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내 두발로 걷기

슬기엄마 2012. 11. 27. 18:22

 

 

오늘은 종일 외래인데

생각보다 일찍 외래가 끝났습니다.

오랫만에 연대 구내서점에 가 봤습니다. 한동안 서점에 못 갔는데 오늘 가보니 새로운 책들이 눈에 띄네요.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지인들에게 줄 책 선물을 골라봅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산 다음

후딱 읽고 새 책인양 깨끗하게 선물하려는 전략입니다.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장에서 기부금 마련을 위해 판매하는 카드를 샀습니다.

 

신간 코너에 눈에 띄는 책 한권

4285km를 걸었다는 이야기인가보다 싶어 책 날개를 펼쳐보지도 않고

이 책을 샀습니다.

 

나를 부르는 숲 (A walk in the woods),

미국의 동부 아팔라치안 산길 3,360km 을 걷는 이야기에 관한 책입니다.

올 초에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이렇게 긴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3000km가 넘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다소 무모하고 과격해보여서

제가 수정한 전략은 800km 산티아고 순례길이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알려지고 그래서 꽤 인기있는 여행코스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유행이면 어떤가요? 

전 꼭 한번 가볼 생각입니다.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나서 쓴 여행기 3권을 읽었습니다.

산티아고 길이 펼쳐지는 영화 The way 도 봤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꼭 가볼려고 준비중입니다.

안산걷기에 부지런을 떠는 것도 더 오래 걸을 수 있는 내 체력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더 긴 길, 4285km 라니, 무조건 읽어야겠다 싶어 덥석 샀습니다.

책 표지의 등산화 사진도 매력적입니다.

닳아진 가죽의 결,

발 모양에 맞춰서 모양이 변형된 등산화,

적당히 풀어헤쳐진 끈,

이 황토색 등산화 한짝만 보아도 내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책 날개와 프롤로그를 보니

지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습니다.

책 내용에서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읽지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과 희망을 걸고

외로움과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이야기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홀로 길을 걷는 사람들 누구나가 그렇습니다.

마음에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떠난 길.

그 길을 다 걷고 나면 빛과 영광과 행복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예전에 제가 마라톤을 뛰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뛰고 있는걸까?

지금이라도 그만 뛰면 안될까?

언제 멈출까?

다시는 뛰지 말아야지

그렇게 세번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고관절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걷습니다.

 

인생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길을

자신의 두 발로 걸어가는 과정입니다.

꼭 어떤 방식으로 걸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걷는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돈 많으면 택시 타고 후딱 목적지까지 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돈이 없는 나는

그냥 걷습니다.

 

힘든 길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걸어가려 합니다.

그래서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심정을 훔쳐보려고

이 책을 사고 싶었나 봅니다.

 

 

PS>

 

글을 써 놓고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걸었던 길은 미국 서부지역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the Pacific Crest trail 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표지사진의 등산화 한짝은,

그녀가 산길을 걷다가 쉬면서 벗어놓은 등산화 한짝이 굴러떨어져 찾을 수 없게 되자

쓸모없는 나머지 등산화 한짝을 멀러 던져버리고 맨발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모티브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글을 쓴 그녀는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는 말로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