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학생들의 힐링페이퍼 2

슬기엄마 2013. 1. 9. 22:34

 

본과 4학년 선택 특성화 과정으로

'힐링페이퍼'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는 우리 학교 학생들과 요즘 자주 만나고 있다.

 

이들의 프로그램은 아직 완성단계가 아니다.

선택특성화과정 담당 지도교수도 아닌 나에게 와서 이것저것 질문하고 요청사항도 많다.

매일 외래가 끝나면 나는 파김치가 되는데

이녀석들은 외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냉큼 진료실에 들어와서 질문하고 나에게 뭔가 도움을 요청하고 그렇다.

좀 귀찮기도 했다. 왜 나한테 그러냐... 나 힘들다...

 

이들의 힐링페이퍼 프로젝트는 유방암 환자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원래 유방암이 타겟이 아니었던것 같은데

학생들 입장에서 내가 편했던 것일까?

다른 교수님들을 만나 환자들과의 인터뷰를 허락받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나 보다.

 

매일 내 외래가 진행되는 동안

외래 대기중인 환자들에게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설명하며

치료받는 과정의 어려움, 자신만의 해결 노하우 그런 정보를 공유해 주십사 환자들에게 요청하고 있다.

 

환자들은 의사로부터 도움을 얻기도 하지만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다른 환자들로부터 훨씬 친밀감을 느끼고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고 판단하여 외래에서 대기중인 환자들을 인터뷰하여 환자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이 환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 교육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외래대기실 인터뷰를 허락하였다.

 

학생들은

아이패드와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대기시간 동안 직접 환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작성하게 하거나

같이 온 보호자 혹은 학생들이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환자의 이름으로 치유일기를 써서 자신들이 만든 힐링페이퍼 싸이트에 올리고 있다.

 

그동안 그러려니 했다.

 

오늘 학생들이 힐링페이퍼에 한번 접속해 들어와달라고 요청한다.

지난 번에 한번 들어가봤더니 썰렁해서 몇가지 코멘트를 했었다.

얼마나 프로그램이 좋아졌는지 들어가보기로 했다.

 

healingpaper.com (링크 못 걸었습니다 ㅎㅎ)

 

첫 화면에 우리 환자들 사진이 있다.

환자 한명당 치유일기란이 할당되어 있다.

나는 누구인데 요즘 무슨 치료를 받고 있다,

뭐가 힘들지만 어떻게 하니까 좋았다,

재발을 진단받고 너무 절망하고 슬퍼했지만, 지금은 웃으며 치료받으러 다닌다...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했는지

당신 얼굴 사진을 찍고 일기를 써주신 분들이 꽤 많다.

최근에 내가 외래에서 만난 모습들이다.

 

그들이 직접 쓴 이야기를 보고 있으려니 코끝이 싸하다.

 

나한테는 그런 얘기 안하시는 분이었는데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셨구나

울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씩씩하게 마음 먹으셨구나

 

처음 진단된 유방암으로 엊그제 항암치료를 한번 받으신 분은

선생님이 나를 한번만 안아줬으면 좋겠다, 마음을 의지하고 싶다 그런 마음도 밝히셨다.

 

먼저 치료받고 씩씩하게 이겨내는 '선배' 환자들의 모습을 읽고

다른 환자들의 댓글이 달려있다.

 

나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용기와 희망을 주셔서 고마워요

 

잘 치료받고 잘 살고 있는 다른 환자의 한마디에

환자들은 훨씬 큰 격려와 용기를 얻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의사인 나도 해주지 못하고

가족도 해주지 못하는

환자들만이 서로간에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학생들아, 프로그램 빨리 완성해라. 우리가 힐링 그룹이 되어줄께.

학생들의 노력에 도움을 주신 여러 환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우리 환자들이 도와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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