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치료를 마친 이들의 후기 합병증

급성기 치료를 마치고 일단 검사를 하면서 경과관찰을 하는 환자들, 혹은 5년간의 추적관찰을 마치고 암환자를 딱지를 떼어버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cancer survivor 라고 한다. 우리 말로 하자면 '암 생존자'인데, 아무리 봐도 별로다. 적당한 개념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블로그에서 제안을 해주신 분도 있었지만 그 또한 아직 내 마음에 꼭 와닿지는 않는다. 죄송해요!) 어떤 정의에 의하면 요즘에는 4기 암환자라 하더라도 예후가 좋고 생존기간이 길기 때문에 이들도 survivor 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환자 뿐만 아니라 가족도 그 멤버로 광범하게 포함시키는게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국림암센터가 주관이 되어 암 생존자를 위한 가이드북을 만드는데 그 집필진의 일원이 되어 치료를 마친 후..

우리의 김자옥씨들

오늘은 항암요법연구회 완화분과의 심포지엄이 있었다. 완화 의료 (palliative care) 는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 수술 등 치료적 목적으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이외에도 암환자의 증상 및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제로 연구하고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문 분야이다. 예를 들면 항암치료를 할 때 항구토제를 어떻게 쓸 것인지, 항암치료 중 호중구감소증이 왔을 때 외래에서 항생제를 처방하는 원칙은 무엇인지, 암성 통증을 보다 잘 조절하기 위해서는 약을 어떻게 쓰고 환자를 교육해야 하는지, 치료 중 정서적 불안이나 우울증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그것을 조절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어떤 치료를 하는 동안 환자 삶의 질은 어떻게 변화하고 보존할 수 있는지, 치료 말기에 이르면 어느 시점..

여행은 좋은 것

유방암 치료 중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몸 상태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환자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저 여행가도 되요? 선생님 저 비행기 타도 되요? 그럼요! 그렇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합격의 요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여행을 가고 싶은 의욕이 있다는 것, 스스로 생각해 봤을 때 여행을 갈만한 체력을 된다고 생각하니까 저에게 물어보시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주 특별한 경우 아니고는 여행을 다녀오시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그리고 차트에 꼭 써 놓죠. 어디어디 여행 다녀오실 예정이라고. 그리고 다음 외래 때 다시 여쭈어 봅니다. 여행 어떠셨냐고.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은 한결같이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너무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가기 전에는 여러 모로 망설여 지는 게 많..

환자가 나를 위로한다

그녀는 현재 한국에 살지 않고 중국에서 살고 있다. 본인이 꼭 중국에서 해야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 항암치료를 받던지 한국에서 항암치료를 받던지 한군데서 하는게 좋겠다고, 힘들어서 어떻게 왔다갔다 하겠냐고 했지만 그녀는 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한국 왔다갔다 돈도 많이 들고 힘도 많이 들텐데, 본인이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치료 스케줄을 운영할 수 밖에 없었다. 아주 똑똑하고 딱부러지는 그녀. 난 그녀의 언변과 이성적인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환자는 난소암으로 항암치료 중이다. 지난번 임상 연구약으로 항암치료 했을 때는 별로 효과가 없었는데, 이번에 약을 바꾼 후 간에서 보이던 작은 종양들이 일단 눈에 안보이게 되었고 종양수치도 정상 범위로 떨어졌다. 항암치료 3-4번..

지금이라도 독감백신 맞을까요?

아침 병동 회진을 돌고 연구실로 들어오는데 전화가 온다. 여기 누구네 집인데 독감 백신 맞아도 되? 다짜고짜 전화를 해서 본인이 누구신지, 그 누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는 질문을 하시니 마음속으로 욱 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여쭙는다. 실례지만 전화하신 분은 누구신지요? 그 누구가 우리 병원 다니는 환자신가요? 저에게 진료받는 분이셔요? 말씀을 들어보니 환자는 60대 후반의 유방암 수술받은 할머니고 나에게 유방암 치료를 받으셨는데 얼마전 치료를 마친 분이다. 전화를 하신 분은 할아버지고 할머니보다 연배가 높으실테니 최소한 60대 후반은 넘긴 연세겠지. 어떻게 내 연구실 전화번호를 알아내셨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연세를 고려해서 욱한 마음을 좀 가라앉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를 걱정한 ..

토론을 하면 할수록

동기들에 비해 나이든 아줌마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굼떠보일까봐 열심히 뛰고 게을러 보일까봐 더 부지런떨고 나이들어서 별로라는 말 들을까봐 더 씩씩하게 일하고 멍청해 보일까 봐 열심히 공부하고. 다 자신있었는데, 열심히 공부해도 그만큼이 다 내 실력이 되는게 아니라는 사실이 제일 실망스러웠다. 아, 똑똑하고 지적으로 보이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어려운 일이었다. 공부해도 모르는게 너무 많았던 것은 머리가 나빠던 탓인지, 나이를 먹어서 자꾸 잊어버리는 건지 잘 구별되지 않았지만 암튼 난 참 모르는게 많았다. 너무 모르는게 많아서 누구에게 질문도 제대로 못했다. 뭔가 질문을 한다는 건, 내가 뭘 모르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난 내가 뭘 모르는지도 잘 몰라서 제대로 질문할 줄도 몰랐다. 그때보..

무사히 시간이 흘러도 기억해야 할 것

사람의 마음은 늘 정지해있지 않고 뭔가의 이벤트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래서 간사하다고 하는걸까? 환자들의 마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변한다. 굳세게 마음먹고 열심히 치료하다가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허약해보여 또 자책한다. 그게 간사한 걸까? 당연한거다. 객관적 사실로 알려진 것들 병기와 예후, 치료법과 그 효과 및 부작용, 그리고 통계적인 생존기간 그런 정보들은 나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크게 의미가 없다. 나는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기필코 좋은 성적은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통계적인 수치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 불안함이 자리잡고 있다. 잊으려고 해도 또아리를 틀고 자리잡고 있다. 언제듯 깨어질 것 같이 여..

삭감 이의신청

내가 약을 쓴 것에 대해 삭감통보가 왔다. 난 열심히 소견서를 썼다. 항암제는 한번 삭감 당하면 액수가 크다. 그 환자의 상태, 주치의로서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다른 약에 비해 이 약이 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참고문헌을 인용하고 그래프도 붙이고, 내 진료의 정당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아니, 의사가 자신의 전문적 지식에 입각해서 판단하고 처방했으면 됬지 이걸 또 증명해서 납득시켜야해? 그런 짜증 따윈 부리지 않는다. 어디 감히 짜증을! 난 늘 열심히 소견서를 쓴다. 삭감 당한거 환불받을려고. 우리 병원은 그 삭감액을 내 월급에서 공제하지는 않는다. 공제하는 병원도 있다. 환자를 위해 처방했다가 내 월급이 삭감당하는 꼴이다. 오늘 보험심사과에서 나의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져서 삭감되었던 돈이 들어..

AYAO (Adolescence and Young Adult Oncology)

AYAO 우린 아야오라는 줄임말로 읽는다. 용어 자체가 좀 낯설다. 굳이 번역하자면, 청소년/청년기 암을 분류하는 용어라고 보면 될것 같다. 특정 암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젊은 연령대의 환자를 중심으로 (NCCN 에서는 15세-40세로 구분하고 있음) 이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종양 질환에 대해 의학적인 면을 포함한 다양한 측면의 지원과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분류된 것이 아닌가 싶다. 15세 이하의 나이에서보다 15세-40세 사이의 연령에서 발생하는 암의 유병율이 8배 이상 높다. 소아암이 어른의 나이에서 발생하듯이, 어른의 종양이 이 시기에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종양의 생물학적 속성은 어른의 그것과 다른다. 어른이든 아이든 같은 진단명이 붙어도 이들 연령대에 발생하는 종양의 생물학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