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처음으로 찍는 사진

6살 난 아이. 태어날 때부터 근육병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고개를 가누고 앉지 못합니다. 근육병에 이은 이차적 합병증으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습니다. 요즘은 일주일에 세번씩 투석을 하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감기 한번만 걸리면 바로 중환자실 행입니다. 두살 위 오빠가 동생을 끔찍히 아낍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동생이 앉을 수 있도록 옆에 앉아 지지대가 되어 줍니다. 30대 중반의 엄마는 너무 많이 지쳐있습니다. 눈물도 말라버린 엄마. 많이 쇠약해진 아이는 언제 하늘나라로 떠날지 모르는 운명입니다. 그것에 대해 엄마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떠나면 엄마는 아이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아이의 사진이 한장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엄마의 마음에 순간 찬바람이 붑니다..

처음 본 환자에게

외래 초진 제가 처음 본 환자인데 그냥 원래 치료받던 곳에서 계속 치료받으세요. 우리병원 오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환자가 가지고 온 진료 기록을 보면 그 의사가 어떤 의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치료 과정을 검토해 보고, 나로서도 다른 이견이 없을 때, 공연히 병원을 옮기는 것은 환자에게 이득이 없으니 자신을 꾸준히 진료한 원래 의사에게 계속 치료받는게 좋다고 권합니다. 환자를 위해 그 사람만큼 오래 고민한 사람 없으니까 그를 믿으라구요. 초진이니까, 그날 외래 진료의 제일 마지막에 순서를 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면담하기가 어려워서 나 스스로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그래서 처음 온 환자를 많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지만 그렇게 하고..

우리 마음의 허약함

잘 지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 그렇습니다.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창회 갔다가 잘 나가는 동기들을 보니 마음이 울적해 진다는 그녀. 내 인생은 뭔가. 스스로 다짐하고 다짐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남과 나를 비교할 필요없다고 생각하며 잘 치료 받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남과 나를 비교하며 실망하는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로 사는 거라고 다짐했건만. 우리는 그렇게 허약합니다. 나는 매번 그녀의 CT를 볼 때마다 마음을 졸였지만 그녀는 씩씩했습니다. 용감하게 잘 치료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간이 병을 못 견디는 것 같습니다. 딸과 함께 온 그녀에게 이제 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짧으면 한달, 길면..

학생들의 힐링페이퍼 2

본과 4학년 선택 특성화 과정으로 '힐링페이퍼'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우리 학교 학생들과 요즘 자주 만나고 있다. 이들의 프로그램은 아직 완성단계가 아니다. 선택특성화과정 담당 지도교수도 아닌 나에게 와서 이것저것 질문하고 요청사항도 많다. 매일 외래가 끝나면 나는 파김치가 되는데 이녀석들은 외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냉큼 진료실에 들어와서 질문하고 나에게 뭔가 도움을 요청하고 그렇다. 좀 귀찮기도 했다. 왜 나한테 그러냐... 나 힘들다... 이들의 힐링페이퍼 프로젝트는 유방암 환자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원래 유방암이 타겟이 아니었던것 같은데 학생들 입장에서 내가 편했던 것일까? 다른 교수님들을 만나 환자들과의 인터뷰를 허락받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나 보다. 매일 내 외래가 진행되는 ..

치과 선생님과의 집담회

오늘 오후에 우리병원 치과선생님이신 박원서 선생님과 조촐한 집담회를 가졌다. 유방암 환자들 중에 뼈전이가 있을 때 pamidronate 나 zolendronic acid 와 같은 약제를 쓰면 골절이나 고칼슘혈증, 전이된 뼈가 나빠져서 방사선치료나 수술을 하게 될 확률 등을 낮출 수 있다는게 이미 교과서적인 원칙이다. 그래서 전이성 유방암이 진단되면 제일 처음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뼈전이가 있냐 없냐를 보고 뼈전이가 있을 경우에는 항암치료를 시작함과 동시에 위의 약제를 병용투여하는 것이 치료 원칙의 1번이라고 각종 가이드라인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전이성 유방암 환자는 질병 경과 중에 궁극적으로 뼈로 전이될 가능성이 약 70% 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 이상의 약제를 쓰게 될 확률이 높다. 특히..

우린 환상의 콤비

나의 외래 진료방 간호사는 내가 한 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내 진료 책상 옆에 자기 책상에 앉아 내가 낸 오더를 확인하며 걸러주고 환자 설명문도 작성하면서 진료 준비를 도와준다. 환자가 나에게 부탁한 사항이 빠짐없이 오더로 나 있는지 잘 체크해준다. 그렇게 자기 자리에 앉아 일하나 싶으면 어느새 바깥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을 호명하고 진료를 마치고 나간 환자를 따라 나가 검사와 처방 관련 설명을 한다. 그 와중에 전화로 환자 검사 일정도 잡아주고 검사가 급한 환자를 위해 직접 전화를 걸어 푸쉬도 해준다. 환자를 내 가족같이! 그 말이 딱 맞는 사람이다. 내가 환자 한명을 보는 동안 몇번을 왔다갔다 하는지 모른다. 병이 나빠져서 내 설명이 길어지거나 환자가 여기 저기 불편한 증상이 많아서 진료시..

From the voice of the Patients

머리아프다고 하면 brain CT나 Brain MRI를 배아프다고 하면 abdominal-pelvic CT를 숨차다고 하면 chest CT를 찍어버리면 속이 편하다. 구조적인 이상이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또 믿음직스러운 영상의학과의 판독을 빌어 내 판단의 근거까지 마련할 수 있으니까 좋다. (이쯤 되면 이런 기준으로 영상 검사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하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인정. 그러면 안된다는 거 안다는 뜻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검사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진만으로는 구조적인 이상을 알 수는 있지만 기능적인 이상은 알 수 없다. 뭐 그런 한계가 있다하더라도 부지런히 영상 검사를 해 버리면 큰 실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진료패턴을 왜곡시키..

환자로부터 쏠쏠한 재미

지난주 보다 안색 좋아보여요. 좋은 일 있으셨어요? 네, 좋은 일 있었어요. 그래요? 무슨 일요? 성모 꽃마을 다녀왔어요. 거기 좋다는 분들 많으시더라구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어떤 점이 좋은지 궁금해요. 뭘 하면 환자들이 좋아하고 도움을 얻는지 한번 보고 싶어요. 그러세요. 매달 세째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치유미사가 있어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니까 선생님도 한번 와보세요. 그럼 우리 1월 24일날 저녁에 성모 꽃마을에서 만날까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환자는 신이 나서 이것 저것 설명을 많이 해주신다. 가는 방법까지 알려주신다. 자기는 어떤 면에서 좋았는지도 말씀해 주신다.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전이성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고 첫 치료 후 나빠져서 지금 두번째 약제로 ..

흔적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도 나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때로는 영원할 수도 있고 때로는 흐려질 수도 있다. 흐려져도 내 마음에 남는다. 나의 지난 2년간 내 삶에 가장 큰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우리 환자들이다. 매일 밤 EMR을 들여다보면서 이전 치료 기록을 확인하고 그들의 CT를 보면서 했던 고민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환자를 만나 설명하고 병이 좋아지면 같이 기뻐하고 병이 나빠지면 같이 침울해 했던 그 모든 시간이 나에게 흔적으로 남아있다. 열심히 치료받았지만, 그만큼 내가 고민을 많이 했지만 돌아가신 분도 많다. 그렇게 노력했건만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들을 위해 내가 했던 고민이나 내가 투자했던 시간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내가 의사로 존재하는 한 그러..

림프 부종 관리 잘 하세요

유방암 환자들은 유방 수술을 할 때 대개 겨드랑이 림프절을 제거하는 수술을 동시에 합니다. 유방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제일 먼저 전이되는 곳이 겨드랑이 림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유방도 제거하고 겨드랑이 림프절도 왕창 제거하는 수술을 하게 됩니다. 병의 입장에서 보면 림프절을 싹싹 긁어내서 몽땅 제거하는 것이 완치를 위해서 좋은 것처럼 생각되지만 삶의 질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겨드랑이 림프절을 많이 제거하고 나면 정상적인 림프액 순환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 후에도 팔이 붓고 혈액 순환이 안되는 림프 부종이 생깁니다. 또 겨드랑이 림프절 제거 후 그곳에 방사선 치료를 더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료적 면에서는 방사선치료가 도움이 되지만 부작용의 위험을 올리는 것도 사실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