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를 찍은 후
외과, 내과 의사가 보고 다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장염 증상이 호전이 없다.
배가 아파서 소화기내과 교수 진료를 보려니 외래 예약이 밀려있다고 한다.
강사 일반 진료를 보았다. 갈 때마다 강사가 달라진다.
별 차도가 없어서 발걸음을 한의원으로 돌렸다. 한의원에 2달 정도 다니며 한약을 먹었다.
별 호전이 없다. 날로 증상이 악화되는 것 같다.
참다 참다 다시 우리병원에 오셨다.
그리고 재발이 진단되어 종양내과로 전과되었다.
3개월전 찍은 CT에서 큰 이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3개월 간격으로 다시 사진을 찍었지만 큰 변화가 없어서 다시 6개월 간격으로 검사기간을 늘린 참이었다.
되돌이켜 보면
환자의 장염 증상은 재발을 시사하는 소견이었나보다.
한참을 고생하다가 나를 만나게 되었다.
남자 환자라서 그랬을까?
검사결과가 괜찮다는 의사에게 자꾸 아프다는 말을 하는게 좀 계면쩍어서 그랬을까?
내가 처음부터 진료한 환자가 아니라, 환자의 캐릭터를 잘 모르겠다. 내가 이 환자를 만난건 위암 치료가 다 끝나고 6개월 간격으로 검사만 하면 되는 기간이었다. 검사결과 좋으면 굿. 진료시간도 짧다. 환자도 별로 할 말 없다. 그러던차에 재발이 되었다.
환자는 이미 많이 지쳐있고 화도 많이 나있다.
그럴법하다.
많이 고생하고 오셨네요.
그럼요.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건가요?
CT 찍어보고 다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CT에서 재발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의심이 되는 부위가 있기는 했어요. 그래서 3개월 간격으로 다시 한번 찍어보자고 한거구요. 계속 사진을 찍어봐도 변화가 없어서 검사간격을 6개월로 늘렸죠.
그럼 검사를 안하더라도 병원에 오라고 해서 상태를 점검해 보는게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
재발은 운명이라고 치자구요. 환자가 배가 아픈데 그거 하나 조절을 못해줘서 제가 몇개월동안 고생을 했어요. 병원에 와도 해결 안되고, 오죽하면 한의원에 갔겠어요. 몸무게가 너무 많이 빠져서 이제 기운이 너무 없어요.
...
...
...
한동안 대화가 오갔다.
100% 까지는 아니어도 환자의 답답하고 절망적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경우가 없는 분은 아니었다.
예민한 것도 아니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의료시스템의 헛점이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비단 우리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는 주치의와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 환자는 다른 선생님께 항암치료를 받았고 그 선생님이 병원을 그만 두시게 되면서 주치의가 나로 바뀌었다. 나랑은 3-6개월에 한번씩 검사 결과 확인하러 오셨다. 큰 문제가 없으니 진료한 내용도 별로 없다. 그래서 서로간에 라뽀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주로 유방암 환자를 보며 여자환자들에게 익숙해져 있다보니 남자 환자들에게는 잘 못하는 것도 같다. 나와 몇번의 진료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여자들만 있는 유방암 클리닉으로 날 찾아오기가 좀 그랬다고 한다.
일반 진료의 한계도 느껴진다. 강사진료의 한계 - 주치의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고, 솔직히 미숙함도 있다. 나도 강사진료를 하면서 나의 한계와 진료의 어려움,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나의 부족함에 대한 부끄러움 이런 것들을 동시에 느겼다-, 넘쳐나는 환자들을 진료하는데 효율적인 시스템은 아니다. 강사진료는 면피용인 경우가 많다.
나의 잘못도 있다. 검사 결과 상 의심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괜찮다고 말했다. 설명을 하면 환자들이 너무 걱정을 하기 때문에 안 한 측면도 있다. 나도 계획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과관찰 할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 내용을 다 환자에게 설명하지 않았었다.
그때
"증상이 좀 더 안 좋아지면 병원 오세요"
이렇게 한마디만 했으면
환자가 부담을 덜 느끼고 진료실을 찾았을 텐데
담당의사가 괜찮다고 말 했으니 암과는 관계가 없을 거라고 믿고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헤맨 환자에게 미안하다.
여자 환자들은 자기 자신의 상태를 나에게 잘 털어놓는다. 조금만 이상해도 찾아와서 상의한다. 나는 의사로서 뛰어난 혜안이 있지 않아도 환자가 하는 말만 귀기울여 잘 들으면 환자의 문제를 찾아내고 명의도 될 수 있다. 환자는 자기 말을 잘 들어주니 좋아하고, 나는 환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진료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으니 좋고, 1석 2조다.
상대적으로 남자 환자 진료 비중이 덜해서 그러는 건지,
남자 환자들과는 관계맺음의 방식에 차이가 있고, 내가 남자 환자들의 특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차라리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는 괜찮은데, 젊은 남자들과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환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진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했는데, 환자가 불편하면 날 찾아오겠지 그런 게으르고 무성의한 생각을 한 것 같다.
환자는 내 설명을 듣고 많은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그동안 상한 몸과 마음이 다 보상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얼른 항암치료를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환자는 아직 그럴 기운이 없다고 한다.
가만히 기다린다고 해서 그 기운이 날 것 같지 않다.
자꾸 복수가 생기고 그걸 뽑으니 기운이 점점 더 없어진다. 빨리 암세포를 좀 걷어내야 하는데....
환자가 아직 자신이 없다는 말을 하며 고개를 푹 숙인다.
50대 초반 가장의 고뇌가 느껴진다.
의사는
평생
환자로부터 배우는 사람인가보다.
나는 이 환자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그 대신 환자에게는 '재발'이라는 무거운 짐을 이겨낼 힘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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