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나를 감동시키는 그들

토요일 오후, 다음주 월요일 오전에 있는 저널발표를 이번에는 내과에서 담당할 차례인데 깜박 잊고 있었다. 외과에서 다음주 저널발표 주제가 뭔지 묻는 메일이 왔다. 아차! 나는 부랴부랴 저널을 찾는다.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이번호에 지난 30년간 유방암 선별검사로 시행된 Mammography 검사의 유용성을 평가하는 논문이 실렸다. 나는 대충 초록만 읽고 발표를 하게 될 우리 레지던트에게 논문을 메일로 보냈다. 일주일 내내 병원에서 먹고 자는 우리 레지던트, 주말은 좀 쉬어야 하는데 토요일 오후에 발표준비하라고 논문을 보내다니 정말 나쁜 선생님이다. 낮에 메일을 보냈는데 저녁에 질문 메일이 왔다. 선생님, 뭐는 어떻고 저떻다고 하는데 그건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 선생님..

작지만 아름다운 공연

찾아가는 뮤지컬 갈라 콘서트가 오늘 오전 11시 우리 병원 본관 로비에서 열렸습니다. 아마추어 뮤지컬 동우회 '렛싱 뮤지컬' 팀에서 우리병원에서 재능나눔 콘서트를 개최하였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이들 동우회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주대 후배 노연경 선생님이 렛싱 뮤지컬 팀에서 노래하는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환자를 위해 찾아가는 콘서트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고 연락을 받은 제가 우리 병원 홍보팀에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소리소문 없이 준비된 공연이 오늘 열리게 되었습니다. 홍보팀의 한대금 선생님은 주말인데도 나와서 이번 행사가 잘 진행되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병원 로비는 사실 노래하는 공연장으로서는 별로입니다. 공간도 넓고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산만해지기 쉽습니다...

이런 삶도...

그녀는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을 때부터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수술 후 항암치료도 한번 받고 말았다. 왜 그런지 모른다. 다른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라 기록도 명확하지 않다. 그렇게 지내다 2년만에 재발이 되어 우리 병원에 오셨다. 보호자가 없다. 첫 재발인데 폐, 뼈, 간, 뇌까지 전이 범위가 넓고 종양 분포 범위도 넓다. 내가 아무리 물어도 환자는 별 얘기를 안한다. 무슨 검사를 하자고 하면 항상 머뭇거린다. 사회복지팀에 연결하여 일정 부분 경제적 지원을 받으실 수 있게 해드렸다. 한동안 치료를 잘 받으셨다. 생각보다 항암제 반응이 좋았다. 항상 피가 나고 염증이 있어 진물이 흐르던 유방도 깨끗해졌다. 여기 저기 전이되었던 곳들이 다들 얌전해졌다. 환자의 치료 스케줄이 D1, D8 그렇게 3주에 ..

이런 죽음도...

나는 암환자를 진료하는 종양내과 의사지만, 매번 환자의 죽음은 낯설다. 가끔 어떤 이유로든 예전 내가 진료하던 환자들-지금은 돌아가신- 의 차트를 볼 일이 있는데 그 환자의 살아 생전, 그리고 돌아가시던 당시의 모습이 떠오른다. 돌아가시던 날 아침 회진 때 본 환자들의 얼굴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 나의 기분도 떠오른다. 어떤 죽음도 매번 힘든 일이다. 오늘은 나에게 그런 기억도 채 없는 36세 젊은 환자가 오늘 아침 갑자기 사망하였다. 2기초 유방암. 4번의 항암치료. 나랑은 5번 만난게 전부다. 항암치료할 때 4번. 그리고 항암치료 후 첫 종합검사 시 이상없다는 검사 결과 알려준게 전부다. 그리고 그녀는 외과에서 추적관찰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항암치료 받은지 1년이 채 안되었다. 재발을..

할머니의 이중잣대

EMR 상 할머니 나이는 85세다. 실재 나이는 88세라고 하신다. 뼈전이, 폐전이가 동반된 전이성 유방암. 재발된지 4년째. 그 사이에 뼈 전이가 악화되면서 항호르몬제를 한번 바꾼 적이 있다. 지금은 두번째 항호르몬제인 아로마신을 드시고 계신다. 할머니는 항호르몬제 치료만으로도 비교적 병이 잘 조절되는 타입에 속한다. 3개월에 한번씩 하는 정기 검사를 안하고 싶어하신다. 맨날 비슷한데 뭐하러 자꾸 사진을 찍냐고 성화이시다. 충청도 서해안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병원도 더 이상 안 오고 싶고 약도 그만 먹고 싶다고 한다. 매번 외래에서 약 그만 먹으면 안되냐는 타령이다. 할머니, 힘든거 없잖아요. 그냥 하루에 한알 드시기만 하면 되요. 지금 칼슘약도 잘 드셔서 골다공증도 없고 좋아요. 그냥 이렇게 약 드..

김치 선물

김치 담글 줄은 알아? 우리 집 김장 한거 한통 챙겨왔어. 한번 맛좀 봐. 우리 언니가 저희 집 김장을 대신 해줬는데요, 우리 언니 김치맛은 우리나라 최고에요. 한번 맛 좀 보세요. 종류별로 조금씩 싸 봤어요. 대개 비닐 봉지나 작은 그릇에 김치를 담아오신다. 손이 큰 어떤 환자는 거의 항아리 크기만한 큰 플라스틱 통 2통에 김장김치를 보내주시기도 한다. 우리 엄마는 환자들이 선물로 준 김치가 모이면 은근 올해 김장을 안할 기세다. (그러나 엄마도 버티다가 어제 결국 김장을 하고 말았다 ^^) 할머니가 우리 집 김장 해줬어요. 선생님 입맛에 맞을 지 모르겠어요. 간 전이가 의심되어 조직검사를 할려고 입원한 나랑 동갑내기 환자, 어제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도 아직 안 나왔는데 당일 퇴원하면서 김치를 한통을 ..

임상연구의 중간결과 발표

환자들에게 임상연구를 제안할 때 이 연구가 환자에게 100% 이득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시작하는 연구는 없습니다. 그렇게 이득이 될 것이 확실하면 임상연구를 하지 않고 바로 현실에 적용하는게 윤리적으로 맞는 겁니다. 그러나 임상연구를 거치지 않은 채 그렇게 확신할만한 약제를 찾고 치료에 적용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근거가 필요합니다. 종양학, 항암제의 개발 역사는 거듭된 임상연구에 의해 그 지식이 축적되어 왔습니다. 실험실에서 세포실험, 동물실험을 거쳐 일정정도 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난 약제를 1상, 2상, 3상 연구에 수차례 적용하여 새로 개발된 약제가 기존 약제에 비해 비슷하거나 혹은 우수하다는 결과를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교과서적인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

좀 야한 얘기면 어때요?

진료 순서가 되었는데 환자가 안 들어온다. 간호사가 여러번 목청 높여 환자를 부른다. 대기실 저 멀리서 까르륵 웃고 있는 환자들 무리에서 뛰어오는 그녀가 보인다. 아니, 뭐 하시느라 자기 이름 부르는 것도 모르고 계세요?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좋은 일 있는 건 아니구요, 나 뒤에 외래 보는 그이가 웃기는 얘기를 해줘서 그거 듣고 웃다가 저 부르는지도 몰랐어요. 무슨 애기가 그렇게 웃겨요? 저도 좀 같이 웃어요. !@#$%^&*+++ 그런게 있는데요 !@#$%^&*+++ 그런 거래요 아이고, 그런 야한 얘기를 하면서 외래 기다리는 거에요? 오마이갓! 요일별로 오는 환자, 진료 순서가 비슷하다보면 외래에서 대기하는 동안 서로 인사도 나누고 친해지기 쉽다. 형편이 비슷하니 더 말이 잘 통하는 것 같다. 전이..

소원트리

매년 이맘때면 세브란스 병원 본관에는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된다. 매년 세브란스 병원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주 멋있다. 보통 트리보다 훨씬 큰 나무에 각종 반빡이 장식과 램프들로 멋지게 장식이 되어 크리스마스라고 뭐 특별한 날인가 싶게 무덤덤한 내 마음에도 잠시 설레임이 지나간다. 아주 밤 늦은 시간, 컴컴한 병원에서 반짝 반짝 불빛을 밝히는 트리를 보면 마음이 아주 따뜻해진다. 그래서 매년 기대하게 된다. 올해 트리는 어떨까? 그런데 올해 트리는 얼핏 보니 좀 초라하다. 폼도 별로 안나고, 장식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램프도 없어 반짝반짝 빛이 나지도 않는다. 가까이 가 보니 예년과는 달리 트리 옆에 '세브란스 소원트리'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트리에 줄맞춰 작은 화분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화..

처방 오류

그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처방오류가 종종 발생합니다. 항암제의 경우 저희 암병원 항암제 약무국에서 오류의 심각도에 따라 처방오류 발생율을 조사하여 6개월이나 1년에 한번씩 종양내과와 간담회를 갖고 처방오류의 실태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오류의 빈도와 종류를 분석하고 오류를 감소시키려는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또 그 노력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도 보여줍니다. 물론 매일 외래에서 제가 항암제를 처방하면 항암제 조제실이나 약무국에서 내 처방의 오류를 미리 점검하고, 뭔가 의심되는 사항이 있을 경우 진료실로 전화하여 처방사항을 직접 확인하여 사고와 오류를 미연에 방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몇 번을 거르고 확인하여 오류를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처방을 낼 때 잘 내야 하는 것일텐데요 처방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