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담글 줄은 알아?
우리 집 김장 한거 한통 챙겨왔어. 한번 맛좀 봐.
우리 언니가 저희 집 김장을 대신 해줬는데요, 우리 언니 김치맛은 우리나라 최고에요.
한번 맛 좀 보세요. 종류별로 조금씩 싸 봤어요.
대개 비닐 봉지나 작은 그릇에 김치를 담아오신다.
손이 큰 어떤 환자는 거의 항아리 크기만한 큰 플라스틱 통 2통에 김장김치를 보내주시기도 한다.
우리 엄마는 환자들이 선물로 준 김치가 모이면 은근 올해 김장을 안할 기세다.
(그러나 엄마도 버티다가 어제 결국 김장을 하고 말았다 ^^)
할머니가 우리 집 김장 해줬어요. 선생님 입맛에 맞을 지 모르겠어요.
간 전이가 의심되어 조직검사를 할려고 입원한 나랑 동갑내기 환자,
어제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도 아직 안 나왔는데 당일 퇴원하면서 김치를 한통을 주고 간다.
김치가 꽉 찼는지 아주 무겁다.
일산 사는 할머니가 멀리 일산서부터 신촌까지 버스를 타고 이 김치통을 들고 오셨을 모습이 상상이 된다. 젊은 내가 들기에도 꽤 무거워서 여러 번 손을 바꿔서 들어야 할 정도다. 할머니는 얼마나 힘들게 이 김치통을 들고 오셨을까...
그녀의 병이 나빠졌을 가능성이 있어서
외래에서 간조직 검사를 설명하는 내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마음이 무거워지면 환자에게 설명을 별로 많이 안한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내 스타일이 그렇다.
나랑 동갑인 그녀.
내가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했다.
처음 진단당시 그녀와 함께 그녀의 가족사항이나 형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부터 그녀와 마음이 잘 통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오해도 좀 있었다. 그녀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그녀와 나와의 인연은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이제 서로를 잘 이해하는 관계가 되었다.
사실 그녀가 나를 더 잘 챙겨준다.
매번 나 먹을 거 같다주고 밑반찬도 만들어다 준다.
참기름도 짜다주고
깻잎 짱아찌도 만들어다 준다.
오늘 막 낳은 달걀이라며 닭이 낳자 마자 싸온듯한 따듯한 달걀 꾸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
내가 그걸 얻어먹을 염치가 있나 싶지만, 선물도 받다 보니 습관이 된다.
그녀는 조직검사를 하자 마자 김치 한통을 주고는 바로 퇴원해 버렸다.
왜냐하면 아직 그녀의 두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병을 진단받고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자꾸 직장을 쉴 수가 없다. 컨디션이 않좋아도 꿋꿋하게 직장에 나간다.
눈치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실재 돈을 벌기도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비정규직이라 그녀가 하는 일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녀는 그런 거 안 가리고 굳세게 일하고 살림하고 치료받고 있다.
오늘 아침은 그녀가 선물로 준 김장 김치로 밥 한그릇을 순식간에 다 비우고 병원에 왔다.
오전 외래를 다 봤는데도 배가 안 고프다.
환자들 삶의 한결 한결에 내가 엮여가다보니
내가 의사라기 보다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녀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
나도 그녀에게 좋은 선물을 주는 친구가 되고 싶다.
미란씨, 화이팅!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전이성유방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삶도... (1) | 2012.11.23 |
---|---|
할머니의 이중잣대 (5) | 2012.11.21 |
임상연구의 중간결과 발표 (7) | 2012.11.20 |
좀 야한 얘기면 어때요? (1) | 2012.11.19 |
드레싱 도사가 된 할아버지 (2) | 2012.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