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래 진료방 간호사는
내가 한 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내 진료 책상 옆에 자기 책상에 앉아
내가 낸 오더를 확인하며 걸러주고 환자 설명문도 작성하면서 진료 준비를 도와준다.
환자가 나에게 부탁한 사항이 빠짐없이 오더로 나 있는지 잘 체크해준다.
그렇게 자기 자리에 앉아 일하나 싶으면
어느새 바깥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을 호명하고
진료를 마치고 나간 환자를 따라 나가
검사와 처방 관련 설명을 한다.
그 와중에 전화로 환자 검사 일정도 잡아주고
검사가 급한 환자를 위해
직접 전화를 걸어 푸쉬도 해준다.
환자를 내 가족같이! 그 말이 딱 맞는 사람이다.
내가 환자 한명을 보는 동안 몇번을 왔다갔다 하는지 모른다.
병이 나빠져서 내 설명이 길어지거나
환자가 여기 저기 불편한 증상이 많아서 진료시간이 길어지면
자기 책상에 앉아
같이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환자가 힘들다고 하면
왜 힘들지? 별로 그럴 일이 없는데? 이 증상이 뭘 의미하는 거지? 검사를 해야 하나? 약을 바꿔야 하나? 협진을 봐야 하나? 오늘 **과 협진은 어떤 선생님에게 의뢰하지? 이 환자 집이 어디더라? 다음주에 다시 보자고 할까? 병원에 왔다갔다 할 컨디션은 되시려나?
그런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환자가 울면
약 때문에 우울증이 왔나? 그동안 잘 견디셨는데 오늘은 왜 이러시나? 무슨 일이 있으셨나? 오늘 치료 해야하나? 좀 쉴까?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그러는 동안
우리 간호사 옆모습을 훔쳐보면
환자가 힘들다고 할 때 같이 힘들고 안타까운 얼굴이 된다.
환자가 울면 이미 우리 간호사도 같이 울고 있는 것 같다. 어깨가 들썩인다.
진료실 안에서는 별 말이 없던 환자가
진료실 밖으로 나가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다 막아준다.
처방이 잘못되서 처방전을 두번 뽑게 되는 건 내 잘못인데 간호사에게 화를 낸다.
의사가 잘못한 것을 간호사가 막아준다.
내가 미안해 하면, 우리는 팀이잖아요. 같이 책임져야죠. 그렇게 쿨 하게 말한다.
나보다 훨씬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마음도 보듬어 주고 그렇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의료(medicine)와는 독립적인
간호(nursing)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환자의 몸과 마음을 세세하게 보살피는 일,
환자가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나가도록 지지하고 도와주는 일,
그래서 힘든 검사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일정을 잘 챙기고 환자를 격려하는 일...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내가 빵꾸내는 일을 그녀가 다 막아준다.
내가 아무리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제대로 된 의료행위로 발현되는 순간까지
너무나 많은 장애물이 있고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다 할 수 없는 일이다.
합리적이고 좋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지난 2년간 같이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며
나에게 최고의 서포터가 되어 준 그녀.
그런 동료와 함께
난 오늘도 외래진료를 시작한다.
그녀는
내가 없던 힘도 쥐어짜서 일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다.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마음의 허약함 (2) | 2013.01.10 |
---|---|
학생들의 힐링페이퍼 2 (2) | 2013.01.09 |
From the voice of the Patients (0) | 2013.01.08 |
흔적 (2) | 2013.01.06 |
조직검사에 대한 단상 (2) | 2013.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