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조직검사에 대한 단상

새해 벽두부터 Impact factor가 높은 빅 저널 JAMA 와 종양학에서 손꼽히는 JCO 에 다소 논쟁적인 두 편의 논문이 실렸다. JAMA 1월호 에서는 2000년 human genome project 의 성공에 어 10년도 채 되지 않아 cancer genome project 시대가 열렸고, 이제 암 유전자를 sequencing 하는 시대에 암 조직을 다루는 방법이 얼마나 표준화되고, 잘 다루어져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한 단락의 소제목은 Frozen tissue: the jewel in the Crown for cancer genomics. 수술 중 혹은 조직 검사에서 얻는 조직을, 조직이 나오자마자 수초 안에 영하 70도로 얼려서 얻게 되는 신선 조직 (동결조직, fro..

고단한 엄마를 도와주세요

그녀는 십년도 더 전에 최초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았으며 그로부터도 이미 수년이 흘렀다. 항암제, 항호르몬제, 방사선치료, 이 치료 저 치료를 돌아가면서 했다. 치료하면 좋아지고, 또 시간이 지나가면 나빠지기를 반복. 암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적용하게 되는 대부분의 치료 방법을 시도해 본 것 같다. 그녀의 CT 사진을 보면 '헉' 깜짝 놀란다. 이렇게 여기 저기 병이 있다니, 몸이 괜찮나? 통증은 심하지 않으신가? 걸음은 제대로 걸으시나? 그러나 깔끔하게 화장하고 가발쓰고 단정하게 가꾸어 옷 입고 외래에 오신 모습을 보면 더 놀란다.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이란 말인가? 겉으로 보기엔 너무 멀쩡하다. 어디 불편한 곳 없으세요? 아이고, ..

정기 검사를 한다는 것

검사를 한다는 것 상피내암 (유방암 0기) 재발 거의 안함 (이론적으로는 안하게 되어 있으나 실재로는 재발을 함. 확률은 매우 낮음). 수술 후 5년째까지 6개월에 한번씩 검사. 0기지만 유방수술은 대부분 전절제술을 함. 0기인데 전절제술을 하니 환자들이 깜짝 놀람.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면 항호르몬제 5년간 복용. 0기에서는 HER2 양성이라도 허셉틴을 쓰지 않음 조기 유방암 병기(1,2,3기)와 유형(호르몬 양성, HER2 양성, 삼중음성) 에 따라 재발율과 예후가 다름. 경우에 따라 3개월, 대개는 6개월에 한번씩 검사, 5년 지나도 10년까지 1년에 한번씩 검사.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호르몬 양성 그룹은 10년 지나도 재발할 수 있음. 삼중음성그룹은 치료 후 2-3년이 지나면 거의 재발하지 안음. ..

연말연시 뜻깊은 메일과 문자

이메일이나 문자가 정성이 좀 부족한 듯 해도 전 이게 어디냐 싶어요. 손편지, 카드를 일일히 챙기지 못하는 저로서는 이렇게 한해의 마지막 날, 허겁지겁 불끄듯 메일과 문자로 인사를 전합니다. 초치기 새해인사에요. 제가 유명인사가 아니니 일괄적인 안부인사를 돌릴 건 없구요. 그냥 내 마음 가는데로 인사하면 됩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소원해져서 좀 썰렁해진 사람에게도, 늘 보는 사람에게도, 본 지 한참 된 사람에게도, 불현듯 문자와 카톡과 메일을 보내봅니다. 오늘 종양내과 보험심사과 담당 선생님의 메일을 받았어요. 우린 매일 항암제 보험삭감 관련하여 매일 전화를 주고 받고 업무상 메일을 보내며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입니다. 오늘 제가 먼저 메일을 보냈지요. 한해 동안 감사했다고. 선생님 덕에 빵꾸 안내..

남자 환자라서 그랬을까요?

CT를 찍은 후 외과, 내과 의사가 보고 다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장염 증상이 호전이 없다. 배가 아파서 소화기내과 교수 진료를 보려니 외래 예약이 밀려있다고 한다. 강사 일반 진료를 보았다. 갈 때마다 강사가 달라진다. 별 차도가 없어서 발걸음을 한의원으로 돌렸다. 한의원에 2달 정도 다니며 한약을 먹었다. 별 호전이 없다. 날로 증상이 악화되는 것 같다. 참다 참다 다시 우리병원에 오셨다. 그리고 재발이 진단되어 종양내과로 전과되었다. 3개월전 찍은 CT에서 큰 이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3개월 간격으로 다시 사진을 찍었지만 큰 변화가 없어서 다시 6개월 간격으로 검사기간을 늘린 참이었다. 되돌이켜 보면 환자의 장염 증상은 재발을 시사하는 소견이었나보다. 한참을 고생하..

2013 토정비결

일요일 아침 뒹굴뒹굴 스마트폰에서 토정비결 앱을 다운받아 올해 운수를 보았습니다. 저 사실 토정비결 믿습니다. ㅎㅎ 2012년도 봤었어요. 진짜 않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뭐 이런 사주가 다 있나. 7월에 좋다고 하더군요. 그때 빼면 다 별루 였어요. 한 해를 지나고 보니 7월에 제가 박사학위를 받았죠. 좋았어요. 그리고 그때 빼면 진짜 다 별루 였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올해 토정비결을 보는데 오호라 올해는 '아주 좋군요'. ㅎㅎ 토정비결은 총론과 각론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총론 태평한 잔치에서 군신이 함께 즐기니 그 모습이 아름답고 좋기가 그지 없는 형국입니다. 본래 업은 없으나 횡재를 만나 성공할 운세이니 귀인의 도움보다는 나의 노력이 클 것입니다. 차려진 음식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를 위해 준..

병이 오면 따라오는 것들

병이 오면 병만 생기는게 아니다. 좋은 일이 따라 올 수도 있지만 나쁜 일이 더 자주 따라 오는 것 같다. 평소에 잘 묻어두고 지내던 일인데 , 평소에 그럭저럭 잘 지내던 관계인데 새삼 응어리가 터진다. 새삼 섭섭하고 새삼 원망스럽고 새삼 마음이 안맞는것 같다. 이 환자는 몸이 너무 약했다. 재발 후 처음 만난 환자, 항암제를 쓰기만 하면 너무너무 몸이 아프고 약을 견디지 못하였다. 항암제 효과를 평가하기도 전에 독성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셨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항암치료를 쉬었더니 전신 컨디션은 잠시 좋아지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겨드랑이 림프절이 너무 많이 커져버렸다. 커진 림프절이 팔신경을 누르니, 팔이 저리고 통증이 심하다. 진통제 부작용이 너무 심해 약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통증 역치를 ..

다이어리

오늘 점심시간에는 올해 종양내과 치프 레지던트가 된 녀석과 함께 내년 다이어리를 사러 가기로 했습니다. 이제 막 종양내과를 시작하는 4년차 레지던트입니다. 내가 종양내과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렸건만 - 양가감정- 굳이 하겠다며 종양내과를 결정한 녀석입니다. 2013년에는 일기를 쓰고 싶다고 해서, 내가 좋은 걸로 하나 사주기로 했습니다. 어떤 과를 하든, 어떤 파트를 하든 장단점은 있기 마련, 조금 편하게 살수도 있고 조금 더 힘들게 살수도 있지만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그게 그거일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꾸며 사는 삶이 중요하겠죠. 그래, 네가 하고 싶다고 했으니 잘 감당하고 살아라, 내가 선물이나 하나 사줄께. 그런 심정으로 오늘 다이어리를 사줄려고 합니다. 나도 하나 사볼까?..

서로 맞잡은 손

오늘 우리 병원 호스피스팀의 마지막 팀 미팅이 있었다. 호스피스 팀에서 올 한해를 결산하는 슬라이드를 보여주셨다. 슬라이드 첫장은 서로 맞잡은 손. 이 사진은 우리 호스피스 팀의 서민정 간호사가 직접 찍은 우리 환자와 가족의 사진이다. 얼굴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다들 부담스러워 하시는데에 비해 손 사진은 훨씬 덜 부담스러워 하신다고 한다. 환자와 가족에게 '손 잡아보세요' 하면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손을 잡는다고 한다. 관계맺음의 방식이 마음의 엮임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겠지. (파일로 작게 올려서 지금 보니 그 감동이 덜한데) 큰 화면으로 이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가슴이 울컥 했다. 손가락 마디마디 결 따라 환자와 가족이 짊어지고 간 고생의 결이 느껴진다. 힘들고 지쳐도 우린 가족이니까 두 손..

뇌물 아니고 선물 맞죠?

저 선물 좋아한다고 소문났나봐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선물을 많이 받았어요. 선물 받아서 좋지 않은 사람 어디있나요? 저도 너무 좋았어요. 근데 더 좋은 건, 선물을 주신 환자들의 따뜻한 마음이에요. 가끔씩 때가 되면 향초를 주시는 분, 저 향초 너무 좋아요. 방안에 은은하게 촛불을 켜놓는 것도 좋지만, 그 따뜻한 빛과 함께 은은한 향기가 나는 향초를 태우고 있으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져요. 출출할 때 먹으라고 과자와 쿠키를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해 주시는 분, 아까와서 먹을 수가 없네요. 정성스럽게, 예쁘게 싼 선물에 그 정성이 느껴집니다. 병과 싸우며 지친 몸과 마음 추스리기도 힘들텐데 정성껏 쓴 편지로 내 안부까지 물어주시는 마음, 정말 감사합니다. 본인 먹을 거 챙기면서 항상 제것까지 같이 챙겨주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