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동기모임

슬기엄마 2012. 12. 25. 20:13

 

저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 우리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로 일했습니다.

내일은 그때 같이 일한 내과 레지던트 동기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저랑 같이 일한 내과 동기들은 대개 저보다 7-8년씩 나이가 어립니다. 제가 사회학과 대학원을 다니고 나서 편입으로 의대 입학을 한 탓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처음 의대에 편입하여 본과 의대수업을 받던 시절,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동기들과 지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청춘남녀인 동기들과는 달리

난 이미 결혼한 아줌마고 애도 낳았고 학문적 배경도 달랐습니다.

단순 나이만으로도 세대차이가 날 법한테,

살아온 경험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다보니

쉽게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젊은 만큼 체력도 좋은 그들,

몇일씩 밤을 새고도 시험이 끝나면 쌍쌍으로 그룹으로 놀러다니고 즐겁게 한 때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슬기와 함께 유치원 학부형으로 유치원 체육대회가고 집안 일도 챙기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주말을 보내고 온 월요일 아침,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내가 보낸 주말의 상황과 달라 격세지감을 느쎴습니다. ㅠㅠ

그래서 사실 4년간의 본과 시절, 동기들과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놀았다고는 하지만 예과때부터 자연과학쪽의 수업을 듣고 과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하도록 트레이닝 받은 그들과는 달리, 나는 대학원에서 익숙해진 사회학적 사고구조 때문에 의대공부방식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의대시험은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 암기가 필요한 상황도 많았는데 나는 뭔가 확실하게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면 암기도 잘 못하고 효율적으로 공부하지도 못했습니다. 미련하게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이 별로 였습니다. 나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지 않은 동기들도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저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저는 내심 열등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해도 패기만만한 그들을 쫒아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대면대면하게 동기들과 지내며 의대생활을 마치고 인턴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인턴의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좋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윗사람이 시키는대로 아무 생각없이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래도 너무너무 바쁠 때가 많기 때문에 나만의 노력과 능력으로 일을 다 잘 해낼 수 없습니다. 동기 인턴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동기들과 몸을 부대끼며 때론 싸우고 때론 부탁하고 때론 미안해하면서 정이 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인턴을 마치며 최우수 인턴상을 받았습니다.

그 상의 의미는 내가 탁월한 인턴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절대 아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사는 자기 힘과 능력만으로 절대 우수한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무수한 지원과 도움이 있어야 비로소 의사로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인턴 때는 여러과를 돌면서 일하기 때문에 소수 몇명과의 접촉이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많은 동기 인턴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 시절을 거쳐 내과 레지던트가 되고보니

스물 몇명의 우리 동기들과 강도높은 협력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평소에 별로 맘에 안 들어하는 녀석이라 하더라도, 난 그와 함께 당직을 서며 밤을 지새우고 그의 도움을 받아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멤버들과 돌아가면서 무수한 밤을 함께 보내며 일을 해야 합니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떠오릅니다.

 

내과 1년차, 2년차 때는 환자를 대상으로 여러 술기를 하게 됩니다. 

 

한번은 백혈병 환자 척수액 검사를 했는데, 주사가 들어간 부위에서 피가 멈추지 않아 hematoma (혈종)이 생기고 척수액이 새는지 환자에게 두통도 생기고 아파서 힘들어 했습니다. 저는 그 뒤로 척수액 검사를 하는데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 환자에서 검사가 필요하면 술기에 능한 김** 을 호출해서 부탁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늑막조직검사를 했는데 그 시술이 눈으로 직접 보고 조직을 뜯어내는게 아니라 감각으로 아브라함 니들을 이용해서 조직을 뜯어내는 술기다보니 늑막이 아니라 갈비뼈 근처의 근육이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몇일을 기다려서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하니 근육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환자에게 그 사실을 설명하니 환자의 실망스러운 표정, 나를 불신하는 표정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난 그래서 그 환자의 재조직검사를 김** 에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한번은 주말 오프 시간이 되어 퇴근하려던 차에, 마침 당직실 옆 병동을 지나다가 중심정맥관 삽입이 안되어 쩔쩔 매고 고생하는 동기를 보았습니다. 환자의 혈압이 낮아서 쇼크에 빠졌고 빨리 중심정맥관을 넣고 약을 쓰는게 중요한데 혈압이 낮으니 혈관의 톤이 유지되지 않아 주사바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좀 자신있는 술기라서 그를 도와주려고 병실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저도 실패했습니다. 동기는 나 때문에 환자 가족들의 더 심한 불신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습니다. 홍** 미안해.

 

중환이 생기면 응급으로 병실에서 기관삽관을 합니다. 저는 동기중에 제일 늦게 기관삽관을 할 줄 아는 내과 레지던트였습니다. 한번에 성공하는 확률이 낮은 나, 정말 자신감 떨어지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1년차 말이라 이제 곧 후배들이 1년차로 들어올 상황인데, 나 스스로 자신감이 없으니 정말 한심할 노릇이었습니다. 동기들은 호흡곤란이 있어 기관삽관을 하게 될 것 같은 환자가 있으면 나에게 연락을 해 주었습니다. '누나, 이 환자 한번 해봐요. 여러번 하다보면 금방 잘 하게 될거야.' 김** 고마워.

 

우리가 함께 한 수많은 사건 사고들.

않좋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동기가 된 그들은 영원한 나의 내과 트레이닝 동기입니다.

 

성격이 까칠한 아줌마 끼워줘서 고맙고 모임을 주선한 손** 수고가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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