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원에서는 입원과 퇴원의 원칙이 있습니다.
국제적인 평가기준에서도 질환별로 재원일수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폐렴으로 입원한 환자의 재원일수는 7일을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7일 이내에 폐렴의 급성치료를 하고 급성기를 넘기면 먹는 항생제와 기타 보조 약제를 가지고 퇴원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노력이 전체적인 보건의료비용을 줄이고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 무리하게 퇴원을 강행하면 안되지만, 일정 정도의 기준에 맞추어 재원일수를 단축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높은 의료서비스 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병원 이용 비용이 저렴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같은 상병명으로 비교하면 입원일수가 긴 편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입원해서 검사를 하면 실비를 제공한다는 민간 보험마저 등장하여, 검사 때문에 입원을 하게 해달라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환자 개인의 입장만 생각하면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것은 진료의 원칙과 정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유방암의 경우에 수술 후 당일 퇴원하는 것으로 추세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미국은 병원 입원 비용이 비싸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기본적인 원칙은 꼭 필요한 조치만 병원에서 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시스템이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 미국 의료시스템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다인실 병실 이용료가 매우 쌉니다. 특히 암환자는 전체 진료비용의 5%만을 환자가 부담하게 되므로 퇴원할 때 본인이 내고 나가는 비용이 매우 저렴한 편에 속합니다. 평소에 매달 내는 의료보험료도 비싼 편이 아닙니다. 다만 비보험 항목이 발생하면 의료비는 급격하게 증가하게 됩니다.
주기적인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가 항암치료를 하고 3박 4일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 내는 돈은 십만원에서 이십만원 사이입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조금 더 입원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컨디션이 않좋다, 집에 가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 밥 챙겨먹기 힘든데 병원에 있으면 밥도 나오고 간호사들이 돌봐주고 훨씬 편하다, 그런 이유로 입원을 좀 더 연장하고 싶어 합니다. 딱 잘라 퇴원하시라고 말씀드리고 나오는 제 마음에도 찬바람이 붑니다.
방사선치료를 받으로 왔다갔다 하는게 힘드니 입원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저는 가능하면 외래 치료를 권유합니다.
항시 몸이 편치 않은 암환자의 입장에서는 섭섭하겠지만
그것이 저의 진료 원칙입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퇴원을 결정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있습니다.
대학병원처럼 큰 기관이 아니면 진료 방침을 결정하거나 치료를 하기가 어려운 환자들은 재원일수가 길어지더라도 입원을 유지하게 됩니다.
만약 환자의 상태가 굳이 대학병원이 아닌 곳에서 조치가 가능하다면 2차 의료기관이나 요양병원에서 추가적인 입원치료를 받도록 전원을 해야 합니다.
그런 진료원칙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 환자 중에는 장기입원 환자들이 꽤 있습니다.
매일 아침 회진을 돌면서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검사를 하고 환자의 상태 변화 과정에 대해 경과를 관찰하고 의학적으로 제가 생각할 것은 많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환자입장에서는 특별히 상태 호전을 느끼지 못하니 답답하고 불만도 많습니다. 아침 회진 때 환자와 나누는 대화가 비슷합니다. 하루 종일 주치의의 방문을 기다리는 환자 입장에서는 섭섭하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병원생활이 힘들고 병의 호전도 없는 듯 하여 마음도 답답합니다.
저 나름으로는 병의 경과에 대해 설명을 한다고 했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이해도 어렵습니다.
날씨가 포근해진 주말,
연대 캠퍼스로 산책을 다녀오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오랜 병원 생활로 지친 환자들을 보니
저도 마음이 않 좋습니다.
병이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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