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도 나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때로는 영원할 수도 있고 때로는 흐려질 수도 있다. 흐려져도 내 마음에 남는다.
나의 지난 2년간
내 삶에 가장 큰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우리 환자들이다.
매일 밤 EMR을 들여다보면서
이전 치료 기록을 확인하고 그들의 CT를 보면서 했던 고민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환자를 만나 설명하고
병이 좋아지면 같이 기뻐하고
병이 나빠지면 같이 침울해 했던 그 모든 시간이 나에게 흔적으로 남아있다.
열심히 치료받았지만, 그만큼 내가 고민을 많이 했지만 돌아가신 분도 많다.
그렇게 노력했건만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들을 위해 내가 했던 고민이나 내가 투자했던 시간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내가 의사로 존재하는 한 그러한 고민과 노력이 바로 내 존재의 의미니까.
예전에 쓰다 만 논문 때문에
차트 리뷰를 다시 한다.
1년전에 정리했던 250명 정도의 데이터인데
그 1년 동안 누가 재발했는지 EMR을 열어보지 않고 환자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내 마음에 더 깊이 남아있으니까.
그들의 아픔을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나는 재발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병이 악화되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나도 힘들었으니까, 그렇게 고민한 만큼 그들은 나에게 깊이 남아있다. 그들의 흔적은 훨씬 깊다.
그들에게도 내가 흔적으로 남아있겠지.
내가 좋은 기억만 주지는 않았을텐데,
나의 무성의한 언행으로 상처받고 서운했을텐데,
내가 이것밖에 안되서 큰 일이다.
그런 삶의 흔적들을 생각하니
슬프다.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가
좋은 기억과 흔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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