우리 환자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 병원을 떠나 학회를 가니 그런 생각이 잘 안나더라구요.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연결이 잘 안되고 글이 잘 안써져요. 솔직히 다른 한편으로는 방전된 나의 밧데리를 충분히 충전시키고 싶은 생각도 있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외래 환자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주치의가 학회가고 없다고 하니까 외래에 안오시고 집에서 아픈거 끙끙 참다가 오셔서 엉엉 우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암 환자들이 통증 때문에 아파서 우는 거, 제가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입원장을 드리며 마음이..

기적의 책갈피

오늘 우리병원 사회사업팀에서 주관하는 기적의 책갈피 모임이 있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내가 어떤 환자를 위해, 어떤 조직을 위해 내 마음 다하여 지향하고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여 그를 위해/ 그 조직을 위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한달 동안.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책갈피를 누군가에게 준다. 그러면 그가 나에게 이 책갈피를 선물로 받고 나에게 답례로 어떤 선물을 준다. 그러면 나는 그 선물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준다. 그러면 그는 그 선물을 받고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준다. 그러면 나는 또 그 선물을 또또 다른 누군가에 준다.... 이렇게 한달동안 나를 매개로 하여 선물이 오고 간다. 손을 거칠 때마다 더 좋은 선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했던 사람..

Pink Ribbon 볼수록 설래는

왼쪽부터 첫번째 인하대학교 예방의학교실 황승식 선생님이 미국으로 주문해서 보내주신 유방암 뱃지. (태평양을 건너왔음). 배송잘못으로 한번 불발되었다가 선생님의 끝질긴 노력으로 재주문하여 우리병원에 도착하기 까지 너무너무 오래 걸린 미국야구 메이저리그의 유방암 뱃지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에서는 매년 어머니날 (5월 11일)에 유방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팀별로 다양한 기념품과 행사를 준비한다. 야구 선수들은 핑크색 방망이를 사용한다거나 핑크색 운동화끈을 매고 심판들은 핑크색 손목밴드 등을 사용한다. 게임이 끝나면 이들 기념품이 경매나 기부 등으로 판매되고 이익금이 유방암 재단에 환원된다. 이날 야구장을 찾는 여성 관객들에게 핑크리본 뱃지를 나눠주기도 한다. 이런 기념품을 받은 관객들은 기부..

Party 가 열립니다

11월 24일 토요일 오전 11시 - 12시 세브란스병원 3층 로비 '찾아가는 뮤지컬 갈라 콘서트'가 열립니다. 뮤지컬 공연을 해주시는 분들은 뮤지컬 전문 배우들이 아닌 직장인, 학생 등이 모여 만든 아마추어 동아리 '레씽 뮤지컬' 이라는 동호회 회원들이십니다. 동호회 멤버 중 한분이 5일간 병원에 입원할 일이 생겨서 치료를 받으셨는데 병원 생활을 해보니 입원한 환자들의 아픈 몸과 마음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대요 특히 장기 입원하신 분들을 보며 그들을 위해 희망의 노래를 불러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상한 프로그램이 일명 '찾아가는 갈라 콘서트' 입니다. 우리나라 아마추어 뮤지컬 동아리 중에 가장 잘 나가는 동호회라고 해요. 극장을 빌려 콘서트도 하시고 활동이 왕성하신 분들입..

화해의 제스처

지난 2년동안 외래 올 때 마다 나랑 싸웠다. 할머니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절대 얘기하지 않으면서 내가 권하는 건 다 안한다고 했었다. 말이 안 통했다. 당신 맘 대로 외래 약속도 펑크내고 안 오기 일쑤였다. 너무 말이 안 통해서 정신과 진료를 보려고까지 했었다. 처음 전이된 후 호르몬제를 복용하다가 병이 약간 나빠졌는데 그때 마침 할머니가 들어갈만한 호르몬 임상연구가 있어서 그 연구에 참여하여 치료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할머니에게는 신약이 투여되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참여했던 연구결과가 올해 나왔는데 그 신약의 우수성이 3상 연구에서 아주 명증하게 입증되었다. 할머니는 임상연구의 혜택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 약이 투여되던 당시 소소한 부작용들이 있었다. 심각하지는 않았다...

환갑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생일을 두번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원래 태어난 날. 그리고 암 치료 마친 날. 내일이 당신 태어난 환갑이라고 하신다. 요즘에는 환갑잔치도 잘 안하고 환갑이라는 말도 안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환갑은 별로 귀한 나이가아니다. 환자는 2005년 첫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2년만에 재발했으며 지금 허셉틴으로 유지치료를 하며 3주에 한번씩 병원에 오신다. 재발해서 4기 유방암 환자가 되었지만, 마침 그때 막 보험에서 인정되기 시작한 허셉틴을 쓰고 치료 반응이 좋았다. 이런 환자에서 언제까지 허셉틴을 사용할 것이냐 아직 정답이 없다. 별 부작용이 없으니 계속 쓰고 있다. 심장기능 검사 가끔, 종양평가를 위한 CT 가끔. 가능하면 검사 간격도 넓혀서 자주 검사를 안하게 하고 있다. 내가 기록한 그녀의 차트에..

귀염둥이 녀석들

우리 1년차랑 3년차가 오늘로 텀체인지를 하고 우리 파트 근무를 끝냈다. 매 텀 근무하는 레지던트들이 바뀌는데 이들과 함께 환자를 보면서 나의 부족한 점, 후배지만 레지던트들의 우수한 점, 그들의 발전가능성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된다. 나보다 훨씬 훌륭하게 성장할 거라는 느낌. 그러니까 이놈들한테 잘 보여야겠다는 비굴한 희망마저. ㅎㅎ 내가 그렇게 발전 가능성이 많은 후배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에 있다는게 뿌듯하기도 하면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호감이 생길 때가 있는데 이번 텀에 우리 파트를 돌고 간 녀석들이 그랬다. 내가 별 말 하지 않아도 둘이 열심히 의논하고 상의해서 열심히 환자를 보고 있는게 느껴졌다. 1년차는 빠릿빠릿하게 부지런히 일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