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환자를 안 보니 글이 안 써지네요

슬기엄마 2012. 12. 10. 07:21

 

지난주에 미국에서 열린 유방암 학회를 다녀왔는데

처음 의욕같아서는

매일매일 학회에서 공부하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는 게 목표였어요.

학회에서 발표되는 모든 내용을 섭렵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이해한 만큼

조금 어려운 내용이더라도 앞으로 장차 내가 공부할 주제들을 챙겨보면서

차곡차곡 정리하려고 했었죠.

실재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연구 성과들이 이론적인 측면을 넘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글로 정리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환자를 안 보니까

글이 잘 안써지네요.

마음에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쌓이지 않아요.

 

원래 제가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수돗물을 튼 것처럼 쏴 하고 마음에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넘칠 때 글을 쓰는데,

환자를 안 보고 공부하니까, 마음도 무덤덤해지고, 별로 하고 싶은 얘기도 없고, 그냥 멍하게 하루하루가 지나 간 것 같아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생명의 에너지가 있죠.

제가 환자들을 진료하며 환자들 삶의 에너지를 받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는거라고 생각해요.

책상앞에 앉아서 지내는 생활로는 글을 쓰기가 어렵더군요. 

오늘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입원 및 외래 환자 상태를 점검해보았습니다.

오늘 외래에는 CT를 찍고 오신 분들이 많아서 사진 볼 환자들이 많군요.

지난주에 미리 사진을 찍고 가신 분들, 사진을 찍고 나서 저를 보는 오늘 그 순간까지 얼마나 가슴이 두근두근 하실까, 제 마음이 송구스럽습니다.

 

환자 이름만 봐도

사진만 봐도

가슴이 아련해지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제가 의사라는 걸 깨닫습니다.

 

지난주에 일간지에 블로그 기사가 나간 후로 방문객이 일시적으로 많아지는 듯 했지만

제가 글을 열심히 안 올리니

매일 오시는 분들만 방문오시는 것 같습니다. (고정방문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기사에 소개된 것처럼

제가 그렇게 환자를 엄청 사랑하는 그런 의사가 아닌거 다 아실거에요.

그냥 이건 저의 진료일기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매일을 기록하는 것이죠.

그리고 제 글을 읽고 일말의 도움이 되는 분들이 있고

질문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는 분들이 있으니 좋을 따름입니다.

전 명의나 훌륭한 의사가 전혀 아닙니다.

다만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하나죠.

우리 누구나가 좀더 잘 살아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이제 학회가 끝나고

많이 충전해서 돌아왔으니

좋은 마음으로 한주일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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